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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보아야 안다높이 있다는 것이 얼마큼의 고독인가를거기 뚫린 가슴으로 에어드는바람의 차가움을올라보아야 안다 올려다보는시리도록 푸른 하늘날개를 치고올랐지만하늘이 얼마나 아리는 아픔인줄을올라보아야 안다 저기 저 아래수풀벌레가 날고 뱀이 기는 저곳솜털뭉치처럼 부드러운 삶의 숨결태어난 곳은 저 아래 있다는 것을거기에 마을도 친구도 있고알을 깨고 나오던 둥지도 있다는 것높이 날아본 새는 안다 그제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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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아래 영암사지 금당 터서성거리던 등산객들 산으로 오르고 나자폐사지에는 나와 돌사자 두 마리만 남는다혼자 앉아서 옛 절집의 규모를 골똘히 궁리하고 있는데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바탕에 흰줄 무늬 나비 한 마리팽팽한 정적의 수평을 헤집고 다니는 곡선이 부드럽다나비의 궤적을 쫓다가 그만 눈이 번쩍 뜨인다나비는 절이 번성했던 시절, 주지승의 혼령이었던 게다천 년 동안 비워둔 절집 소식이 궁금해서 잠시 마실 나온 거다그래서 초석 위에 앉아서 더듬이로 회상하다가다시 기단으로 옮겨가서 긴 명상에 잠기는 거다그러니 폐허가 아름다운 게지저승과
아침을여는시
박재옥
2017.11.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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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다 강여울을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모래톱 위 백로들의 성근 발자국이뭇 새들의 노래 소리가물잠자리의 날갯짓이죽어 있다 아슬아슬한 다리 난간 위키 작은 앵두나무의 허공에 뜬 뿌리가검게 그을린 강아지풀꽃이늙은 벚나무의 아랫도리가갯버들의 어깻죽지가죽어 있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찌꺼기들을홀로 짊어지고 삼킨 듯한 물의 낯빛이거무죽죽한 보자기에 보쌈당한 돌덩이들이그들의 검버섯 얼굴이희망이죽어 있다, 검은 창을 세우며치달리는 자동차와 그 뒤를 쫓는늙은 주차 감시원의 눈빛만 무섭게 살아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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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지고 갈라져도흩어짐 없는 골격에누구 하나 물러섬이 없거늘 소리는 소리로 맞서고힘은 힘으로 견제하며서로 결어진 대륙의 끝 금방 무너질 것 같은백성들의 허술한 성곽이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꼿꼿한 바위섬 남루한 선비들의 외침만으로도우뚝 솟는 한반도 무모한 좌충우돌 파도여틈틈이 절은 뿌리천년 해송 푸르름을 알게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2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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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피 토하며 꺼져 가는운명을 보라 애절함이 분노처럼 끓어 넘치는차라리 황홀하고도아름다운장엄한 이별 저토록처절한 아픔을 어이하리저토록처절한 사랑을 어이하리 해질녘붉은 물결에꽃그늘로 지는 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2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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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토록 기다리는 걸까살아나 얼굴 묻고 하늘에 젖다가온종일 몸을 가누다가분분히 낙하하는 눈물처럼 떠 있다몽상의 길로 들어선 나는걸음마다 단조로 흐른다무엇이 그리도 안타까운가그대 앞에 마주 선 섬으로안길수록하얀 햇볕의 파도들이 일어서고 있다이 세상을 흔들어 지쳤는지몇천 근 무게로 짓눌린 가슴 헤집고 들어와그리움만 더하는 나를 다독인다차가운 슬픔으로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1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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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기 없는 하늘높아도 얇아도 변함없는무심 속으로 고추잠자리 헤엄친다 나뭇잎도 따라 날고 싶어자꾸만 팔랑이는 수심눈시울 붉어지고 얻은 만큼 내려놓아야 하는적멸의 허공을와르르 무너뜨리고날아드는 철새 저 말간 창공 속으로붕어는 날아오르고 싶었겠지 문명의 날개 접고물안개 속을 노 저어은하를 건너는 강태공푸른 계절 붙잡고 있는데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1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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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힘껏 내리쳐박아야 하는 대못 많은 날들이못 끝에 찔려있다 피울음과체념과 삼류와갈망의 열꽃들은 차렷냉수도 불어 먹어라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다중간은 따라가야지 한계에각을 지어가슴속 태풍 잠재우는 대못 하나선명하게 바로 섰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1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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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속에서 벗어난다 해도그것도 틀이다 길을 잃고 허우적거릴 때길가에서 선 나무들의 수천 개 눈빛이 틀이고아득한 벼랑 위에서 끝이라고 할 때바위틈 작게 핀 나리꽃 맑은 웃음이큰 허공을 받치는 틀이고미치도록 사랑한 열정도 시간의 틀에서꽃 피우고 지우는 일이다몇 백 년 묵은 오동나무가 장롱으로 윤회하여도누군가의 방 속에서또 다른 틀이 되어 천천히 묵어가듯어디든 틀이고 틀 속이다틀은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틀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또 다른 틀이 되는 것이다오늘은, 나의 중심 언저리꽃 한 송이 힘겹게 피려 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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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빗물 기억 그날의 여음인 양풀비린내 거머쥐고 다시 온 여름 한낮무뎌진 생의 굴곡이 자물쇠를 풀었다 퍼런 멍투성이 내 아버지 횐 손마디찔레 지나 자귀꽃 워낭소리로 우는 언덕자식들 빈 밥그릇을 고봉으로 채우셨지 수십 년 수저질 뒤에 다시 날을 세운강아지풀 왈왈대는 자투리 땅 마음자리태양을 한 웅큼 심어놓고 달도 한 알 스을쩍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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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늘 채비에 새우를 매달고새우처럼 움츠리고 앉아서밤을 지새운다. 연밥도 여물어가는 못에 낚시를 드리우고비늘 큰 고기를 낚으려 한다. 물가에 자란 수초 헤집어 벌리고빈 망태를 담가둔다. 시간과 지워진 물속의 기억들이한 가득 올라올 아침의 망태고기를 잡을 생각보담은추위 속에 견딘 밤 동안의 인내가어여쁜 인고의 시간이었음을,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해도 알지만멀어진 여자의 잎맥이 삭아가는 동안에도물풀을 흔드는 건 물고기가 아니다. 찌를 응시하던 눈빛이거나물안개가 젖어서 일어난 반응 이거나한낮에 잠자리가 떠나며 남긴흔들림일 것음을 알기에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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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한 해가 왔네. 베란다 창틈에 낀 묵은 먼지를 닦는데등을 요람 삼아 흔들리는 따뜻한 햇빛 한 장분명 육심수 순면원단의 깃털이었네.서너 시간 햇빛 샤워를 하며정작 씻어낸 것은 창틀이 아니었네.창틈에 낀 나방이며그들의 부화하지 못한 씨앗들이살림을 차리고 장렬히 한 생을 접은축제의 뒷뜰. 깍아지른 벼랑은 이 몸만이 아니었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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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쟁이가 물위에서 줄넘기한다.중력이 일으켜놓은 종단면의 세상에자신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횡단면으로 줄넘기를 한다. 줄넘기를 멈추는 순간종단면의 검은 구멍 속으로 빠진다. 호수 위에 줄넘기의 흔적을 남기며 사라진 사람은아차! 싶은 순간에 줄이 꼬인 것이다.이들이 놓친 줄이 지푸라기가 되어애달픈 사람들의 목숨을 떠받친다. 가로로 세로에 대응하기 위하여발끝마다 설피 같은 줄넘기를 만들며소금쟁이가 중력의 바다를 건넌다. 그 바다 너머에 더는 줄넘기를 낳지 않는고요한 세계가 있다.거기에 닳기 위해소금쟁이는 그 입구까지 줄넘기한다. 오색빛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0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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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지류라는 이름을 가진, 낯선 이국 남자와선본지 사흘 만에 결혼한 여자남자에게서 도망친 여자도시의 그늘 속으로 숨어든 여자곁을 주지 않는 고양이 여자쌀국수 같은 여자겁먹은 둥근 눈 안에 열대우림을 가진 여자이마에 달빛이 불법체류하는 여자생의 변두리에서웃음을 전염시키는 여자등 뒤에서 안아도 가슴으로 범람하는 여자강물 속으로 깊어지는 여자마침내 바다가 되는 여자 옆집 상이군인이 평생 못 잊어술만 마시면 고래고래 목 메이게 부르던아오자이 꽁까이, 머나 먼 송다 베트남 아가씨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0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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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까지 눈 배웅할 때등 뒤에 움막집 한 채가 매달려 가네굽어질 듯 꽉 붙어살기도 하고아득한 벼랑으로 한 생애를 밀어낼 듯 살고 있네 뼈마디가 허물어지던 밤도 보이네바르게만 서기 위해 훌쩍이던 나이를 품은 시절이조금씩 굽은 척추를 지녔을 때한 생애가 아득한 벼랑이 아니었음을 알았네 멀리 혼자 가는 등이 내 들을 당기고 있네멀뚱멀뚱 끌려가는 내 뒷면에도수천의 사내들이 부려놓은 세상이 보이고다시 수천의 사내들이 지나갈 벼랑이 보이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0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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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이무원몸을 깨끗이 씻으려다때는 닦지도 못하고우물 속에 빠져지금은 급히 몸을 말리고 있는 중이라네잠시 자리 비운부처님 돌아오시길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네돌아오시면 우엇이라 말씀 올릴까비워서 채웠다고채워서 비웠다고그냥 그대로라고하루 종일 꽃을 쳐다봐도 대답이 없네내일은 바람에게 물어 볼까참, 설악으로 들어가신 스님설악이 되셨는지그것도 물어 봐야겠네△시집 ‘지상의 은하수’ 등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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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김은숙편지 한 줄 쓰지 못하는가을 저녁우물이 깊다쌓이는 고적이 무거운 사람숨조차 희미하게 너무 멀어어둠의 밑동 바라보며 귀를 다듬어도슬며시 문설주에 기대어수런거리는 바람 한 자락없는이 가을이지러지는 저녁의 허공은속이 차다△시집 ‘부끄럼주의보’ 등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11.0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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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에서조재구 오늘 하늘 우러러한 점 구름이 된다 솔바람에 실린 풍경소리맑은 계곡 물 흐르는골짜기에 올라허리를 감싸 안은 구름이 되어하늘에 구름 한 점또 다른 나를 본다불심으로 가슴을 열은계룡산에 올라 또 다른 나를 본다. △시집 ‘아담의 고백’ 등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8.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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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 강변장민정강가를 걷는다자그락 자그락 자갈 위를 걷는다강은 자갈자갈 흘러자갈들내 이웃들처럼서로서로 비벼대고 포개져도껴안지 못하는 마음들부스럭거린다강은 자갈자갈 흐르고장마에 떠내려 오다 걸린 비닐 조각들마른 갈대 목을 붙잡고쇳소리로 운다피부였다가각질이었다가떨어져 나간 것들의 소리펄럭이지 마두런거리지 마부스럭거리지 마손사래 치며눈 흘기며강물이 흐른다△시집 ‘느티골 뿌리들 환하다’ 동인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8.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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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최정란몇 달이나 지났을까철지나 옷장 속에 걸어둔 바지오른쪽 주머니에 만져지는열쇠 하나얼음 얼고 눈 내리는 지난 계절 동안무엇을 잠그고 잊혀졌을까함부로 열어젖힌 시간을 반성하며이 순간을 기다렸을까닫힌 것들에 하나씩 열쇠를 넣어본다작은 말다툼에 닫힌 전화번호에,바쁘다 핑계에 못 만난 무심함에,찬바람 휭 하게 돌아선 뒷모습에,익지도 않은 청매실 눈 번히 뜨고다 도둑맞은 뒤겨우내 마음 닫았던 매화나무누가 수천 개의 열쇠를 동시에 들이미는지딸깍 딸깍, 매화꽃 열리는 소리,환하다△시집 ‘새로운 감성과 지성’ 동인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8.29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