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
틀 속에서 벗어난다 해도
그것도 틀이다
길을 잃고 허우적거릴 때
길가에서 선 나무들의 수천 개 눈빛이 틀이고
아득한 벼랑 위에서 끝이라고 할 때
바위틈 작게 핀 나리꽃 맑은 웃음이
큰 허공을 받치는 틀이고
미치도록 사랑한 열정도 시간의 틀에서
꽃 피우고 지우는 일이다
몇 백 년 묵은 오동나무가 장롱으로 윤회하여도
누군가의 방 속에서
또 다른 틀이 되어 천천히 묵어가듯
어디든 틀이고 틀 속이다
틀은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틀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또 다른 틀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나의 중심 언저리
꽃 한 송이 힘겹게 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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