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 앞 현무암 보도블럭바싹 마른 뼈가 바람에 밀려 간다살아서도 가벼워 대지를 붙잡고아침마다 함치르르 땀을 내던잔디의 뼈가 그 바람에 의탁한 채도시의 자유를 즐기고 있다얼마나 매달렸던가 얼마나집착했던가 한 방울의 수분을 위하여얼마나 싸워왔던가 이제 다벗고 보니 생각의 그늘을 나와 보니얘기할 수 있겠다 겨우그것 때문이었나마른 겉옷마저 벗어보니 알겠다 겨우그것 때문이었나 밀려가다 보면뼈도 닳고 기억도 닳아지겠다 가벼움은 애초의 것주머니를 만든 건 시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26 20:29
-
뽑고씻고썰다 조는 아내잠자리에 등 떠밀고 깜빡 깬 세 시 이왕이면손자 놈들 재밌게 멕이려 꽃, 별, 동그라미, 마름모, 세모,남다르게서로 다르게꾀까다로이 쓰다쓰다 보니 다섯 시 무말랭이 하려는 무희한하게 썰어 놨다핀잔 받는아침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25 20:55
-
속리산 상주에서 농사짓고 사시는 김씨 할아버지집 뒤에 경작하지 않는 돌투성이 밭이 하나 있는데할머니에게 상의도 없이 터무니도 없이시세의 두 배를 주고 그 땅을 사들였다 서울 사는 아들이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내려왔다아버지 노년에 망령이 단단히 났다고씩씩대며 단숨에 달려와 대문을 열어 제겼다아버지, 지금 정신이 있으세요?그 필요도 없는 땅을 사서 뭘 하려고 그러세요? 마루에 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셨던 할아버지기어이 뒷마당을 바라보며 대답하셨다느그들 대학 보내니라 예전에 그 땅 팔지 않았냐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두고두고 생각해도그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24 20:23
-
어느날 나무는바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몸을 털었다 지난 폭설에 부러진막내가지의 생채기가 몹시 안쓰러웠고무엇보다 이제는맘대로 안되는 체온조절이 버겁다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새 그의 오랜 빈자리가 무겁기만 하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23 20:20
-
골목 찾아 나서니발걸음 보이지 않아먹먹한 빌딩 사이간간히 목덜미도 드러나고공중의 벼랑을 흔들어돌아누운 가로등이문패를 깨울 때직박구리는 석류에 매달려바람을 빗고 있고해질 무렵 고양이는번갈아 낮은 울음을 흘리며입구를 머리맡에 두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22 20:29
-
나는 물이라 말하고그녀는 문이라 말한다베트남이 고향인 그녀는문이라고 해도 문이고물이라고 해도 문이다알고 나면,알고 보면오류도 아름답다 다르다는 것은귀함,소중함,특별함이 있어아름답다는 말과 통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16 21:07
-
- 한상남 시인 - 참나무 숲에 바람 분다흐느끼며 나뭇잎 흩어진다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물참나무두루 섞여서후드득 도토리도 뿌린다 참나무를 참나무라 이름 지은 사람들은그토록 ‘참’에 목말랐을까진실로 거짓을 두려워했을까 오늘 거짓과 싸우지 못한 나는마음 헐벗은 채 이렇게 숲을 헤매고다시 어두운 바람이 분다고개를 젖히니초승달이 여기 와서비겁한 칼처럼눈웃음 치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15 20:09
-
-윤상희 시인- 죽살이 틈바구니홍어는 바보처럼살아서도 웃음이요죽어서도 빙긋 웃음볏짚에삭을지라도아리아리 하얀 미소.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12 20:18
-
신영순 시인나는요 삼겹살 구울 때가 젤 행복해요 맨드라미같은 살점들이 눈그림자로 익거든요 날리는 눈 받아먹는 바위도 헐렁헐렁. 나무도 발랄해져요 꽃 필 때 보다 더욱, 하늘도 이때처럼 수다스러운 적 없구요 별들도 서로 발길질하며 장난친대요계절 잊고 군자란이 삐죽 꽃대를 내민 우암산가든 내 앞의 남자 고기를 나란히나란히 줄 맞춰 음계 없는 실로폰 치듯 뒤집고 뒤집었다사랑하는 방식을 몰라 애인과 헤어졌다고 빈 소주잔에 푸념을 그득 따라 마신다창밖의 눈보라가 불빛을 향해 맹렬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얼굴들이 불안의 바퀴를 굴리는 사이 숯불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11 20:39
-
대~한민국, 짝짝 짝짝붉은악마들 빠져나간서울시청 앞 광장 돌아 나와철거농성 하던 용산방면둘러보면 어디나 꼭 있는허름한 국밥집나무의자에 등 기대면고단한 삶의 이력履歷이 차려진다 산다는 게국, 밥처럼 한데 어울려진한 국물로 우러나는 것후루룩 한 세상 비워내는 것그도 아니라면미지근한 국물에 얹혀남은 인생 소리 나게 아작씹히고 마는 것 ‘깍두기 맛있는 집’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10 21:12
-
흰 눈이 내려 쌓인 그 나라는하얀 점박이 같은 함박눈이밤 새저렇듯 댓잎 젖는 소리로내려 쌓여지붕에 담장에 나뭇가지에수북이-,층층이 두께를 이룬그 나라는깜깜할까환할까아침이면 저절로 불이 켜지는하얀 등불 있을까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09 21:06
-
너무 바뻐 힘든 속도로 여기까지 왔다 그녀내소사 대웅보전 색바랜 꽃살무늬 창틀에 마음을 기대어부처의 가피를 눈빛으로 비는 걸까 그녀귓바퀴 안 시끄러운 귀울음도 잠시 잠잠한 걸까 그녀몇 번 울음 울다 그친 내 귀울음이스물 네 시간 불면을 뒤척이다 깜빡 잠든어느 날의 같은 시각이었을지도 모를 그녀몸도 마음도 쇠하여 여윈 그녀약하디 약한 애기등나무 뿌리도 붙잡고 싶지 않은그녀의 정신을 꼿꼿이 바로 세우고웅웅웅-, 귀울음 저무는 계곡물에 떠내려 보낸다발우에 경내 향 맑은 고요 한 그릇 떠 그녀의 귀를 씻고 내 귀를 씻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08 20:56
-
기다림이톡톡 터져꽃이 되었대요. 그리움이활짝 피어꽃이 되었대요. 철이기다리는 마음이톡톡 터져꽃이 되었대요. 순이그리운 마음이활짝 피어꽃이 되었대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05 20:52
-
당신의 눈동자 속에 아지랑이가 보였어요곧 봄이 온다는 걸 알았지요당신의 눈동자 속이 아주 화안했어요곧 꽃이 핀다는 걸 알았지요당신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로 했는데그런데, 어느 날인가는당긴의 눈동자 속에 눈물이 맺혀 있던 걸요나는 얼른 눈물을 닦았아요이젠 안 울겠어요누군가 울면 세상 모든 이들이다 운다는 걸 오늘 알았어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04 21:06
-
입춘 추위는 꿔다해도 한다는데,포근했던 며칠 전과 사뭇 다른 얼굴이다그래도 방안으로 들어온 볕이 좋아다리 쭉 펴고 햇살과 마주 앉으니발바닥부터 온기가 퍼진다온몸이 훈훈해진다 어느새골담초 노랗게 핀 장독대그 분 손길 닿은 장독마다 윤기 흐른다 빈 항아리에 매달려 소리 지르던 철부지엉덩이를 때리며 야단치던그 분 목소리가입춘, 바람에 실려 온다우리는 서로에게 보늬였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03 20:37
-
그대여!애절한 통곡귓전에 들리는지 개똥참외씨알처럼무겁게 매달린 한(恨) 점점점때묻은 역사은빛으로 씻어주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02 20:37
-
넓은 바다 냅떠서며 마음껏 누볐지만속내 다 비워내고 짭조름히 무르익어빛바랜 진열대 위에 와불로 누워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2.01 20:50
-
속 비워바르게 세운대인군자 먹빛에는 바람이 불고세월이 흐리고 젖은 내몸에서 나는적막한 빛도 비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9 20:19
-
지난간 것들은 다 모정으로 기억된다일곱의 바다를 가슴에 담아 놓고이제는 뒤돌아 앉은 어머니 같은 뒤꼍 마흔의 끝자락이 턴테이블에 튀어 올라버석 대던 헐 한 삶 온몸으로 받아내며조용히 그림자 펴서 말갛레 닦아 낸다 벗어 둔 옛 그리움 항아리가득 차오르면초생 달 긴 눈썹 달고 꼬리 문 은하수들움돋는 별빛 싸안고 포근하게 자리한 뒤꼍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8 20:05
-
한 목숨 둘레마저 버거운 날이 있다 내리꽂는 땡볕에도 굴하지 않던 그가 폭풍우 눈보라에도 꿈적 않던 발부리가 터지고 갈라지고 생살이 삐져나와 덕지덕지 엉겨 붙은 딱정이를 끌어안고 초가을 소슬바람에 제 살점을 털고 있다 한 평 반 떼 집 위에 갈 볕을 긁어모아 따스한 온기 몇 점 묘비 아래 묻어 두고 행여나막내딸 찾아올까먼 길 살피는 아버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7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