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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6항목 문제의 등장 민족교육의 액살(扼殺)(2)조선인의 민족교육 액살(扼殺)을 노리는 6항목은 다음과 같다.(1) 이데올로기 교육을 하지 말라.(2) 민족 교과를 과외로 하라.(3) 정원제를 지켜라.(4) 학생들의 집단 진정을 하지 말라.(5) 채용되지 않은 교원을 교단에 세우지 말라.(6) 교직원 이외의 자를 교직원 회의에 참여시키지 말라고 하는 내용이고, 조선인 교사를 내쫓고(5와 6), 조선인으로서의 교육 내용을 배제하고 (1과 2), 조선인 학생 수를 제한하고(3), 그 위에다가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금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5.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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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4. 도립 조선인 학교의 폐교● 치안 문제로서의 도립 조선인 학교(2)‘민전’ 결성 당시 대회 강령에서는 ‘우리는 민족문화를 위해 교육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것에 전력을 바친다’고 노래하고, 그 교육의 목적은 ‘재일조선인 아동 10만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충실한 자녀’로 기르는 것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民戰 제2회 대회 1951년 12월). 그리고 그것은 공립이나 자주에 특히 관계하지 않고 모든 조선인 학교를 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민전은 이와 같은 원칙에 기초해서 ‘조선인 학교 규정(초안)’을 정리하여 토의해서 매듭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5.0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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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취학 의무제의 폐지(2)취학 의무제의 폐지는 일본인 학교에서 배우려고 한 조선인 학생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빼앗긴 새로운 억압의 수단으로 취해졌고, 사실 이는 그와 같은 기능을 한 것이었다.정부의 “은혜에 기초해서 취학하는 한, 조선인 자녀들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줄 것인지 어떤지에 대한 자유는 모든 행정 측에 맡겨 둔다. 따라서 입학을 원한 조선인 부모에게 복종할 것을 서약시킨 후에 취학을 허가한다”고 하는 노예적 자세가 생겨났다.이 통달에 의해서 도쿄와 같은 상황이 전국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야기현(宮城縣)과 센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4.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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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교육 연구 운동과 재일조선인 교육 문제(2-2)교연(敎硏)집회의 내용을 정리한 것에 의하면, 재일조선인 학생의 생활 모습을 보고 받고, 그 교육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하에서 민족의 역사와 말을 배울 수 없고, 기초학력이 저하된 상태로 방치하여, 식민지적 퇴폐와 자포자기가 필연화된 현상이었다. 그 영향이 부전자전으로 전해져서 오늘에 미치고 있다”는 문제이고, 이것에 대한 ‘우리(일본인)의 책임과 반성’이 촉구되고 있다.하지만 강조할 점은 오히려 재일조선인 교육은 민족 해방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므로 “오늘 우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4.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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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일본의 민주주의 교육운동의 새로운 국면(2)일본인을 대표로 내세운 반대 운동과 이 이상으로 박력을 가진 조선인 부모·학생의 항의 활동을 받고, 도쿄도(東京都)는 1953년 신학기부터 사립 이관을 일시 연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시사 통신 ‘內外敎育版’에는 후에 “都의 경우 실제 문제로서 사학 이관 반대의 파상 공격적 데모에 몹시 애먹고 있다”고 보도된 것이었다(1953년 6월 30일).문부성도 또 앞서 언급한 준비 중의 통달을 그대로 낸다는 것을 단념, 공립 조선인 학교 사립화의 측면은 덮어두고, 취학 의무 폐지를 축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3.2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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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사립으로 이관하는 반대 운동(2)앞서 서술한 ‘교육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및 PTA 연합회의 항의 성명 ‘조선인 교육 탄압에 단호히 반대하자’(1952년 7월)에서 살펴보기로 하자.첫째 사립 이관은 민족교육의 뿌리를 끊는다는 현상에 대한 인식에서이고, 따라서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것이었다. 재일조선인 교육은 1948년 아래의 학교 탄압, 1951, 1952년 경찰이 강제로 들어가서 조사, 매스컴에 의해 보도되고, 반일 교육 선전이라는 것같이 지금까지 상당히 계속 억압되었다.이와 같은 피억압의 체험과 정치 환경은 직감적으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3.1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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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강화’조약의 발효‘일본 국민’에서 외국인으로한국전쟁이 한창 발발한 때인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조인되고, 다음 해 1952년 4월부터 발효했다. ‘강화’조약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여러 나라’와 조인하여 아시아의 신흥 독립 여러 나라를 제외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국주의 여러 나라에 대한 ‘전쟁 책임’만을 취해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일본의 ‘침략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뗀 것이었다. 패전했을 때에도, 이번의 ‘독립’ 때에도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의 역사적 책임을 청산한 것은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2.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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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조선인학교에 대한 무력 탄압도립 조선인학교 교육과 활동이 이와 같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노선을 견지해서 반 침략적 입장에 서 있는 한, 미군 및 일본 정부의 눈에 조선인학교는 반미·반전운동의 근거지로 간주하였다.행정조직을 무력화한 단계에서 새롭게 기동대에 의한 조선인학교 습격이라는 탄압과 반미 반일 교육을 선동한 매스컴 선전이 민족교육을 억압하는 수단으로서 그야말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다.이 두 가지 수법은 한국전쟁 중(1950년 6월~53년 7월)에 도립 조선인학교를 억압하는 주요한 무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에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1.3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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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조선인 학생의 생활 실태(2)개개의 가정은 어려운 생활 여건과 열악한 교육·학습 조건에 시달리면서도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 민족교육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그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몇몇 가족의 예를 살펴보자.아라카와(荒川)에서 펄프 코르크 공장을 경영하는 한 학부모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 줄로 알면서도 공장을 계속 돌리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비참한 나날을 보내는데, 2학년 아들이 아빠는 술을 마시면서 급식비는 주지 않으니 아빠는 나빠라고 말할 때는 맥이 풀렸다. 부모는 부모의 세계가 있고, 마시지 않으면 참지 못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1.01.1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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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일본인 교사의 분화(2)객관적으로는 일본인 교사도 동일한 가해자로서 조선인학교에 들어왔다.그러나 일단 학교에 부임하여 조선인 학생이 일본인 교사에게 가하는 비판(동화교육)을 성실히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가, 가해자의 자리에 계속 머물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교사가 될 것인가의 분기점이 되었다.그리고 계속 가해자로 남는 자는 조선인의 민족교육을 계속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앞서서 그것에 반발하고 도중에 탈락, 혹은 비난하는 말을 계속 던졌다. 한편 가해자에서 교사로 옮긴 자는 같은 현실에서 민족교육의 본질을 배우고 일본 정부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12.2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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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일본인 교사의 분화조선인학교 도립화 방침에 따라 그곳도 신임 일본인 교사가 파견되었다. 그곳에는 권력에 의해 근절되지 않는 조선인 교육집단이 존속하고 있다.이와 같은 조선인 교육집단은 권력과 구별되는 인민의 자세를 일본 국민에게 갈망하고, 먼저 같은 장소에서 일할 일본인 교사 양상에 대해서 엄격한 주문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앞에서 언급한 PTA(학교운영위원) 회장은 “인간을 기르는 당신들 교육자에게는 우리와 같은 체험이 없어도 그러한 것(민족의 긍지와 희망 가운데서 인간은 인간으로 된다―인용자 주) 정도는 알 따름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12.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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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조선인 학교의 도립화(2)도쿄도는 경상비는 내었어도 校舍·시설 개선비는 내려고 하지 않았다. 도립으로 된 것은 통제하기 위해서였고, 조선인 학교의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다음으로 조선인 교직원에 대한 차별 대우가 관철되었다. 조선인 교사는 전임강사 이상은 될 수 없고, 그것도 단규령(團規令)에 따른다고 칭해서 교사 정원의 1/4로 그 숫자가 제한되었다. 그러나 민족교육을 충실히 하는 데는 이것으로 부족하니까 다른 조선인 교사는 모두 시간강사로 근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도립 조선인 학교 15개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11.1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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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Ⅳ 한국전쟁 하의 재일조선인 교육-도립(都立)조선인학교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1. 동화교육 체제의 시대●동화교육 체제의 부활1949년 가을, 조선인 학교 폐쇄로 인해 그 학생들은 공립학교 체제로 강제 전입되었다.이 정책의 강행에 의한 제도는 그때까지 일본인 학교에 취학하고 있던 학생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재일조선인 자녀들의 교육이 일본인 학교의 체계 속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이것은 동화교육이 일본 국내 체제로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물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조선인들의 항의는 경제적 역경을 참아 가면서도 자주 학교의 경영도 계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11.0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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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일본인 학교로 분산 전학(2)일본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은 재일조선인 자녀교육의 지배적인 형태가 되었다.그중에서도 특히 공립 조선인학교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는 일본인 학교로 분산 전·입학하는 것이 주된 동향이 되었다.오사카처럼 분산 전학을 노선으로 설정한 곳에서는 조선인학교 재학자 1만 명과 전부터 일본인 학교에 다니는 1만 명을 합쳐 총 2만 명이 일본인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또 효고현처럼 자주 학교가 관철된 현에서도 과반수 이상인 6800명이 일본인 학교에 다녔다.나아가 도립학교에서의 집단교육을 인정한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10.1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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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갈가리 찢긴 조선인학교 체계(2)도쿄의 경우,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면, 도쿄도(都) 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사립조선인학교의 약 3500명에 달하는 학생을 공립학교에 재수용하는 것은 ⓵2부 수업을 압박하고 ⓶조선인 아동·학생의 입학에 따른 학부모 간의 감정적 대립 ⓷생활 곤궁 자의 증가에 따르는 교육상의 폐해와 같은 문제를 안게 된다.따라서 도 교육국은 일반 학부모의 전학 문제 등에 대한 움직임을 중시하여 문부성·점령군·도쿄 군정부의 계속되는 권고에 고민스러워하면서도 도쿄도 독자의 최선책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그것이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10.0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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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공교육체제 내의 재일조선인 교육(2)지난 회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교육방침으로 ‘소학교에서는 학습지도요령에 교과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외국어로 조선어·조선 역사 등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일본인과 구별하지 않는’ 방침을 정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이처럼 ‘일본인과 구별하지 않는’ 교육이 조선인 전학생에게 행해질 경우, 그때까지 조선인 집단 안에서 조선인으로서 교육받아 온 학생들에게 집단과 학력의 질적 차이에 기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마찰이 일어날 것은 당연하다.이것에 대해서 11월 14일 통달에서는 “공립학교에 수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09.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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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공감하지 않는 일본 국민그저 조선인으로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자치체와 교섭에 나섰으나, 문제는 재일조선인이 주장하는 내용의 가장 핵심 부분이 일본 측에게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다는 것이다.‘진정서’에서는 일본인에게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번 조선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라’는 방도를 제시하기조차 했으나, 이러한 발상법은 관료주의적 발상법에서는 전혀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화주의 사상에 사로잡힌 일본인에게도 익숙지 못한 방법이었다.그렇더라도 일본인으로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09.0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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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조선인학교 폐쇄 명령(2)제1차 폐쇄는 조련이 경영한 학교로 간주한 것을 대상으로 했지만, 야마구치 25개교(조선인 초급학교 수, 이하 같음), 후쿠오카(20), 미야자키(11), 가나가와(9), 도치기(5), 그 밖에 돗토리, 이시카와, 후쿠시마, 홋카이도 등의 여러 현에서는 이 당시 현 내의 조선인학교가 모두 폐쇄되어 버렸다.재일조선인의 항의를 저지하기 위해 학교 폐쇄는 무장경관의 손으로 강행되었다. 김달수의 기록에 의하면, 요코스카(橫須賀) 조선인학교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학교 폐쇄를 통고하러 온 현의 관리에게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08.3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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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조선인연맹 해산지배자는 교육의 경영을 자기의 정치적 이익에 맞추어 바라보고, 그것에 조응하는 ‘교육’ 논리를 추구한다. 이것은 재일조선인 자녀에 대해서는 동화교육의 논리로 나타났다.미국과 일본의 지배자는 한신교육사건으로 이를 강행했다. 이와는 달리 아동의 민족적인 성장 발달의 권리를 축으로 하는 교육 논리를 중시하면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 구상이 요구된다.조선인학교의 교육은 그 새로운 정치의 양태를 북한 체제에서 보았다. 북한이 성립된 이래 이러한 제국주의적 정치교육 논리와, 민주주의적·민족적인 정치교육 논리는 한층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08.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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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조선인학교에 대한 타격오사카에서는 재일조선인 측이 조선인학교 책임자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한다’는 항목을 살려 부지사와 교섭을 재개, 6월에 이르러 ‘각서’를 매듭지었다.이는 통달에 기초해서 그 실시에 나선 것이다. 거기에서는 통달의 틀에 구애를 받으면서도, 첫째 ‘조선인 사립학교에 조선인 독자의 교육을 행하기 위해 1학년에서 3학년까지도 자유연구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조선인 독자의 교육’을 추진할 조건을 확대했다.둘째 ‘앞서 언급한 수업을 희망하는 아동학생의 수가 한 학급을 편성할 수 있을 정도일
재일조선인의삶75년
동양일보
2020.07.19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