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스로몸 말려 다지면서견고하고 썩지 않으며미동조차 하지 않으며생각을 비워가지만 너와 더불어살아가는 이 세상양끝에 있지 아니하며다진 몸 풀어가며네 입맛을 돋워 줄 따름이다
선생님이 숙제를 냈다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이름을 알아 오라고 아휴 어려워보민이 엄마지만 엄마는 박수진보민이 아빠지만 아빠는 김경열그런데 할머니 이름은 뭘까수동 할머니 음성댁 할머니보민이 할머니 할머니 이름은그냥 할머니가 아닐까?
숲은 햇빛이랑 속삭이며푸르러지고 별은 하늘이랑 속삭이며반짝이고 아이는 엄마의 속삭임으로자라지요 하늘빛을 담고 싶은 아이별처럼 반짝이고 싶은 아이 숲이 햇빛이랑 속삭이듯별이 하늘이랑 속삭이듯 엄마의 속삭임을기다리지요
기차표 예매하고내 자리 앉았는데노인 한 분 다가와서일어나라 큰 소리 내 표를 꺼내들고또 또 확인 틀림없다이상하네, 누구 착각장거리 여행인데 좌석 호수 분명한데다시 오니 오는 차표다른 표를 꺼내보고벌떡 서서 허둥지둥
천년 단청 단아한산사 처마 끝 선에 매달려사바 중생 영겁의 업보 달래는그윽한 저 울림자비 다한 불타의 독경일레라 이름 모를 산새 귀 기울이다 막 떠난 자리엔흐드러진 산 벚꽃 수줍은 자태눈부시게 피어나고산객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조차스치는 실바람에 정겹다. 끊겼다간 이어지는고요 닮은 저 소리.
왜소한 체격의 아버지등을 구부린 채 쪼그리고 앉아서구두를 닦으신다늘 기운 없이 발을 끌며 걸어서허름한 구두 뒤축이 기우뚱 닳아있다육신이 가벼워질수록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허공에 새겨진 아버지의 부조가 흔들린다헐렁한 옷깃 사이 휑한 바람을 안고휘청휘청 걸으시는 아버지의한쪽으로 쳐진 등이 작아 보인다 어디를 빠대고 다녔는지천방지축 철딱서니 없는 딸년의진흙 묻은 구두를 윤기나게 닦아서구두코를 앞으로 나란히 놓으신다황송한지도 모르고 냉큼 구두를 신고줄행랑을 치는 딸오늘은 또 어느 진창 속을 헤매고 다니다때 묻은 구두를 염치없이 벗어놓을까말없
꽃등을 달고 걸어간다 한참을 내어주던 맨발가락이꽃잎을 털어낸다 논에는 물길이 새로 나고하늘이 참방거린다물바구니 행차에돌미나리 길을 열고실지렁이도 둑길에항아리 빚어 놓는다 햇살은 사방사방 날개짓하고둑길 조팝꽃펑펑 터지는 하얀 기억들자근자근 들려오는 듯간지럼 피우는 바람은꽃마당을 수놓음 지나갔다 나는 너의 향기와 웃음이 다칠까봐보랏빛 꽃밭에서조심스레한마디 말을 건넨다 꽃은 필 뿐이라고…….
날다람쥐 노랑나비 꽃잎 새로 날아가며오감 열리는 꽃밭에서 깃발 들게 하소서마디가 많아 굵어진 대나무 텅 빈 속 되게 하소서사계절의 흐름 지구의 자전 공전 받아들이며앞마당 쏟아지는 별들의 전투 속에서도별 하나 기어이 따내는 향기로운 풀언덕 되게 하소서너는 물 댄 동산의 샘 목덜미 축여주는 생수미시시피 콜로라도 강가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강빛 타고 사과나무 아래서 양치질하는 뻐꾸기 한 쌍
하얀 화선지 위에 붓을 내려놓고들길 따라 걸어가는 뒷모습오래된 무명옷처럼 정갈하다 소박한 삶 한가운데속 깊은 이웃의 언어노란 햇살에 스며드는하늘 맑은 나날들 철망 너머 금단의 땅 훤히 보이는 곳땀에 젖은 군화 옆에서고향 집 앞마당 하얀 강아지들처럼반갑게 흔드는 그리움 때로는 부당한 땅에 차별 없이 자라나헛꽃만 하얗게 피어오르다 지고 마는대책 없는 그 미소는 어찌할까
배꼽 시집을 읽다가 잠이 사르르 와책을 얼굴에 덮으니 책에서나무 냄새가 나 따라 나섰다누가 오라는 것도 아닌데 뒤엉켜버린숲 속을 혼자서 숨 가쁘게 오른다눅눅한 계곡에서도 자질구레보랏빛 꽃을 피운 싸리나무울창한 적송 사이를 지나고된 시집살이에 옹이진 참나무 위에 맺힌도토리를 먹으러 온 다람쥐의 약삭 빠른 몸놀림숲 속을 헤적이며 재잘대는 그의 목소리프린터기 뾰족한 바늘 끝에 닿은 영혼이 층층나무갈피마다 하얗게 피었다.
땅위에 수많은 꽃들이 많아도하늘위에 수많은 새들이 날아도구름이 두리둥실 떠가도하늘과 땅위에 있는 것들이어머니 품보다 작고 사랑과 미움도자랑도 허물고다 흡수하여 버리는바다같이 파아란저 하늘같은 엄마의 품
제주로 가야지너희는 어찌 하늘로 가느냐 배 삯을 받았으면배를 태워야지구름을 태운단 말이냐 구름 위의 세상평안하고 재난 없는더러운 탐욕은 없는 곳이냐 어린 나이에 가도 되는 곳이냐이 세상 소풍은 끝나야가는 곳으로 알고 있거늘 구름아
저하늘달님은당신의 미소 오곡이주렁주렁여무는 가을 풀벌레연주에세월은 가고인생도하염없이흘러가는 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유영삼 등 휘어진 저 언덕 헛기침소리볏논에 물 뱉는 소리허수아비 서둘러 팔을 꺾는 소리 바람이 열 손가락을 펼쳐들고서걱서걱 맨 햇살을 뜯는다울멍줄멍 깊어지는 가을 논, 검은 논휑한 흰자위, 짚더이 흩어져눈꺼풀을 쓸어 덮는다 산 위에 들판에 길 위에투박해진 시간의 발자국무리 진 종자들헐거워진 자루 속으로 들어간다아주 긴 기도문을 외무며 간다
빌딩 숲헤치고 나와우면산에 오르면 풀꽃 하나가진 것도 없어도바람을 벗 삼아한 폭의수채화를 그린다 삶이란두 손에 잡히지 않는햇빛 같은 것 풀꽃처럼피었다가티끌처럼 가야지
이 길 어디쯤 가면허공(虛空) 깊은 파고든 뇌성(雷聲)너의 장소 나의 시간불빛 환한 고가(古家) 가는전생(前生)의 눈길내생(來生)의 솔길이여 여린 몸 소스라치며숱한 이야기 오고간헬레니즘의 길어디서 밤새 기척하면늙은 길 젊은 길 거쳐동토(凍土) 지나고 있다 마음 미래에 두고세월 그대로 속일지라도적요로 시린 앞섶살아가는 진액 간직한노오란 프리지어 한 묶음슬며시 건네주고 절룩절룩골목길 떠나고 있다
몇 개의 풍경이 기다린다만나면 더 외로워지는 이 길시간의 얼굴 떠오르면차라리 눈을 감는다나를 흔들어 놓고 너는 어디 있느냐생각의 문을 열면하나의 강이 된다세상의 파도를 살피다가정지한 풍경 속에불러도 대답 없는 그리움더는 빛나지 마라비늘 몇 개가 내 몸 어딘가 달라붙는다마지막 몸짓처럼
유혹하던 어둠과 시기하던불안한 그림자도아침의 햇살에 걷어 차여버렸다강렬한 아침으로 잠은빛에 모든 것은 둘러싸여 있다황금빛에 둘러싸인 지금평화 속에 누워 있는 대지를 본다절정은 가라앉은 듯이 고요하기만하다시기하는 그림자가 억눌린다면무거운 회색 벽은 웃음이 드리울 것이다
힘에 부치는 것극복할 수 없는 걸우리는 벽이라 부르지늘 벽이 문제였지벽에 부딪히는 일벽을 넘는 일 장밋빛 사랑도 벽에 갇히면 캄캄해남루한 사랑을 벗어 두고그날 나는 벽에 쓰러져 울었지 네 벽을 온전히 갖춘 집 한 채를 위해막막하고 높은 세상의 벽과 싸우며평생을 바친 아버지가일어나거라 일어나거라꿈속에서 어깨를 두드렸어 세상에는절망 위에 누워본 자목숨의 끝으로 가본 자만이 아는더 힘이 있는 벽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