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훈 충북생생연구소장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려는 지방자치단체와 대형마트간 법정 공방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영업시간제한은 최근의 이슈이지만 대형마트와 관련된 문제가 거론된 것이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아직도 그 공방이 끝나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대형마트를 규제할 법적 권한을 중앙정부가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 문제의 발단은 70년대로 거슬러 간다. 국내시장 개방과 관련된 GATT 협상에서 유통시장 개방이 논의될 때 당시 협상 당사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낙후된 유통시장을 근대화하겠다는 일념으로 외국 대형마트의 국내 투자나 영업을 제한할 권리를 포기했었다. 후에 대형마트의 진출이 본격화 되면서 재래시장이나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커지자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이미 국제법적으로 권리를 포기한 상태라 속수무책이 돼 버린 것이다.

산업정책비서관 시절 대형마트 영업제한 문제를 놓고 대통령 주재회의를 두 차례나 했지만 국제법적 제약 때문에 자발적으로 상생협력 하는 것과 재래시장 등에 정부의 지원을 늘리는 것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안타까운 결론을 내렸었다.

좋은 해결방안이 있다면 그 때 이미 그 방안을 찾아냈을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수단이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제한을 하는 것인데 사실상 법적 기반이 취약해 권리를 보호하는데 제약이 있지만 그나마 다른 수단이 없다보니 지자체의 조례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런 긴 세월 동안 이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논의가 되었는데 과연 그동안의 논의가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인 소상공인들이나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하다. 그 효과를 계량적으로 파악해 보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재래시장과 소상공인 문제를 직접 관장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재래시장이나 소상공인들이 별로 이득이 없다면 그러면 이 공방의 관련 당사자들 중에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있을까? 현재 이 문제와 관련된 당사자들을 보면 지방자치단체, 대형마트, 시민단체, 재래시장을 포함한 소상공인, 소비자 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현안을 해결할 책무가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중립적으로 볼 수 있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중앙정부의 잘못을 지방정부가 떠맡은 꼴이어서 사실상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누가 팔던 값싼 가격에 좋은 상품을 사면 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공방이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지만 크게 손해 본 것도 없으니 중립적으로 볼 수 있다.

시민단체는 아마도 가장 득을 보고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선 직접 영업 당사자가 아니니 손해 볼 일이 없고, 일이 잘 되면 좋고 일이 안되면 대형마트나 행정 당국을 비난하면 되는 반면에 재래시장이나 소상공인들을 도와주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나쁠 일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문제를 쟁점화 해 왔는데 실질적으로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지역의 역량을 허비하지 말고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재래시장이나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받는다면 그것을 경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형마트가 있는 것이 재래시장이나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지역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 가능하다면 우리 지역이라고 못할 것이 무엇인가? 무조건 대형마트를 나쁘다고 몰고 가는 것보다는 서로 잘 협력해 모두가 이길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하며 대형마트도 모든 것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대형마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켜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깨달아 자발적으로 지역 상인들과 공생하는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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