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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다문화
거꾸로 보는 다문화
  • 동양일보
  • 승인 2012.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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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어’라는 말을 한다. 같은 계통의 언어로는 터키어나 일본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말도 알타이어의 일종이다. ‘알타이’라는 말은 ‘해’, ‘금’ 등을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과거에는 ‘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해부로, 해모수 등), 지금의 ‘金’씨 성과도 통한다. 러시아에도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있다.

이들은 생김새도 우리와 비슷하다. 터키에는 ‘알타이’혹은 ‘아타이’라는 성을 가진 종족이 많다. 우리의 김씨와 비슷한 종족으로 추정한다. 물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터키인은 유럽인과 섞여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러시아의 알타이 족은 우리 민족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실제도 필자의 제자 중에 알타이어를 쓰는 러시아인이 있었는데 얼굴만 보면 한국인과 닮았다.)

고문헌을 읽으면 돌궐 혹은 토이기라 나오는 글자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터키를 뜻한다. 회회족은 위그르족을 말한다.

옥저는 오오츠크를 말하고, 예맥은 예뱅키를 말한다. 우리의 영토가 그렇게 넓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들로부터 조공을 받았음이 고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고려시대 쌍화점에서 쌍화를 팔던 사람도 위그르 인이었던 것이다. 김수로 왕은 중국계일 가능성이 많고, 허황후는 인도(혹은 태국)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단군은 뎅그리라는 말을 한자로 가차한 것이니 무당이라는 뜻이다. 수메르어의 영향이다. 단군, 당골, 단골이 모두 무당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단골손님’은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귀한 손님을 말한다.

옛날의 무당은 집에 큰 행사가 있거나, 치병, 상사 등의 이유로 집에 자주 오는 귀한 분이다. 단군과 단골의 유래는 이렇게 된 것이다. 수메르어가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단군의 뜻이 여러 가지 의미로 분화되었듯이 우리 민족은 거대한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주변의 많은 나라들과 교류하며 조공을 받고 교류하였다.

원나라의 침입으로 억지 국교를 맺어 여성들을 보내기도 하였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화냥년(還鄕女)이다. 원나라에 갔다가 도망 온 여성은 정조를 잃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부르는 속된 표현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의 굴욕도 있었다. 오랜 세월 사대교린 정책을 펴면서 주변의 국가와 잘 지내고 또한 귀화한 사람들도 많다. 고려 광종 때 과거제를 시행하도록 권유한 쌍기도 후주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한 인물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주변의 나라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상황을 오랜 세월 연출하였다.

순수혈통주의를 부르짖으며 단군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단군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세계적인 언어였던 것이다. 뎅그리, 딩기르, 텡그리 등으로 주변 국가에서 많이 사용하던 단어다. 이것은 마치 주몽을 추모, 주림무얼, 주림 등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주몽이라고 하지만 이웃나라에선 ‘주림전’으로 동일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추모왕이라는 것은 이미 사극을 통해 일반에게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우리 글자가 없기에 한자를 차용해서 주몽이라고 썼을 뿐이다. 일본의 창세설화가 주몽과 김수로왕의 이야기를 합해 놓은 것과 같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해 주변국과 문화를 교류하는 중심지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다문화가 새로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나라의 침입과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겪으면서 우리는 강한 응집력을 필요로 했다. 일제강점기하에서는 더욱 심했고, 근자에 IMF라는 것을 당했을 때도 금 모으기 운동을 해서 쉽게 벗어나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요즘 그리스와 같은 나라를 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저력이 있는 나라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근저에 순수혈통주의가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연변에 사는 조선족은 그들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사고방식이 전혀 우리와 다른 외국인이었다. 미국에서 온 교포 3세도 역시 미국인이었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

오랜 세월 다문화정책을 포용력있게 펼쳐왔는데 지금에 와서 이들을 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교포만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허황옥과 쌍기를 받아들이듯이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다양한 문화는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자칫 단결을 저해할까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한국인이라고 자각할 때 더 큰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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