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런던 엑셀 아레나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복싱 라이트급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낸
한순철이 시상식에서 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라이트급(60㎏)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낸 한순철(28·서울시청)은 속초중 2학년 때 체육교사의 권유로 처음 글러브를 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몸이 약했고 운동신경도 뛰어나지 않았던 소년은 처음 출전한 전국대회 첫 경기에서 마구 얻어맞기만 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가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한순철은 곤궁한 살림살이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팀인 서울시청에 입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든 식당 일을 하며 큰아들인 자신과 남동생의 뒷바라지에 애쓰는 어머니를 위해 반드시 성공한 복싱 선수가 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아들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만사를 제쳐놓고 경기장까지 찾아와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던 어머니는 캄캄한 인생의 한 줄기 빛이었다.

한순철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밴텀급(54㎏)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은메달을 따내며 단숨에 한국 복싱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순철은 엄청난 기대를 받고 출전한 첫 올림픽 무대인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밴텀급 16강에서 랑겔 헥토르 만자닐라(베네수엘라)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키가 178㎝로 장신인 한순철은 밴텀급 체급에 맞추기 위해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감량하느라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링에 올랐으니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16강에서 패한 것이다.

감량의 부담을 덜기 위해 체급을 라이트급으로 올려 출전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의 후칭과의 준결승에서 4-1로 앞서다가 7-10으로 역전패하며 또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에서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낸 한순철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단 2명에 불과한 한국 복싱 대표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는 후배인 라이트플라이급(49㎏)의 신종훈(23·인천시청)이 독차지했다.

그러나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세계 랭킹 1위인 신종훈이 16강에서 알렉산다르 알렉산드로프(불가리아)에게 판정패하며 초반 탈락한 반면 세계 랭킹 19위에 불과한 한순철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어머니를 위해 반드시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던 한순철은 어느덧 스물두 살의 어린 대학생 아내와 두 살배기 딸을 둔 ''아빠 복서''가 됐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당장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이승배 복싱대표팀 감독이 한순철이 주저앉고 싶어할 때마다 "딸 생각해라", "군대 생각해라"며 독려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가족을 생각하며 고된 훈련을 묵묵히 이겨낸 한순철은 런던올림픽에서 매 시합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링에 올랐고, 결국 최소한 은메달을 확보하는 마지막 결승 무대까지 진출했다.

 

누구보다 올림픽 메달이 절박했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세계 랭킹 19위에 불과한 한순철을 결승 무대까지 올려놓은 것이다.

한순철은 12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결승에서 세계 랭킹 2위이자 2008년 베이징올림픽 페더급(57㎏) 금메달리스트인 바실 로마첸코(우크라이나)에게 아쉽게 패해 금메달 사냥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오직 ''아빠의 힘''으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은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한 그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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