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 전 청주 교동초 교사

 

생태계의 보고라고 일컫는 곳 그곳은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벼르기만 해 왔다. 그런데 동양일보에서 길 여행을 이곳으로 정했기에 열일 젖혀놓고 신청했다. 필히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다는 국립 수목원을 가게 되어 기대감이 크다. 우기는 지났지만 며칠간 국지성 소나기가 전국을 골고루 오르내리며 엄청난 물 폭탄을 뿌려주고 있다.

광릉 입구에 도착할 쯤 비는 보슬보슬 오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고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을 들어보니 조선의 왕 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왕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왕의 사친의 무덤을 원(園)이라하며 왕족,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의 무덤을 묘라 한다. 세조가 죽은 후 500년 동안 긴 세월을 세조의 후손들이 조선왕조를 유지했다. 그 이유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조선왕릉 중에 가장 좋은 자리라 한다.

특히 반가운 말씀은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 고향 보은이라 그런지 보은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반갑다.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니 정이품송의 손자 소나무 두 그루가 바로 앞에 있다고 한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어린 소나무는 늠름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 모습을 많이 닮았고 예쁘고 근사해 보였다. 못된 사람보다도 더 훌륭한 소나무가 아닌가. 유구한 역사 속에 찬란한 빛이 되기를 빌어 본다.

완만한 경사라서 울창한 숲길을 따라 힘들지 않게 올라갔다. 시야에 들어오는 능은 마치 녹색 비단을 펼쳐 널어놓은 듯했다. 가랑비가 살짝 지나간 후라서 그런지 그 빛이 더욱 짙녹색으로 빛났다.

광릉은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하여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봉안했다. 마치 V자 모양으로 두 능의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丁)자각을 세우는 형식인 동원이강(同原異岡)릉으로써 이러한 형태의 능으로는 최초라고 한다. 좌측 능선의 봉분이 세조의 능이며 오른쪽의 봉분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간소하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능의 보존관리를 위해 홀수 날에는 세조의 능을 갈 수 있고 짝수 날은 왕비의 능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왕비 능으로 발길을 옮겼다. 돌계단을 디디고 올라가며 다른 왕 능에 비해 많이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진 내리막길에서 ‘얼룩진 부귀영화를 얻고자 쟁취의 삶을 살아온 그가 회한의 그늘에서 그 얼마나 가슴 아파하였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광릉 맞은편에 있는 광릉수목원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광릉수목원은 540년간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 온대활엽수 지역이며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서어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어린나무부터 오래된 고목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해 있다. 2010년 6월 2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전나무 숲길로 오르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무들이 우람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쭉쭉빵빵하게 자란 나무들이 얼마나 늘씬하게 잘 생겼는지 모른다. 아마 사람이라면 홀딱 반할만하다. 진한 산소 향에 흠뻑 젖어보는 기막힌 시간일 텐데 비가 부슬부슬 내려 나무 향을 찾으려고 아쉬운 마음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산책로 양쪽으로 수많은 식물과 참나무와 가래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광릉수목원이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누구나 즐기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동물원에 들어서니 우리 안에 있는 늑대는 놀랐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옆집 멧돼지는 궂은 날씨라 그런지 곤한 잠에 취해 있다. 백두산 호랑이 역시 깊은 잠이 들어 깨우지 않으려고 발길을 돌렸다. 깊고 높은 산을 휘젓고 다닐 호랑이가 좁은 철망 안에 갇혀 있어서 안쓰럽다. 식물원에 들려 처음 보는 희귀한 식물에 눈을 고정시켰다. 펑펑 쏟아 붓는 빗줄기를 맞으며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야생화가 있는 화단사이를 이리저리 다녔다.

길 여행은 첫째 자신을 만나고 둘째 자연을 만나고 셋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자연과 20~30년 전에 같은 직장과 이웃에 살던 옛 정인들을 만나 반가웠다. 생태의 보고인 이곳에 와서 샅샅이 살펴보지 못하고 떠나 아쉬움이 남지만 좋은 추억을 만든 하루다. 느리게 걸으며 눈여겨보러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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