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은 어렵다’ 혹은 ‘다문화가정은 도와주어야 한다’ 등의 문장이 지금까지의 대세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다문화가정의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혀 산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진위여부를 떠나 옳다고 믿는다. 특히 요즘의 젊은이들은 ‘다르다’와 ‘틀리다’의 개념도 혼동하고 지낸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틀렸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다문화가족들에게 이제는 홀로서기를 하고 더 나아가 봉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하고 다닌다. 이주여성들 중에는 고학력자도 상당수 있고, 학력은 떨어지지만 무한한 능력을 지닌 여성도 많다. 본국에서 배우지 못한 한을 한국에서 풀어보려고 갖은 자격증을 다 취득하고 더 나아가 봉사하는 여성을 보면 대견하기 그지없다. 지난 봄 필자는 다문화가정의 남편들을 교육하다가 “우리도 봉사 한 번 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다행히 봉사부장도 선출됐고, 봉사의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우여곡절 끝에 군전체가 참가하는 것은 힘들고 면단위로 봉사에 참여하자고 해서 노인봉사를 했다. 경로잔치에 참여하여 노래도 부르고 국수도 나르면서 마을 주민들과 벽을 허무는 장을 열었다. 한국말은 조금 서툴지만 온 가족이 나와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은 모두 환영하였다.

자원봉사라고 하면 뭔가 시간이나 돈이 남아서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유능한 사람은 시간을 쪼개서 활용하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인생은 시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순간에 최선을 다 한 사람은 인생에 최선을 다 한 사람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봉사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문화가족들과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본 것이다. 겨울이 오면 그들과 함께 연탄 배달 봉사를 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중부대 한국어학과 학생들과 독거노인가정 연탄나르기 봉사를 하였다. 여린 학생들이지만 함께 하루 종일 마을을 다니며 고생하고 같이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웃을 때 사제 간의 정이 부자 간의 정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올 가을에는 우리 학생들과 다문화가정의 남편들이 합심해서 연탄을 배달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저녁 때 모두가 모여 막걸리도 한 잔 하려 한다. 따로 하면서 미진했던 부분을 함께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과 학생들은 지난해 1년 동안 모 방송국의 협조로 관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지도를 하였다. 처음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의 성적이 14점 정도 낮았은데, 1년을 가르치고 나니 거의 비슷해졌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중 성적이 낮거나 대인관계가 조금 특별한 친구들을 가려서 수업을 했다. 놀이로 친분을 쌓고, 어휘가 떨어지는 학생은 만화를 보면서 쉬운 것부터 익히고, 문장력이 떨어지는 친구는 사전을 보면서 단어익히기와 문장만들기를 하였다. 덜렁대는 친구와는 차분한 멘토를 붙여주었고, 여성적인 친구에게는 해병대 출신의 멘토를 붙였다. 1년이 지난 후 이들은 정말로 친형제자매 이상의 정을 쌓았고, 성적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대한민국과 필리핀이라고 부르던 녀석이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 

1년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의 전부를 배웠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는 아이도 있었고, 때려주고 싶은 것을 참느라 병이 생겼다는 학생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 하고 교직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지금까지 다문화가정의 가족들은 주로 받는데 익숙해 있다. 이제는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때 사회는 더욱 아름답게 바뀔 것이다. 노인봉사를 하면서 흘리는 땀방울에 비례해서 밝아지는 그들을 모습에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이제는 한국인 모두가 자원봉사자가 되어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