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두 <청주 봉명고 교사>

 

 



얼굴도 모르는 학생이 연구실 자리로 쭈뼛쭈뼛 찾아와 수줍게 무언가를 건넨다. 무엇이냐고 묻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기소개서’라고 답한다. 고3 담임도 아니고, 고3 수업도 들어가지 않는 나를 어찌 알고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어디선가 기숙사 학생들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었다는 소리를 듣고 염치불구하고 찾아왔다며, 조그마한 과자 봉지를 내민다. 기숙사 학생들이야 기숙사 담당 업무를 맡고 있기에 도움을 주었다지만, 기숙사 학생도, 담임반 학생도, 가르치는 학생도 아닌 아이를 마주대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다급했을 마음에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몇 시간 후에 찾아오라고 아이를 돌려보낸 후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역시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하고자하는 말은 많은데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니 중언부언하고, 구체적인 사례나 객관적인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본인을 자랑하고 있으며, 문항에서 묻는 기본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글의 내용이 엇나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하여 이번 기회에 지면을 빌어 한창 자기소개서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자기를 소개하는 법’, ‘막히지 않고 잘 읽히는 자기소개서 작성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보통의 학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먼저 희망하는 대학의 자기소개서 양식을 출력해 대충 읽어본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한글 프로그램을 구동시킨 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문항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어보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고민만 하다가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리고, 결국 본인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분량을 채우고 찝찝해 한다.

일단, 자기소개서 작성의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자기소개서 문항의 틀에 자신을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문항을 앞에 두고 그에 맞는 생각만 해내려니 답을 찾으려하면 할수록 사고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

컴퓨터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밀려오는 부담감을 떨칠 수 없다. 컴퓨터를 벗어나 A4나 B4 용지를 넓게 두고 가로 4등분을 한 후 교과능력, 특기능력,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으로 간단히 구분한 후 무작정 써내려간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일단 많이 쓰고 본다.

학생 본인이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면 온 가족이 출동해서라도 항목별로 많은 내용을 적는다.

자기소개서 문항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어 본인이 앞서 적은 사고의 결과물을 토대로 다양하게 연관 짓는다.

본격적으로 내용을 써내려갈 때도 기본적인 수칙이 있다.

◇문장은 간결하게

자기소개서의 많은 부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복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미리 손으로 써보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바로 써내려 가다보니 비슷한 의미의 단어나 문장을 계속적으로 반복 사용하며, 1문장의 길이가 4~5줄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문장은 간결하게 1~2줄 정도로 쓰는 것이 좋다.

◇문장은 생동감있게.

학생들이 사용하는 문장 중 자주 등장하는 것이 ‘~하게 되었습니다. ~인 것 같습니다. ~라고 생각합니다.’라는 형태들이다. 이러한 문장은 자기를 소개함에 있어 자신감, 명료성이 떨어져 보이게 하는 역효과가 있다. 애매모호한 문장보다는 단정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해야 할 것이다.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서술하든지 무조건 구체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사례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미사여구나 화려한 수식을 통해서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말고, 본인의 강점과 역량을 증명해 줄 다양하고 객관적인 사례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내용은 조건에 맞게

조건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막무가내로 써내려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문항에서 지원 동기를 묻고 있는데, 앞으로의 학업 계획에 대해 쓴다든지, 본인의 강점을 묻는데 오히려 해당 대학을 칭찬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조건조차 파악하지 않고 써내려가기에 급급한 것이다.

각 문항마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조건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소개서’에 소위 말하는 스펙들만 나열하기 보다는 그 속에 자기 자신, 본인 삶의 스토리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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