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외래어
무차별 한글파괴

한류열풍이 거세지면서 덩달아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또 한글의 우수성이 입증되면서 한글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글이 창제된 지 566돌이 된 해이자 일제가 1942년 조선말 큰사전 편찬사업을 주도한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투옥한 조선어학회 사건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외래어가 고상하고 세련됐다는 잘못된 사회풍조로 숭고한 한글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 우리말 사랑꾼이 우리말 해침꾼

8일 한글문화연대는 2010년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된 충북이 최근 신규 사업명을 영어로 신청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말 해침꾼으로 선정될 위기에 놓였다고 밝혔다.

충북도가 최근 지식경제부에 ‘에어로폴리스’ ‘바이오밸리’ ‘에코폴리스’ 등의 이름으로 신규 사업을 잇달아 신청했기 때문이다.

충북도가 신청한 ‘에어로폴리스’는 청주국제공항 인근에 항공정비업체가 밀집된 단지를 만들려는 것으로, 그동안 항공정비복합단지로 부르다가 경제자유구역을 신청하면서 갑자기 사업명을 영어식으로 변경했다. 또 도가 역점사업으로 꼽고 있는 사업 역시 ‘솔라밸리 마스터 플랜 및 솔라 그린시티’로 명명, 이 같은 지적을 받았다.

충북도는 2010년 2월 어려운 행정용어를 알기 쉬운 한글로 순화하고 국어능력가점제도 등 우리말·글 사랑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한글문화연대로부터 ‘우리말 사랑꾼’을 수상한 바 있다.

한글문화연대 관계자는 “2010년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된 충북도가 최근 신규 사업명을 외래어로 명명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신규 사업 명칭을 외래어로 명명한다면 올해 말 우리말 해침꾼으로 선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공공기관 등에서 우리말 사랑에 앞장서야 하지만 오히려 외래어를 남용하고 있어 일반시민들이나 사업장에서도 공공연히 외래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외래어 가득한 예식장

청주지역 예식장들의 외래어 남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주지역에서는 ‘루체피에스타’, ‘파비뇽’, ‘헤리츠’ 등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정체불명의 외래어를 사용하고 예식장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추세다.

루체피에스타(lucefiesta)’의 경우 ‘빛나는’을 뜻하는 스페인어 ‘lucir’의 활용형인 ‘luce’와 축제를 뜻하는 스페인어 ‘fiesta’를 합성어다. 이 합성어는 스페인어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패션(Fashion)’과 프랑스 남동부 강 하류에 있는 도시 이름인 아비뇽(Avignon)을 합쳐 만든 단어인 ‘파비뇽(Favignon)’도 마찬가지로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밖에도 어원을 찾을 수 없는 예식장 명칭도 많았으며 심지어 해당 예식장 관계자들도 어원과 뜻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외래어를 모르는 노인들은 해당 예식장 앞에서 예식장을 찾아 헤매기 일쑤다.

김씨는 “옛 명칭인 ‘대한예식장’만 기억하고 갔다가 한참을 찾았다”며 “생소한 외래어 때문에 예식장을 찾지 못하다가 지인을 만나 겨우 찾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청주대 국어문화원 관계자는 “외래어가 고상하고 세련되게 들린다고 생각, 고객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며 “그렇지만 신종 외래어들로 인해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우리말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말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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