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교환근무 시절, 토요일 오후는 어김없이 재래시장에 갔다. 인근 시라카와 강 코가이바시 다리를 건너 코가이 재래시장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신야시키에서 코가이 재래시장을 가는 데 족히 삼십분이 넘게 걸렸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재래시장 팬이었다. 재래시장을 고집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십년이 훨씬 넘은 옛일인데도 그 곳이 생각나는 것은 사람 냄새 물씬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가까운 곳에도 패밀리 마트가 즐비했다. 내가 살고 있던 독신자 아파트도 1층에 세븐일레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없을 때도 패밀리 마트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마트는 무미건조했다. 바이토 상은 항상 무표정했으며 기린의 목처럼 길게 나와 있는 전자판넬의 금액을 확인하고 돈만 지불하면 됐다. 금전등록기 벨이 울리고 계산서와 잔돈이 건네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마트는 말이 필요없는 공간이었다.
재래시장은 달랐다. 코가이 시장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호기심으로 다녔지만 점점 재래시장의 매력이 드러났다. 가격도 패밀리 마트보다 비싸지 않았다. 오히려 농산물은 싼 것이 많았다.
단골도 생겼다. 단골 야채가게 오바상은 늘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오늘은 뭐가 싸다는 둥 구입정보를 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빨리 독신생활 청산하고 좋은 사람만나 결혼하라는 걱정까지 했다. 자취생활이라 찬거리 사러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국에 처자식 있는 늦깎이 유학생인걸 알았다면 그녀는 어떤 얼굴을 했을까.
요즘 미디어에서 재래시장 활성화에 수 천 억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도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고민이 깊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떠오른 추억이다.
시장 활성화 사업이 대부분 아케이드 건축, 주차장 시설 등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주로 시설개선에 집중하는 것 같다. 많은 예산을 들여 시설을 현대화하는 사업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재래시장의 특징을 살리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과의 교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맛있고 친절하다고 소문난 집은 시골 구석구석 어디라도 찾아간다. 허술한 옛날 집은 오히려 그 낡은 정취가 명물까지 되지 않던가. 시설이 허술하다고 외면당하는 법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인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찾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번 방문한 손님이 스스로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솟게 만들어야 한다.
재래시장을 사람 냄새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허우대로 대형마트와 경쟁하는 것은 애시당초 게임이 안 되는 선택이다. 대형마트가 할 수 없는 것, 재래시장만의 장점을 특화해야 한다. 시장이 사람을 만나는 공간으로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인정이 그리워서 찾아오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그 인정의 핵심은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친절일 것이다. 일본과 문화는 다르겠지만 사람 마음은 다 한 가지 아닌가.
정부의 다양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잡는 일이다. 매달 봉급에서 일정금액만큼 상품권을 사주는 정성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리 없다. 애향심에 기대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오래가지 못한다. 적극적, 자발적 구매층이 늘어나는 것이 관건이다. 경제행위는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선택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내지 못하면 시행되고 있는 모든 노력들은 결국 공염불이다.
언젠가 자주 드나드는 단골가게 오바상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친절한 것도 좋지만 업소에서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손님을 접대하는 건 좀 심한 것 아니냐고. 아니란다. 상업은 본래 자신을 파는 일인데 그건 프로의 당당한 몸짓이며 직업인의 자부심에서 우러나오는 속 깊은 배려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게를 찾아주는 귀한 손님에게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묻는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진심담긴 친절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런 가게 어찌 다시 찾고 싶지 않겠는가.
지금도 해외 나갈 일이 있으면 어느 곳이건 반드시 재래시장에 들른다. 그만큼 재래시장은 사람을 끄는 고유의 매력이 있다. 물건만 사러 가는 게 아니다. 그냥 바람쐬러 소일삼아 구경을 가는 일이 많다. 어느 곳에서 건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아무리 돈이 대접받는 인간 소외의 시대라 해도 따뜻한 마음을 능가하는 환대가 있을 리 없다.
해결의 열쇠는 마음이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재래시장은 희망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