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환 세명대 교수

 

 

조금 지난 일이다. 친구가 일본 교토에 학술세미나에 초청을 받아간다고 했다. 교토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다 보니, 더 반가운 마음에 천룡사라는 절이 좋으니 가보고, 그 절의 가이세키 요리도 먹어보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친구가 일본에서 얼마나 즐겁게 보냈나 궁금하던 차에 통화를 했다. 별로였고, 분위기가 싸늘하더라고. 짐작 가는 일이었다. 지난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으로 양국의 갈등이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산하여 있는 상황이 명색이 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독도 수영을 한 송일국의 입국을 거부하고, 구혜선이 출연한 드라마 방영이 보류되었다는 말도 들렸다. 우리도 지자체에서 진행하던 교류사업을 중단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유독 일본과 미국에 협력을 유지하던 대통령이 갑자기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는 독도를 방문하고, 일본의 아킬레스건으로 볼 수 있는 일왕 문제를 언급한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다. 내가 이해 안가기는 일본 학자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전문성을 자랑하는 학자들이 유치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일본과 우리를 이렇게 감정의 회오리로 몰아가는 국가주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 일본이나 국가주의는 일본의 근대화 경험과 일본의 근대화를 투영한 식민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도 경술국치 이전에 동도서기의 전략이 개화의 논리였지만, 일본도 일찍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화혼양재의 전략을 취했다.

서구의 제도와 기술에 일본의 정신문화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천황제는 화혼을 강화하는 핵심고리였다. 이전에 다이묘들의 나라에서 새롭게 통일된 일본을 하나로 묶고,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천황제는 채택되고 강화되었다. 천황제는 제도와 의식으로 일상화되고 국민의 의식에서 신성시되었다. 일본의 왕은 천상으로 올라갔다. 거의 종교가 된 것이다. 사회의 모든 공공장소와 행사는 일본의 왕을 경배하는 장소와 시간으로 완성되어갔다.

학교는 근대학문을 배우는 근대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일본 왕의 새로운 신도를 키우는 장소였다. 교실은 일본 왕 부처의 신성한 사진이 걸리고, 행사는 일본 왕을 찬미하고, 그를 향해 허리를 굽히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공간인 서원이 성현을 배향하는 공간이었던 반면 근대 학교는 일본왕의 신성성에 바쳐진 공간이었다. 일본 왕의 신성성은 일제강점기에 학교에 불이 나서 일왕 부처의 사진을 못 가져 나온 교장이 자살한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미가제는 일본 왕에 대한 한없는 충성의 헌사였다. 개인은 사라지고 국가와 왕에게 온전히 바쳐진 존재인 것이다. 국가와 그 상징에 대한 매몰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전체주의의 깃발을 자랑스럽게 날리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는 전후 일본이나 한국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항복했지만, 미국의 전략에 따라 천황제는 살아남았다. 거기에 원폭에 따른 피해는 가해자로서 일본이 아니라 피해자로서 일본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히로시마 원폭기념관은 그 전시장이다. 좀 더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과거를 참배하는 것이 일본사회로서는 문화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에 바쳐진 혼령들의 성소다. 과거는 반성이 아닌 참배의 대상일 따름이다.

우리도 일본에서 해방된지 오래지만,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의 그림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영예도 국가의 이름으로 표창되고 헌사가 바쳐진다. 김기덕 감독의 말이 기억난다. 자신은 한국사회의 부조리, 자본주의 부조리를 들추어내는 영화를 찍었는데,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타면 국가에서 상을 준다고. 재미를 추구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빌보드 1위 등극은 국민적인 응원전이 되었다. 사회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개인의 행위는 국가가 귀착점이다.

일본이나 우리나 국가는 시민의 일상을 규정하고, 생각의 줄거리를 찬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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