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백제문화… 역사 속 시간여행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는 백마강을 황포돛대를 타고 바라보면 고란사와 낙화암 등 백제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자연 속 처연한 역사의 흔적

잊혀진 왕도(王都). 삼국시대 도성들 중 백제의 그것들은 잊혀졌다는 말이 어울린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고적에서 ‘평양은 적막한 중에 번화가 드러나고, 경주는 번화한 중에 적막이 숨어있는데, 백제 부여는 실시(失時)한 미인같이, 악스러운 운명에 부대끼다 못한 천재같이, 대하면 딱하고 섧고 눈물조차 그렁이는 곳’이라고 했다. 부여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아름다운 단풍 속 처연한 역사의 흔적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 부소산이다. 부여의 진산(鎭山·지역을 뒤에서 보호하는 산)인 부소산은 백제의 마지막 왕조가 살았던 왕궁과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해발 106m, 동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로 나뉘어 있다. 산의 남쪽은 산세가 완만하여 앞쪽에 시가지를 이루고 북쪽은 가파르며 백마강과 맞닿아있다.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는 백마강이 감싸 도는 부소산의 아름다운 정취는 물론이고 이곳에 남겨진 백제의 역사 또한 스쳐 지날 수 없다.

부소산길을 걸으면 2495m의 토성과 삼충사, 군창지, 사자루, 낙화암, 고란사 등 백제시대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부소산을 둘러싼 백제의 도성(都城)

부소산성은 평소에는 궁성의 정원 형태로 사용되다가 전쟁이나 환란이 닥쳤을 때 방어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부소산성 탐방은 산성 남쪽문인 사비문에서 시작해 삼충사와 영일루를 거쳐 부소산 정상에 있는 사자루로 간 다음 낙화암을 거쳐 고란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가장 선호한다.

백마강을 향해 서 있는 백제의 유적들을 만나는 산책길 곳곳에는 이젠 거의 완연한 단풍이 행인의 눈길을 잡는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 이곳은 유적지로서의 가치와 더불어 살아있는 생태계로 인간과 더불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패국의 마지막 군주 의자왕과 절벽으로 몸을 날린 삼천궁녀의 전설이 남겨진 낙화암◇부소산길 걸으면 백제의 옛 향기 느껴

부소산성 입구를 지나 걷다보면 오른편에 ‘삼충사’(충남 문화재자료 115호)가 보인다. 황산벌 전투로 유명한 계백의 위패가 봉안된 곳이다. 계백은 660년 5000명의 군사로 신라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사를 맞아 네차례나 승리를 거뒀지만, 백제는 결국 신라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당까지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문을 지날 때마다 풍기는 숭고함에 절로 숙연해진다.

영일루(충남 문화재자료 101호)를 지나 계속 오르면 산길이 나오는 데 잘 닦여진 넓은 길과 조용한 좁은 숲길을 선택할 수 있다.

부소산성 가장 높은 곳인 서쪽 봉우리에는 ‘사자루’(충남 문화재자료 99호)가 있다. 원래 백제시대 망대 역할을 하며 송월대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19년 임천면의 관아 정문을 옮겨 와 이름 붙인 것인데, 서문쪽 현판인 ‘사자루’란 글씨는 조선말 이친왕 이강이 썼고 백마강쪽 ‘백마장강’이란 글씨는 해강 김규진이 쓴 것이라 한다. 사자루 앞에 서면 옛 백제 사람들도 즐겼을 가을의 백마강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산을 넘어 이윽고 낙화암(충남 문화재자료 110호)이다. 패국의 마지막 군주 ‘의자왕’의 삼천궁녀 전설이 남겨진 곳. 이곳에서 드는 의문 하나가 있다. 정말 의자왕은 미친 왕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수직절벽이 있는 낙화암에서 절벽 아래로 3000명이 모여 떨어졌다는 것도 시쳇말로 ‘구라’가 아닐까. 어쨌든 이는 모두 백제가 졌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낙화암 아래 10분 정도 내려가면 고란사(충남 문화재 98호)가 나온다.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백제인들이 떨어진 곳은 백마강이 아닌 고란사 근처 바위 계곡이었다. 그 이름도 어여쁜 고란사(皐蘭寺)는 낙화(落花)가 된 백제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지어졌다. 지금도 식수로 애용되는 고란수가 나오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다년초 식물 고란초가 있는 천년 생태 현장이다. 고란사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을 내려가 구드래 나루터에서 내린다. 편도 4000원(성인 기준) 정도로 나루터에 내리면 구드래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에 다다르면 부소산행이 끝나게 되는데 가는 동안 선상에서 낙화암과 고란사를 품은 부소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제문화, 화려한 부활 ‘백제문화단지’

부여 시내에도 백제의 문화를 엿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시내 중심의 정림사 절터다.

부여 흥망을 가장 중심에 지켜 본 정림사터에 남아 있는 것은 오층석탑. 좁고 앝은 단층기단과 배흘림 기법의 기둥 표현으로 멀리서 보면 석탑보다는 목탑에 가까운 느낌이다.

부여 읍내 남쪽에 가면 궁남지라는 연못이 있다. 백제 무왕이 만든 이 연못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연못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백제의 서동(나중에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 연못은 연꽃 천국으로 소문나 있다. 아름다운 이곳은 부여사람들이 아끼는 소중한 휴식처다.

이제 백제문화단지로 갈 시간. 백마강을 건너 5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데, 입구 정양문을 보면 용마루 양 끝을 날개모양으로 장식한 ‘치미’가 눈에 띈다. 백제문화와 일본문화의 유사성을 볼 수 있는 것.

사비궁의 넓은 마당에선 정면으로 보이는 천정문의 매끈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단지에 재현된 사비궁은 궁궐의 중심이 되는 천정전과 문사전, 무덕전 등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형태를 하고 있다. 천정전은 사비성의 상징적 공간으로 신년하례식, 사신 접견 등 왕실의 중요 행사 때만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곳에 가면 백제 사비 시기의 중궁을 재현한 중궁전, 왕의 집무실 등을 볼 수 있다.

사비궁을 나와 오른쪽에는 커다란 목탑 하나가 있다. ‘능사’다. 백제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다. 능산리에서 발굴되었던 것을 원형과 똑 같은 크기로 이곳에 재현했다고 한다. 능사 근처 뜰에는 고분공원이 있는데, 사비시대의 대표적인 고분 형태를 볼 수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는 역시 생활문화마을. 백제시대 귀족부터 군관가옥, 중류계급과 서민계급의 집들을 재현해 놓았다. 군관 계백의 집, 건축가 아비지의 집, 의박사 왕유릉타의 집, 불상조각가 도리의 집 등이 있다. 생활문화마을 위엔 한성백제의 도읍도 재현해 놓았다. <이도근>

■여행 정보

 

●교통

▷천안-논산고속도로 서논산 IC~4번국도 부여 방면~능산리고분~가탑교차로~부여시내

▷서천-공주고속도로=부여 IC~부여종합운동장~은산천교~부여시내

 

●여행 문의

부여군청 문화관광과=☏041-830-2244. 백제문화단지=☏041-830-3400.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