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에이스' 김광현(24)의 역투가 선수단의 '가을 기억'을 일깨웠다.

김광현은 2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등판, 5이닝 6안타 1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막고 승리를 이끌었다.

2연패로 벼랑 끝에 몰렸다가 2연승으로 균형을 맞췄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이날 승리가 SK 선수단이나 팬 모두에게 의미가 큰 이유는 따로 있다.

2007년 10월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두산에 첫 두 경기를 내준 SK는 3차전에서 반격에 성공하더니 4차전에서 4-0으로 승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고는 내리 2승을 추가해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SK는 지금껏 한국시리즈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첫 두 경기를 내리 내주고도 역전 우승한 팀으로 남았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승을 일궈낸 기억은 가을이면 100%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SK의 팀 컬러로 고스란히 계승됐다.

한국시리즈의 분수령이던 4차전에서 맹활약해 흐름을 뒤바꿔 놓은 주인공이 바로 김광현이었다.

약관의 신인이던 김광현은 정규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4차전에 '깜짝 선발'로 등장, 7⅓이닝 무실점으로 당시 투수 3관왕 다니엘 리오스와의 대결에서 완승했다.

사상 첫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이 김광현의 역투라는 기억 위에서 이뤄진 셈이다.

"SK에 큰 투수가 탄생했다"던 김성근 당시 감독의 말대로 김광현 역시 이날의 역투를 계기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로 성장했다.

이날 벌어진 4차전은 5년 전 그날의 짜릿한 기억과 묘하게 닮았다.

우선 2연패 후 첫 승리를 거둔 직후에 나온 김광현이 결코 믿을 수만은 없는 카드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인이던 당시와 달리 지금의 김광현은 팀의 간판이지만 최근 2년 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려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한 터였다.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에 호투했으나 5차전에는 조기 강판해 몸 상태에 물음표를 남겼다.

실제로 김광현은 직구가 높은 곳에 형성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여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날카롭게 꺾여 들어가는 슬라이더를 앞세워 삼성의 공세를 슬기롭게 넘기고 승리 투수가 됐다.

공교롭게도 경기 내용까지 5년 전과 비슷한 점이 많다.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SK는 김광현의 역투 속에 조동화·김재현의 연속타자 홈런으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경기에서도 승부를 가른 것은 4회 터진 박재상·최정의 연속타자 홈런이었다.

김광현은 지난 16일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역투하고 나서 "선수단에 2007년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일부러 그때처럼 역동적인 투구자세로 공을 던졌다"고 했다.

또 28일 3차전을 앞두고 3개의 우승 반지를 가져오는 등 예전의 좋은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김광현은 4차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뒤 기자회견에서도 "계속 2007년 생각을 했고, 경기 전에 칠판에도 '어게인 2007'이라고 적혀 있더라"면서 "좋은 생각을 하니 좋은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운명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특유의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김광현의 소망이 이뤄졌다. 동시에 SK의 가을은 더욱 뜨거워졌다.

김광현은 "앞으로도 철저히 몸 관리를 해서 어떤 보직에서든 힘을 보태겠다"며 "지난해에 빼앗겼던 우승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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