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가가 뛰 놀던 옛 기억

이야기와 정이 넘쳐나던

공동체의 어울림 그려

해자네 앞마당은 넓었다. 병풍처럼 둘러친 산 밑에 안채가 아늑하고 행랑채를 나서면 앞마당이었다. 그 마당은 동네 길이기도 했다. 울도 담도 없어 장에 갔다 오는 사람, 고개 넘어 향림으로 가는 사람들도 이 마당을 지나 다녔다. 지나가다 물 한 그릇 얻어먹고 가기도 하고, 행랑채 쪽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쉬며 우리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학교가 파하면 남자고 여자로 으레 그 마당에 모였다.’(수필 해자네 앞마당)

마당 같은 수필을 쓰고 싶다는 박영자(·72·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개신푸르지오아파트·010-9220-5617) 수필가의 수필집 해자네 앞마당이 출간됐다.

1990년 등단 이후 은단말의 봄햇살 고운 날등을 발간했던 박 수필가의 세 번째 수필집이다.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는지 올해로 꼭 22년이 됐습니다. 등단할 때 평생 세 권의 작품집을 내야겠다고 맘을 먹었는데 꿈을 이룬 것이지요. ‘마당 같은 수필을 쓰고 싶습니다. 누구나 맘 편이 와서 이야기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마당’. 제 수필이 마당처럼 편안하고 넓은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표제작 해자네 앞마당은 그의 어릴 적 친구 해자의 마당을 배경으로 한다. 담도, 울타리도 없었던 해자네 앞마당은 동네 사람 누구나 거리낌 없이 들려 이야기와 정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어른들은 그 곳 행랑채 쪽마루에 앉아 쉬기도 했고,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으레 마당에 모여 저녁때까지 함께 어울리던 공간이었다.

작가는 어릴 적 함께 정을 나누었던 해자네 앞마당에서의 추억을 더듬으며 초등학교 유괴사건’, ‘아이들의 이기주의등 현대의 문제점을 짚어낸다. 따끔한 충고보다는 품 넓은 따스함으로.

문학평론가인 김우종 전 경희대 교수는 박영자씨는 자신의 수필이 바로 정의 미학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자신이 이런 수필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몸에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치수와 재질과 색깔과 모양에서 모두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는 것은 매우 보기 좋은 일이라고 평했다. 또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은 박씨의 수필은 묵은지처럼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다한 여성으로서 삶의 의미와 가치 창출의 꽃을 수필로써 피워놓고 흔들리지 않는 중정(中正)의 미()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일흔이 넘었으니 욕심내서 글을 쓰기 보다는 편안하고 더욱 부끄럽지 않은 글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자네 앞마당처럼 오고가다 부담 없이 들러 쉴 수 있는 그런 글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1941년 충주 출생으로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38년간 일했다. 1990년 한국수필로 등단한 이후 수필집 은단말의 봄햇살 고운 날등을 발간했다. 충북수필문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충북문인협회·충북여성문인협회과 한국수필가협회·한국수필작가회 이사, 동양일보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수필문학상·충북수필문학상·충북여성문학상·청주시 여성상 등을 수상했다. 선우미디어, 251, 1만원.

<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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