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훈 양업고 명예교장

대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남을 고려치 않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성향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고 사회 곳곳은 힘들어 한다.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마저도 부모와 자식 사이, 그리고 부부들 사이에서 공통의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희박해져가고 불협화음으로 골치를 썩인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의 하나 된 의미의 합의점을 도출하기조차 두려워한다. 행복한 긍정의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어른들이 성숙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결코 행복한 하나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아주 어린 시절 수학 계산에서 실수를 더하라면 금방 답을 얻었지만, 학년이 오르고 실수가 아닌 분수를 셈하라면 갑자기 복잡한 마음들을 경험한다.

‘분수를 떨고 있다.’라는 말이 있다. 공동체 구성원이 각기 다르게 분수를 떨면 행복한 하나 됨은 실현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세상사를 놓고 각자의 마음을 정확한 실수로 표현하면 좋으련만, 각자는 자신의 진정한 실수를 감추고, 대신 바라만 보아도 복잡한 분수 같은 마음을 하고 사니 긴장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런 사람들의 분수 같은 마음을 하나로 더해보려해도 실생활에서 답을 구하기가 훨씬 복잡해진다는 의미이다.

얼마 전 학교급식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무자들이 권익보장을 위해 경고성 일일 파업을 단행했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파업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을 당장 학교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사실 힘이 없다. 또한 그들에 대한 관심과 감사하는 마음도 부족했다. 15년 비정규직 급료가 월 100만원이라, 정규직은 시시 때때로 외치지 않아도 소극적 권리를 보장받으면서도 비정규직들은 최저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자기 자식 한 끼 밥 대신 빵으로 먹인 것이 부모의 마음으로 언짢을 수도 있으나, 비정규직의 심각성을 헤아리지 못한 비난이 내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문제의 해법으로 일일 파업으로는 적극적인 해결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작은 쟁의가 언젠가는 비정규직인 그들도 정당한 처우를 받아 보려는 희망으로 했을 것이다.

신문 기사의 내용이 분수 같은 사안을 놓고 더하기 하자는데 공통분모가 없이 말장난만 벌리는 미성숙을 보여 그들 마음이 많이 상할 것이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건전한 협상 테이블을 놓고 마주 앉아 어른들답게 성숙한 자세로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당장은 문제가 수면 아래에 있지만 언젠가 수면 위로 부상되어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한다.

살아가며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하나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 시절, 실수를 더해가는 계산은 아주 쉬웠지만, 갑자기 만난 분수 더하기 셈은 조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 분수를 더할 때면 분수의 분모에 해당하는 수의 배수를 늘어놓고 서로 같은 값의 최소공배수를 공통분모로 하여 통분하고 크기를 똑같이 하는 분수를 만들어 이를 더하면 하나 된 분수의 답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셈법은 쉬운 계산이 되었지만, 현실적용에 있어 합의된 답을 얻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계산으로 남아 있다. 비록 어린 시절은 ‘오지 선다형’의 답을 구하는 셈 정도의 지식에 한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어른은 지식을 실생활에 응용하여 생명이 되게 하는 법을 실천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단순 지식은 어른에서는 지혜로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때 수학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지식과 관련지어 성숙한 해법으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자연스런 방법으로 이와 같은 공통분모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서로가 살아가며 행복해질 수 있는 공통분모이고, 이가 바탕이 되었을 때 사회는 행복한 하나 됨을 이룰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행복한 하나가 되려고 해도 분수 셈처럼 공통된 밑바탕이 없다면 하나 됨의 시도는 불협화음만 무성할 수밖에 없다.

공부해서 세상을 행복한 하나 됨으로 실현하도록 사람을 키우는 노력이 ‘교육’이다. 유치원부터 여러 교과목을 익히는 이유도 어른이 되었을 때 각자의 위치에서 지혜로운 자로 살기 위해서이다. ‘교육’은 공동선을 이루는 공통분모를 찾아 합의된 하나를 만들 줄 아는 성숙한 인간 만들기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의 ‘조화’와 ‘일치’에서 생성된 공통분모를 마련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사람이 많을 때 사회는 행복한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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