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복 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반간계는 적 스스로 장성(長城)이나 방어를 허물게 하기위해 거짓정보나 소문을 흘려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계략이다. 손자병법 용간편에 보면 전문적으로 첩자를 이용하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데, 반간계에 대한 높은 평가와 함께 여러 계책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전략은 중국 전쟁사에 적극적으로 활용된 선례가 정사에 실려 있다.

누르하치는 1626년 20만의 팔기 정예병으로 명나라의 금주, 행산, 연산, 탑산, 대능하, 등 방어선을 차례로 격파하여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명나라 조정은 원숭환으로 하여금 영원성에서 그를 막게 했다. 누루하치는 먼저 병사를 파견해 영원성 일대를 포위하고 후방과의 연락을 차단시키는 고립작전(孤立作戰)에 들어갔다. 몇 달 동안 양측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당시 만청의 팔기군은 두 겹의 철갑으로 무장하고 있어 화살이나 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용맹했지만 영원성을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누루하치는 탄식했다.

“내가 일찍이 25세에 기병하여 43년 동안 전투에서 진적이 없고 또 공격하여 성공하지 못한 적이 없으나 유독 영원성만은 빼앗지 못했구나!” 결국 몇 달 뒤 그는 원계보라는 곳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누루하치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황태극이 계승하여 청을 건국했는데 황태극은 보기 드물게 뛰어난 재능(才能)과 모략(謀略)을 겸비한 황제였다. 그는 정면으로 전쟁을 벌일 경우 원숭환 이라는 뛰어난 명장을 이길 수 없음을 간파(看破)하고 화친을 요구하는 한편 명황제와 원숭환을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당시 명나라 조정은 몹시 부패하고 숭정황제 역시 17세에 불과했다. 원숭환이 청군과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 전과를 올리고 백성으로부터도 두터운 존경과 믿음이 커지자 황제와 조정대신들은 내심 원숭환에 대하여 의심과 불안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황태극은 이전에 명나라 황실의 말을 관리하는 태감 두 명을 사로잡았는데 한사람은 양춘이고 다른 사람은 왕성덕이다. 황태극은 이 두 사람을 적극적으로 간계(奸計)에 이용하고자 하였다. 저녁이 되자 청나라 장수인 고명중과 포승선은 황태극의 은밀한 지시대로 옥중에 있는 두 태감이 들을 수 있도록 밀담(密談)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번에 군대를 퇴각시키는 것은 우리황제와 명나라 원숭환과의 밀약 때문이다. 곧 대사가 성공리에 이루어질 걸세.” 옥중에 있던 두 태감은 잠든 척하면서 분명히 듣고 있었다. 다음날 양춘과 왕성덕은 적군이 퇴각하는 몹시 혼란한 틈을 타 탈출하여 자신이 옥에서 들을 이야기를 곧바로 숭정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제는 그동안 자신이 원숭환에게 품었던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는 듯하자 첩보(諜報)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고 그를 소환,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다. 원숭환의 부하 장수들은 이 소식을 듣고 경악했지만 반발할 경우 진짜로 반란을 획책했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결국 원숭환은 능지처참의 형을 당해 사라졌다. 원숭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황태극은 곧바로 공격하여 명나라를 멸망시킨다. 삼국지연의에도 동오의 주유가 반간계를 이용하여 조조의 수군장수 채모와 장윤을 제거하고 연환계를 펴 백만대군을 격파한다. 만약 이러한 계책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적벽대전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듯한 반간계 하나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직간접으로 우리 선거에 개입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국론이 분열하고 사회가 혼란과 무질서로 얼룩진다면 그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남남 갈등을 유발 시키려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간계를 들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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