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고 싶지? 억울해서 잠도 안오지?”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리는 남자아이 목소리.
“당연하지! 그것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고 싶다고!”
나는 펀치를 날리듯 허공을 향해 소리쳤어.
오늘도 학교가 끝난 후 피씨방으로 달려갔어. 성민이, 지환이랑 권총쏘기 게임을 하기로 했거든.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더니 둘이 같은 편을 하고는 나 혼자 놀으래. 아마도 성민이가 복수하는 것 같아. 오늘 아침에 숙제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싫다고 했거든. 나는 힘들게 다 풀어서 했는데 일분도 안되서 다 베껴버리는 거 진짜 싫단 말이야. 오늘은 안보여준다고 했더니 피씨방에서 복수를 하는거야. 치사하게 친구까지 제 편으로 만들어서 말이지.
“그런데 넌 누구야?”
생각해보니 이상하잖아. 내방에서 누가 말을 건단 말이야. 혹…혹시 무서워 시리즈에서 봤던 콩알귀신? 거꾸로 통통 튀어 다니며 아이들의 눈알을 구하러다닌다는… 아…안돼! 낮에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밤에는 귀신이 잡아먹고.…내 인생은 왜이리 슬픈거냐고.
천장에서 무언가 뚝 떨어졌어. 나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아이야. 머리중앙에 밤톨만한 뿔이 있어. 분명히 귀신은 아닌것 같아. 그럼 이 아이는 누구지?
“안녕. 내이름은 큐큐. 내가 니 소원을 들어줄게.”
큐큐란 아이는 음흉한 웃음을 지어보였어.
“정말? 날 도와줄거니?”
“그래. 그렇다니까?”
야호! 왕따 당하는 내가 너무도 가엾어서 하늘이 날 도와준거구나!
“대신에…”
앗, 공짜는 아무것도 없다는 엄마 말이 맞았어. 그럼 그렇지.
“나에게 바쳐야 할 것이 있어.”
큐큐는 곰곰이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어.
“딱지 스무 장. 종이인형 열장… 어이! 꼬마야. 적으라고. 다 외울 수 있니?”
연필을 찾고는 부랴부랴 적기 시작했어.
“그리고…”
“뭐가 이렇게 많아! 정말. 그것도 다 이상한 것들만.”
“싫어? 싫음 말던가. 나도 바쁜 몸이라고….”
큐큐는 금새 손가락으로 검은 구름을 만들더니 올라타는 시늉을 했어.
“안돼! 가지마. 원하는 것 다 할게. 소원만 좀 들어줘.”
큐큐의 다리를 붙잡았어. 사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냐고. 너무나 신기한 존재인 큐큐만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거야.
“나무 팽이 다섯 개. 이것들이 다 준비되면 서쪽 하늘의 별을 보며 쿰푸파바 쿰쿰파!를 세 번외쳐. 그러면 내가 널 찾아올게.”
혹시나 찾아오지 않을까봐, 새끼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어.
날이 밝았어. 부랴부랴 메모에 적힌 것들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어. 일단 딱지 스무 장! 학교 앞 스타 문구점으로 달려갔어. 이런. 그곳은 딱지를 팔지 않는대. 아무도 사지 않아서 없어진지 오래래.
“아직도 딱지를 만드니”
아저씨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셨어.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고민을 하니까,
“만들어주랴?”
아저씨는 보고 있던 신문을 가지고 오셨어. 쓱싹쓱싹 접으니 금방 네모난 딱지가 완성되었어. 아저씨가 따라해보래.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려운거야? 안되면 다시 접어야하고, 정말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어. 난 컴퓨터 켤 때도 10초 이상은 못 기다린다고.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는 말을 걸었어.
“예전에는 딱지 많이 따는 친구가 젤루 부러웠단다.”
“딱지를 딴다구요? 어떻게요?”
아저씨는 네모낳게 접은 딱지 두 개로 시범을 보여주셨어. 힘껏 던져서 뒤집히면 이기는 거래.
“진짜 재미없어보여요. 팔만 디게 아플것 같고.”
“얌마, 이게 얼마나 흥미진진한 놀이인데 그러느냐. 무시하지마라. 힘이 아닌 기술을 요하는 고난이도의 놀이란 말이다.”
물어본 적도 없는데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원래 스타문구점 아저씨는 말없기로 유명한데 말이야. 가끔 샤프나 지우개를 사러가도 무표정으로 거스름돈만 거슬러 주시곤 했거든. 아저씨의 친구 상구란 분은 딱지놀이를 하다가 모두 잃은 것이 억울해서 앉아서 울다가 방구를 뽕 뀌는 바람에 방구쟁이란 별명을 얻었대. 태어났을때부터 아저씨일듯한 문구점아저씨에게 어린시절이 있었다니. 기분이 이상해.
드디어 딱지 20장 완성. 아저씨 덕분이야. 신난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뛰어갔어.
이제는 종이인형 열 장. 이건 또 뭐람? 인형은 아무래도 여자들이 잘 알 것 같아. 엄마는 뭐하시지?
“엄마! 엄마!”
엄마는 거실에서 친구 분과 커피를 드시는 중이었어.
“엄마. 종이인형 만들어줘!”
엄마는 깜짝 놀라시는 듯 했어.
“컴퓨터 하느라고 불러도 못들은 척 하더니 왠일이실까?”
왠지 도와주실것 같지가 않아. 사실 컴퓨터 할 때 엄마가 말을 걸면 얼마나 귀찮은지 아니? 그것도 모르시고 내 탓만 하시다니.
“종이인형이라면 우리 어렸을 적 갖고 놀던 그 인형 말하는거니?”
엄마친구분이 흥미를 보이셨어. 다행히도 말이야.
“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도화지랑 사인펜 갖고 오너라.”
엄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미소를 지으시고, 아주머니는 손을 걷어붙이셨어. 준비물을 가져오자 익숙한 솜씨로 스윽스윽 그리셨어.
“경애야. 우리 어렸을 적에 종이인형 갖고 참 많이 놀았는데. 그치?”
아주머니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어.
“그러게 말이야. 얄미운 친구 있으면 몰래 목을 슬슬 찢어놓고 말이지.”
“어머, 얘. 난 그러지는 않았다.”
엄마도 따라 그린다고 그림을 그렸는데... 에휴. 정말 엄마의 그림솜씨는 형편없었어. 아이유처럼 예쁜 여자로 그리면 안되나? 열명을 다 그린 후 아주머니는 가위를 갖고 오라고 하셨어. 슥삭슥삭 오리기 시작하셨지.
“해완아. 다른 인형과 달리 종이인형은 망가지기 쉬워. 늘 소중하게 다뤄야하지.”
엄마는 그 틈을 노려 나를 혼내셨어. 정말 대단하셔.
“우리 해완이는 좋은 인형을 사줘도 휙 집어던진다니까. 소중한 걸 몰라.”
“우리 때는 정말 조심조심히 다뤘는데. 우리에게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인형이었으니까.”
엄마와 아줌마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시작하셨어. 겨우 종이인형을 만드시며 추억이 그렇게도 많으시다니. 엄마랑 아줌마 덕분에 두 시간 만에 종이인형 완성! 신난다!
이제는 팽이만 남았어. 문구점에 팔겠지? 해 질 녘 임에도 불구하고 스타문구점으로 뛰어갔어. 하지만 플라스틱 팽이 밖에 팔지 않는데. 아 정말 속상해. 왜 이리 구하기 힘든 것만 적혀 있을까? 집에 가니 아빠가 집에 오셨어. 저번 주에 게임만 한다고 회초리를 맞은 후로는 사이가 좋지 않은데. 지금 내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용기를 내서 안방으로 들어갔어.
“아빠 팽이 만들 줄 아세요?”
“팽이? 해완이 팽이 가지고 놀려고?”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맨날 컴퓨터만 하더니 왠일이냐.”
아빠는 씨익 웃으셨어. 그러고 보니 내 사랑 컴퓨터를 안 한지 삼일이 다 되어가. 곧 기다려라. 컴퓨터야. 큐큐를 통해 복수만 하고 나면 신나게 이틀 밤을 새워주마.
“잠깐 기다려봐.”
아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셨어. 한시간 즘 지났을까? 초인종이 울렸어. 엄마는 문을 열고는 깜짝 놀라셨어.
“아버님? 어쩐일이세요. 몸도 안좋으신데..”
할아버지! 며칠 전 당뇨병 때문에 백내장수술을 받으신 우리 할아버지가 오셨어. 옆 동네에 사시지만 컴퓨터 게임하느라 잘 못갔었어. 신이나서 할아버지 품에 포옥 안겼어.
“그래. 해완애비야. 팽이를 만들어달라고?”
“네. 아버님. 해완이가 컴퓨터 게임 안하고 건전한 놀이를 하려는 걸보니 너무 기특해서 말이지요.”
“아이고, 아범이 걱정 많이 하더니. 우리 해완이가 드디어 철이 드나보다. 허허허. 땔감거리로 쓰려던 나무 좀 가지고 와봤다. 조각칼 좀 다오.”
곧 할아버지는 정교한 솜씨로 나무를 파기 시작하셨어. 네모난 나무는 둥그래지고 곧 도토리같이 동글동글 해졌어.
“아버님께서 어렸을 때 참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멍하니 할아버지의 솜씨를 감상하시던 아빠가 말씀 하셨어.
“그래. 그랬지. 어렸을 때 놀게 이것밖에 더 있었나. 힘들게 만들어서 주며는 옆집 덕이, 기억나지? 덩치 크고 사납게 생긴 아아 말이야. 그 애한테 매일 빼앗기고 와서 다시 만들어달라고 아범이 얼마나 보챘었나? 덕이 아배와 친해서 뭐라 말도 못하고 내가 아주 속이 터졌었다.”
할아버지는 껄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어. 아빠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졌어.
“아버님, 정말이요? 이이는 늘 자신이 골목대장이었다고 하던데.”“웃기는 소리하지말라해라. 저놈이 매일 얻어맞고 와서 내 속이 얼마나 까맣게 썩었는지 모른다. 덩치만 컸지. 저놈이 순둥이다 순둥이.”
엄마와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웃음소리가 더 커졌어. 아빠만 창피해서 어찌하실 줄을 모르셔.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조각칼로 나무를 파시며 참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 할아버지의 허리가 아프실까봐 안마를 해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시더라. 많이 야위셨어. 왜 몰랐지? 옆에 사시는 할아버지셨는데….
드디어 팽이도 다섯 개 완성. 드디어 기대하던 순간이 다가왔어. 방으로 들어와 전등불을 끄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어. 별이 무척 밝아 달이 또렷하게 보여. 쏟아지는 달빛아래 보자기에 꽁꽁 싸둔 준비물들을 모두 펼쳤어. 저쪽이 서쪽이랬지? 쿰푸파바 쿰쿰파! 쿰쿰파바 쿰쿰파! 목소리가 너무 작나? 쿰푸파바 쿰쿰파! 쿰푸파바…
포기할 때 즈음 구름을 타고 달빛 아래를 가로질러 오는 큐큐가 보여. 나는 너무 신나서 손을 훠이훠이 저었어. 큐큐는 재빠르게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왔어.
“왜 이리 주문을 많이 외치는 거니? 머리가 쿵쿵 울려서 혼이 났잖아.”
나는 자랑스럽게 모은 모든 물건들을 보여주었어. 큐큐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감탄을 했어.
“우아~! 얏호. 드디어 구했다. 그래. 네 소원이 무엇이니?”
“응. 내 소원은…”
가만. 내 소원이 무엇이었지? 아. 맞아. 성민이와 지환이를 약 올리는 거였어. 그거였지. 그런데 소원이 이루어지는건 단 한번뿐이잖아.
갑자기 내 머릿속에 스치는 모습들이 있었어. 딱지를 접느라 구슬땀을 뻘뻘 흘리시던 스타문구점 아저씨, 웃음꽃을 활짝 피우시며 종이인형을 그리던 엄마와 아주머니, 아픈 몸을 이끌고 몇 시간동안 나무를 파신 우리 할아버지…
“빨리 말하렴. 나 정말 바쁘거든. 또 누가 쿰푸파바 쿰쿰파를 외치는군.”
큐큐는 나를 재촉했어. 머릿속에 복잡해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이럴때는 시간을 벌어야해.
“그런데 큐큐. 음… 넌 왜 나에게 이것들을 달라고 했어?”
“그거야 몽땅 없어졌으니까.”
“몽땅?… 왜?”“나도 몰라. 혹시 너는 아니? 왜 하루아침에 다 없어졌는지…”
“……”
“우리 도깨비들도 너희처럼 노는 걸 엄청나게 좋아해. 그런데 요즘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놀잇감을 구하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가 없게 되었어. 정말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너무 피곤해.”
큐큐는 울먹거리며 말했어. 생각해보니 큐큐도 정말 불쌍한것 같아.
“그나저나 소원이 뭐냐니까?”
“큐큐야. 내가 놀아줄까?”
“거… 거짓말하지마. 아빠 도깨비가 요즘 아이들은 같이 노는거 엄청 싫어한댔어.”
“아니야. 난 안그래. 우리 팽이 가지고 마당에서 놀자.”
“음… 그… 나저나… 소원이 뭐냐니까?”
“소원같은거 없어. 그냥 놀자. 내가 준비한 거 다 너 줄게.”
“이 귀한걸 주는 것도 모자라 나와 놀아주다니. 거짓말! 거짓말일거야.”
“아냐. 지금 나가자!”
“으앙! 진짜 놀아주려나봐!”
큐큐는 감동한 듯 목소리를 떨었어. 우리는  신이나서 환한 달빛 아래 쿰푸파바 쿰쿰파! 춤을 추었어.♠


   동화  당선소감 / 임 유 나
창작에서 얻을 수 있는 가슴 떨리는 감동들
어린 시절 읽었던 이름 모를 동화가 기억납니다. 주인공 영이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산길을 헤매다 귀여운 도깨비를 만나는 내용이었지요. 한줄 읽을 때 마다 얼마나 꿈결같이 달콤했는지 모릅니다.
삼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동화가 쓰고 싶었습니다.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찾아보고, 수많은 동화책들을 빌려보며 무작정 써내려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막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질이 있기는 한지, 방향은 올곧은지 그 무엇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불안감에도 끝까지 쓸 수 있었던 까닭은 단 한 가지. 직장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창조해냄으로써만 얻을 수 있던 가슴 떨리는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침침한 눈을 비비시며, 딸의 햇익은 동화들을 읽고 평해주시느라 애쓰신, 예쁘고 똑똑하신 우리엄마 박정아 여사님. 존재 자체로 힘을 주는 내 동심의 고향 사랑하는 동생 유진이, 냉철한 비판과 따스한 격려로 자극을 주고 사랑을 주는 현우씨. 막막해 멈춰있을 때마다 “넌 정말 소질 있어. 네가 끝까지 글을 쓰길 바래”라며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못할 따스한 격려로 등을 토닥여줬던 충주 예성여자고등학교 에고이스트 친구들(경희·경숙·미희·미정·진아· 정희·미선·경아·선주) 개구쟁이처럼 순수하게 예쁜 추억을 만들었던 청주대학교 01학번 인문학부 친구들(윤정·보라·은영·은실) 늘 애정 깊게 저를 챙겨주시는 친척 분들. 깊은 감사를 어떻게 전해야할까요.
무척이나 산만한 저를 뼈있는 강의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신, 글 읽기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일러주신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종진 교수님. ‘모교에 자부심을 갖거라, 상상력이 세상을 지배한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여전히 가슴깊이 새겨져있습니다. 머리 숙여 깊은 감사드립니다.
동화를 쓴 지 삼 년. ‘동양일보’라는 유서 깊은 신문사에서 등단이라는 우직한 날개를 달아주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동양일보 당선 작품들과 심사평들을 내리읽으며 당선자분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요. 힘들게 주신 이 기회를 소중히 잡아 한국을 나아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동화작가가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미숙한 제 글을 예쁘게 읽어주신 심사위원 유영선 동화작가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끊임없이 배우며 읽고 사유하며, 쓰겠습니다.
노력이 재능이 되더라는 말을 뼛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임유나
●1982년 경남 마산 출생
●충주예성여고·청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원 전국백일장 참방
●현 충주 샐리스 레스토랑 운영
●충주시 연수동 유원2차아파트 5동 502호.☏010-4848-9844

   동화 부문 심사평
신선한 발상, 스토리진행 상상력 돋보여
신인문학상 응모 원고를 받으면 언제나 설렌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신인들의 신선한 마음이 원고 속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올해 본심으로 넘겨온 작품은 29편, 작품을 쓴 이들의 정성과 동심을 헤아리며 꼼꼼히 숙독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이야기 속에 몰입돼 즐거웠다.
올해는 풍작이다. 표현이 미숙한 3~4편을 제외하곤 모든 작품들이 훌륭했다. 기본적으로 동화의 틀을 갖추고 있었으며 스토리와 표현도 크게 나무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한 편의 당선작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재독 삼독을 했다.
그리고 ‘백두, 꽃길을 달리다’(신채연), ‘생강나무’(채만호), ‘나는 말하지 않았다’(서선연), ‘쿰푸파바 쿰쿰파’(임유나), ‘급발진 우리 오빠’(이규훈) 등 5편을 선에 올렸다.
작품을 고르면서 아쉬웠던 점은 최근의 응모추세가 동화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판타지 동화는 점점 줄어드는대신 소년소설류의 생활동화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 응모작 중에도 80%가 생활동화였다는 점이 그러한 추세를 대변해준다 할 수 있다.
‘백두, 꽃길을 달리다’는 인명구조견으로 활약하다 은퇴한 백두가 우람이네 집으로 온뒤 새생활에 적응하던 중, 산사태가 나자 우람이를 구하고 희생한다는 감동의 이야기로 백두의 1인칭 표현이 자연스럽다.
‘생강나무’는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 사는 민수가, 위층으로 이사온 뇌병변 장애아 용준이를 미워하다가 동생으로 여기게 된다는 휴먼스토리. 민수의 심리표현이 탁월하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는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왕따문제를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세 작품은 잔잔한 감동과 함께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으나 스토리 전개가 상식적이고 주제와 내용면에서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먼저 내려놓고, ‘쿰푸파바 쿰쿰파’와 ‘급발진 우리 오빠’ 두 편을 최종심으로 올려놓고 고민을 했다.
‘쿰푸파바 쿰쿰파’는 컴퓨터게임에 빠진 아이에게 작은 도깨비 큐큐가 나타나 어른들을 통해 어린시절에 즐겼던 놀이를 되찾게 해준다는 내용으로 재미와 교육의 양날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판타지성 동화이고, ‘급발진 우리 오빠’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오빠 때문에 속상하지만 우애있게 오빠를 챙기는 동생의 이야기를 실감있게 표현한 글이다. 
두 편을 놓고 고심한 것은, ‘쿰푸파바…’는 신선한 발상과 스토리진행이 흥미를 끈데 비해 문장표현이 좀 떨어지고, ‘급발진…’은 문장이나 어린이의 심리묘사가 뛰어나 완성도가 높은데 비해 스토리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인문학상이 신인을 발굴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을 감안해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인 ‘쿰푸파바 쿰쿰파’를 당선작으로 민다. 당선작가는 정진을, 아쉽게 기회를 놓친 분들은 다음의 희망을 만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 유영선(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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