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훈 충북생생연구소장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를 중심으로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 특히 목전에 닥친 인수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필자는 대통령비서실 근무를 하면서 대통령이 바뀌는 과정을 두 번이나 경험하였다.

첫 번째는 문민정부에서 국민정부로 정권이 이양되던 때다. 보수적 정권에서 진보적 정권으로 정권이 최초로 전환되던 시절이라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에서 김영삼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뀔 때 같은 당인데도 구성원이 틀리다보니 노태우정부 비서실에 있던 사람들이 마치 피점령군 같다고 했는데 문민정부에서 국민정부로 바뀔 때는 정말 그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30대의 새파란 인수팀원들이 일반직 공무원 출신인 40~50대의 비서관, 국장 등을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 하였다. 일반직 공무원 출신들이 불만이 많았지만 혹시 신분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아무 소리 못하고 인수팀이 요구하는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였다. 필자는 당시 비서실장 직속부서에서 근무한 연고로 비서실 업무를 인계하는 실무책임자 역할을 수행해 그들과 부딪치는 일이 더 많았다.

어찌 됐던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법률적 형태로 구체화 되어 정부의 예산과 인력 지원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그전까지는 아무런 규정 없이 구성되고 운영되어 체계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문민정부 말기 차기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인수를 위해서는 인수위 활동에 대한 법적인 지원 근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인수위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였다.

두 번째는 참여정부에서 이명박정부로 이양되던 때이다. 인수위가 구성되고 인수위 활동이 전개됐는데 문제는 인수위에서 일반 부처에다 참여정부가 잘못한 것을 작성해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아직 임기가 두 달 남아있던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이 참여정부의 잘못한 점을 적시해 인수위에 제출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다. 장관들이 그런 불만을 국무회의 석상에서 거론하자 당시 노 대통령은 대로했다. 사실 참아도 될 텐데 그냥 넘어가면 남은 임기 두 달 동안 완전히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을 우려해 본 때를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소위 친노 측근 참모들의 건의에 따라 이런 식으로 하면 인수인계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후 신, 구 정부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명박정부 인수팀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는 인수를 받지 않겠다고 해 결국 이명박 정부 임기 개시 전까지 대통령비서실 업무와 관련된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정의 핵심적인 결정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비서실에서 이루어지는데 대통령 비서실 업무를 인수인계 받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그 결과 당시 노무현대통령이 주도했던 한미FTA협상과 소고기 협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소고기 협상과 관련한 촛불시위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두 번의 인수위 활동을 지켜보면서 과거 인수위의 활동은 인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경우 인수팀은 과거 정부에서 각 부처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를 파악하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업무파악에 기초하여 향후 각 부처를 맡을 사람들이 어떻게 각 부처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건의를 한다. 또한 이미 각 부처와 관련된 주요 정책은 공약의 형태로 공개되었기 때문에 인수위가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이미 공표된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우리는 인수과정에서 인수위가 뭔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쓴다.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내려는 데 중점을 두고 국민들의 관심을 끌 이벤트를 하려다 보니 온통 시끄러웠다. 이번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를 전문가 중심으로 소규모로 꾸릴 것이라고 한다. 과거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잘 파악해서 새로운 국정운영에 접목하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요란하게 떠들지 말고 조용히 일을 처리했으면 한다.

인수위는 단지 인수위이지 정책을 만들고 주도하는 곳이 아니다. 두 달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과거 정부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사실상 벅차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