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범 덕 청주시장

새해 바라는 바를 사자성구로 말해달라는 요청에 고심 끝에 만인동락(萬人同樂)이라고 정했습니다.

한마디로 시민이 모두 즐길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눈물이 많았습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유난히 큰 눈이라 그런지 조금만 마음이 울리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힙니다. 그러나 공연히 쥐어짜는 슬픈 장면보다는 감동적인 장면에서 눈물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리면 예외 없이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영화나 소설을 읽을 때에도 그렇고, 남의 얘기를 들을 때도 감동적이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대학 때는 영화 ‘스팔타카스’를 보며 반란을 일으킨 스팔타카스가 들판에서 역시 노예가 된 아내를 만나는 장면에선 통곡을 하며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는 강풀이라는 젊은 작가가 지은 ‘그대를 사랑합니다’란 만화를 읽었는데 처음으로 사랑을 받아본 할머니가 그 사랑을 준 할아버지와 생이별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진하게 흘린 기억이 납니다. 이런 때는 꼭 아내와 딸들이 제 얼굴을 봅니다. 아빠가 흘리는 눈물을 알기 때문이지요.

이런 마음 약한 제가 요즘 또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회복지공무원의 생생토크입니다. 청주시내 30개 동에서 직접 복지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을 몇 명씩 모아 담당업무 가운데 특별한 사례를 골라 이야기하고, 그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프로그램입니다. 사람 사는 일이 워낙 다양하고 케이스가 각각 달라 그 모든 것을 지침대로 할 수 없는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서로 논의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막상 시작해보니 과연 소설로도 나오지 않은 기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101세 되신 할머니의 진단을 위해 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그게 10년 만의 외출인 할머니께서는 병원인데도 마냥 좋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는 이야기, 9세에 고아가 되어 60년 가까이 시장에서 막일하며 살아온 할머니에게 40년 전 호적을 해준 90세 되신 할아버지께서 청주를 찾아오신 이야기 등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동 주민센터를 순방하면서 어려운 분들을 찾아뵈었더니 역시 같은 사례가 많더군요. 93세 되신 시력장애인인 할머니를 수발하시는 84세 되신 이종동생 할아버지, 조그만 구두 수선방을 하면서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다리 한쪽 못쓰는 3급 장애인 등 감동적인 삶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넉넉해야만 나눔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문에서 자주 봅니다만, 기초생활수급자인 분이 자기 생활보조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또 폐지를 주워 모은 귀한 돈으로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내놓으시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만인동락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눈물 속에 감동이 있게 됩니다.

새해에도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일들을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일들이 우리 청주에서 자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