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에 먹칠은 하지 않겠다"던 '부산 사나이' 송승준(33·롯데)이 약속을 지켰다.

송승준은 4일 대만 타이중의 인터컨티넨탈 구장에서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호주와의 2차전에 선발 등판, 4이닝을 2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한국의 기사회생을 이끌었다.

송승준은 자신의 첫 WBC 등판에서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일반적인 프로야구 정규 경기에서는 선발 투수가 5이닝 이상 던져야 승리투수가 되지만, 투구 수 제한이 있는 WBC에서는 선발승 요건에 이닝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기쁨보다도 한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호투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0-5로 완패, 자칫 1라운드에 탈락해 전 대회 준우승국의 체면을 된통 구길 처지였다.

당장 호주전에서까지 패배한다면 그대로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승리하더라도 2라운드에 진출하려면 다음 경기에서 총력전을 벌여 크게 승리해야 하는 만큼 선발투수가 오랫동안 잘 던져줄 필요가 있었다.

송승준의 어깨에 걸린 무게가 그만큼 컸던 셈이다.

그러나 미국 마이너리그 무대에서 눈물 젖은 빵을 삼키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롯데의 토종 에이스로 숱한 고비를 넘기며 다져진 송승준의 심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날 훈련장에서 진한 사투리로 필승을 다짐하던 부산 사나이의 투지가 고스란히 공 하나하나에 담겼다.

공이 매우 좋은 편은 아니었다.

몇 차례 시속 142~143㎞를 찍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직구는 140㎞를 전후해 형성됐고, 볼넷 두 개와 몸에 맞는 공 한 개를 내주는 등 제구 불안을 드러낸 장면도 종종 나왔다. 그러다 보니 투구 수도 다소 많아졌다.

그러나 "지금 구위를 따질 때가 아니다"라던 말대로 불안함을 넘어서는 정신력이 그를 지탱했다.

다행히 예리한 각도를 잃어버리지 않은 포크볼이 건재했고, 여기에 자신감 있게 직구를 던지며 삼진 5개를 곁들여 호주 타자들을 요리했다.

1회에 석연치 않은 보크 판정을 받거나 잘 들어간 공이 볼 판정을 받는 등 기분이 나빠질 법한 순간도 꽤 있었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송승준의 투지에 힘을 얻었는지 1회 최정, 4회 김현수 등 동료들의 좋은 수비가 이어졌고 타선도 초반에 승리를 예감할 만한 점수를 뽑아줬다.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실망을 안긴 대표팀에 희망의 빛이 드는 순간이었다.

4회 2사까지 무안타로 호투하던 송승준이 5회 선두타자에게 두 번째 안타를 맞고 제한 투구수를 채운 뒤 물러나자 야구장을 찾은 한국 응원단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송승준은 경기를 마치고 "구속 따위를 체크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경기를 돌아보면서 "포수 강민호가 마치 나를 조종하듯 잘 이끌어준 것이 호투의 계기가 됐다"고 공을 동료에게 돌렸다.

이어 "투구하러 올라가며 응원단이 내 이름을 연호하는 것을 듣고 무조건 이길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도쿄돔과 샌프란시스코까지 응원하러 오실 기회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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