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든 10년이든 삼성화재서 뛰고파"…"귀화는 생각 안해봐"


28일 인천 도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프로배구 2012-2013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 레오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올 시즌 한국프로배구는 레오의, 레오에 의한, 레오를 위한 무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용병 농사'의 승자는 삼성화재였다.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23)가 제 이름인 '쿠바 특급' 레오 덕이다.

레오는 2005년부터 5년간 쿠바 주니어 국가대표로 뛰고 2009년 성인 대표로도 발탁됐다. 2011-2012시즌에는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소속팀의 정규리그 및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끌어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이후 레오는 러시아 클럽 파켈과 3년 계약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정원이 차는 바람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 마침 새 용병을 찾던 삼성화재와 인연이 닿았다. 당시 삼성화재는 러시아로 떠난 '캐나다산 폭격기' 가빈 슈미트의 빈자리를 메우려고 고심 중이었다.

지난해 9월 삼성화재가 레오의 영입을 발표했을 때 키 205㎝에 몸무게 78㎏로 다소 말라 보이는 그가 곧 한국 배구코트를 지배하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누구인가. 한국배구 최고의 명장, 특히 용병 농사에서만큼은 좀처럼 실패를 겪지 않은 지도자 아니던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시즌 동안 프로배구 무대를 평정한 '크로아티아 특급' 안젤코 추크,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세 시즌 동안 한국 코트를 맹폭한 가빈 등이 모두 신 감독의 손을 거쳐 갔다.

신 감독은 이름값은 덜하지만 성실함을 갖춘 선수를 발탁, 팀에 녹아들게 하는 신통력으로 쟁쟁한 공격수들이 즐비한 프로배구에서 늘 정상을 지켰다. "용병은 실력보다도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신 감독의 지론이다.

안젤코, 가빈처럼 레오도 한국 무대를 밟을 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올 시즌 한국배구에서 가빈의 뒤를 이를 외국인 선수로 레오보다는 같은 쿠바 출신인 LIG손해보험의 까메호 드루티가 더 큰 기대를 받았다.

레오보다 네 살이 많은 까메호는 2005∼2008년까지 쿠바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올림픽에도 출전한 거포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최고 용병은 레오였다. 레오는 가빈의 그림자까지 완전히 지웠다.

레오는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867득점으로 미차 가스파리니(현대캐피탈·741점)를 따돌리고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공격 부문에서는 59.69%의 역대 최고 공격성공률로 역시 정상에 올랐다.

서브에서는 세트당 0.561개로 네맥 마틴(대한항공·0.564개)에게 0.003개 차로 1위를 내줬지만 오픈(55.43%)·퀵오픈(75.00%)·시간차(72.29%)·후위(60.49&) 공격 등에서 월등한 성공률로 모두 1위에 오르며 포효했다.

정규리그에서 맹활약한 레오는 챔피언결정전 세 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40득점씩 고공비행을 펼치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일찍 결혼한 레오는 아내(스테파니)와 아들(이안)이 있다.

지난 1월 쿠바 정부의 자국민에 대한 외국여행 자유화 조치로 레오는 3년 만에 어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구단에서 항공비와 국내 체류 비용을 대 레오의 어머니 이네스 마르티네스씨가 한국을 방문, 눈물의 '모자상봉'이 이뤄졌다.

이후 레오는 어머니가 직접 보는 앞에서 뛰고 있다. 가족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은 그를 더욱 단련시켰다.

선수들을 칭찬하는 데 인색한 신 감독은 시즌 초반 "파워는 좀 떨어지지만 공 처리능력이나 배구의 이해도는 가빈이 처음 왔을 때보다 낫다"면서 레오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다만 신 감독은 레오가 삼성화재에 들어온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자 크게 혼을 낸 적이 있다고 한다.

레오는 "자신은 가족이 있기 때문에 배구를 해야 한다"며 백기를 들었고, 이후 강도 높은 훈련도 성실히 참가해 왔다.

레오는 올시즌 임대 선수로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시즌이 끝나면 러시아 팀으로 돌아가야 한다.

삼성화재 구단은 당연히 다음 시즌도 레오와 함께 맞이하고 싶어한다.

레오는 "우승을 확정하고 객석에 있는 어머니를 보니 감격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고 기뻐했다.

그는 "배구 시작 후 늘 기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며 "국가대표를 거치면서 항상 경기장을 찾아와주셨고 힘들 때 항상 용기를 주셨다"며 하늘에서도 손자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레오는 "신치용 감독님이 날 보내지 않는 이상 3년이든 10년이든 이 팀에 남고 싶다"며 임대 신분임에도 내년에도 계속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귀화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주변에서 추진 중인 귀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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