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금 형 경찰대학장

순경에서 36년 만에 경찰 ‘넘버 2’ 올라

여성 첫 치안감… 여경역사 새로쓰는 ‘개척자’

여성·청소년 전문가… “충북 출신 자부심”

개척자는 힘들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 길을 해매고, 때론 거친 난관을 해체며 없는 길을 뚫고 간다. ‘금녀(禁女)의 영역’을 새롭게 열고 있는 이금형(55) 신임 경찰대학장 내정자는 개척자 특유의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치안감인 경찰청 경무국장으로 있던 그는 지난 29일 발표된 경찰인사에서 여성으로는 경찰 창설 68년 만에 처음으로 치안정감에 올라 뉴스의 한 가운데 섰다. 치안정감은 경찰 계급 중 치안총감인 경찰청장 다음으로 높은 자리. 전국의 10만 경찰관 중 5명밖에 없는 고위직이다.

그는 승진소감을 묻는 질문에 “승진을 하게 돼 영광스러운 기분”이라면서 “임기 동안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치안전문가를 양성할 것”이라며 책임감을 내비쳤다.

이 내정자는 현역 여경 중 최고위직으로 순경에서 시작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여경으로는 세 번째 총경, 두 번째 경무관이며, 2011년 사상 첫 여성 치안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승승장구 뒤에는 어려운 청소년기가 자리한다. 지난 1958년 청주시 운동동에서 5남1녀 중 3째로 태어난 그는 대성여중 2학년 때 아버지가 암에 걸린 뒤 사업실패가 이어지며 시련을 겪었다. 가세(家勢)가 기울어 상고(대성여상)에 진학했고, 고교를 갓 졸업한 1977년 만 19세 나이에 미대 진학의 꿈을 접고 경찰에 입문(여경 공채 2기)했다.

갈고 닦은 미술 실력을 인정받아 몽타주 요원으로 선발되며 과학수사의 길에 들어선 이 내정자는 탁월한 실무 능력을 인정받는가 하면, 남자들과 같이 치른 수차례의 승진시험을 모두 한 번에 패스하는 등 열정적으로 일했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관련 업무에선 ‘1인자’로 꼽힌다. 2001년 경찰청 여성실 초대실장으로 근무하며 여경기동수사반을 전국으로 학대 설치했고, 성매매 피해여성 긴급지원센터, 성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 ‘182’ 실종아동찾기센터 등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2011년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서는 특별수사팀을 편성, 성폭력 교사 등 14명을 형사입건해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완의 계기와 함께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이 내정자의 경찰 생활은 치열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1981년 충북도경 상황실 근무 당시 군 복무 중이던 남편 이인균(56·신세계 이마트 부사장)씨와 만나, 2년 뒤 결혼한 그는 첫째를 임신했을 땐 몽타주 요원으로 “범인 얼굴을 노상 그렸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임신 사실을 숨긴 채 토막 난 시체 손가락을 닦았다”고 했다. 임신 6개월 때임에도 임신한 것 표내지 않으려 원피스를 입고 다닐 정도.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고, 바쁜 일과와 승진시험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 결국 1995년 방송통신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 행정대학원에서 ‘비행소년에 대한 경찰의 다이버전 정책에 관한 연구’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따냈다. 이런 그에게 ‘또순이’, ‘불도저’ 등의 별칭이 붙었다.

“남자들에게 공부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집에서 자기 전이나 설거지를 하면서도 녹음기를 항상 틀어놓고 지냈어요. 이런 모습에 아이들이 알아서 공부한것 같아요.” 이렇게 쓰다 버린 녹음기만 5개에 달할 정도다.

경찰과 아내, 엄마의 ‘1인3역’을 훌륭히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맏딸은 2007년 행정고시에 최연소 합격, 둘째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셋째는 연세대 졸업 후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잘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이들을 키워 준 시어머니께는 죄송하고, 잘 자라 준 아이들도 고마워요.” 이 내정자는 모든 것을 “‘고향’과 ‘가족’의 덕분”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증조부·모에 할머니, 시부모까지 네 어른을 병 수발하는 어머니 한동복(82)의 모습을 보고 자랐고, 1남6녀의 집안으로 시집온 뒤엔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경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고향 여러분들의 응원에 언제나 감사합니다.” 충북경찰청장으로 다시 한 번 고향을 찾고 싶었다는 아쉬움을 내비친 이 내정자는 “충북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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