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구익균(사진) 선생이 8일 오전 7시 50분 별세했다. 향년 105세.

1908년 평북 용천에서 출생한 선생은 1928년 신의주 고보에 재학 중 잡지 '신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구속됐다. 이듬해 3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의주 학생 의거를 일으켰다.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 한국유학생회 간부로 흥사단에 가입했다.

1933년 광둥의 중산대학에 근무하면서 한국독립당에 가입, 한국유학생 지도책으로 활동했다. 1935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36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은 1남 2녀가 있다. 발인 10일 오전 10시, 장지·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빈소·서울적십자병원 영안실 303호실. (연락처=02-2002-8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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