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가 여의치 않다면 극장가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연예계 성상납의 굴레를 파고 든 영화 노리개와 악몽같은 대재앙과 공포를 다룬 테이크 쉘터가 잇따라 개봉한다. 탄탄한 구성으로 관객들을 유혹할 두 영화를 미리 만나보자.
성상납의 굴레 파고든 노리개
영화 노리개는 잊혀진 한 사건을 일깨운다. 한 여배우가 사회 유력 인사들에게 성상납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성상납을 받은 리스트가 떠돌면서 잠시 세상은 시끄러운 듯했지만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 사법부의 재판을 거치면서 처음 거론됐던 이름들은 슬그머니 사라졌고 점점 대중의 뇌리에서도 잊힌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최승호 감독은 처음부터 고() 장자연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는 영화에 나온 인물과 사건은 모두 실제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현실의 소재를 가져와 허구를 뒤섞어 그린 영화가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될 소지를 대비한 것인 듯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과 겹치는 이미지들을 늘어놓으며 현실의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띤다. 저예산영화치고는 짜임새 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인다.
아울러 이 영화는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취해 가해자들이 진실을 덮으려 하는 추악한 행태와 피해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을 대비시키며 관객의 공분을 일으킨다.
특히 마지막 선고 공판에서 판사가 최후 증거 채택을 거부하고 가해자에게 불리한 공소 사실 변경을 허락하지 않는 등 사법부가 가해자의 편에 치우진 모습은 영화 부러진 화살을 떠올리게 한다.
악몽같은 대재앙 테이크 쉘터
무시무시한 폭풍이 시커멓게 밀려온다. 하늘에선 썩은 기름 같은 비가 쏟아진다. 거대한 새떼가 무자비하게 달려들고, 기르던 애완견마저 팔을 물어뜯는다. 상냥했던 마을 사람들도 괴물처럼 변해 몰려온다.
이런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혼자만 멀쩡하다면 그 공포감은 어떨까. 과연 배겨낼 수 있을까.
영화 테이크 쉘터는 현대인들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극도의 공포감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최근 주목받는 미국의 신예 감독 제프 니콜스의 작품이다. 두 번째 장편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내공이 대단하다.
큰돈은 없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던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갑자기 악몽에 시달리면서 일상의 모든 것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남들은 모르지만 분명히 엄청난 공포가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를 준비하듯 세상이 끝나는 그날을 대비한다.
영화는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누구나 안고 있는 인간의 잠재적 공포를 놀라울 정도로 잘 담아냈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뛰어난 화면 구성은 극도의 공포를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이런 빼어난 요소들과 주제에 대한 공감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방공호로 대피해 방독면을 쓴 한 가족이 서로 머리를 기대어 앉은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든다. 영화는 잔잔함을 밑바닥에 깔고 가면서도 슬그머니 닥쳐오는 공포감을 서서히 높여감으로써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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