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덕 보은군 내북면 창리 이장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선행을 베풀라고 했는데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모교인 초등학교를 찾아 34년째 장학금을 전달한 양재덕씨(68·보은군 내북면 창리·☏010-5467-6521).

청주지역 초등학교 운전원으로 일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뒤 고향에 돌아와 이장을 맡은 지 6년째다. 학교 통학차량 안전도우미로 어린이 곁을 지키면서 교통사고 예방은 물론 어린이 인성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기울여 이장 할아버지로 정이 듬뿍 들었다.

29살에 고향을 떠났다가 31년 만에 돌아온 양씨는 내북초 25회 졸업생이다. 학교 교육자재 납품회사 근무 10여년 만에 성실하고 곧은 품성을 인정받아 학교 운전원으로 특채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 고마움은 모교 후배들 사랑으로 이어지고 금전적 도움을 베풀게 된다.

학생들과 연을 맺은 그는 고향의 후배들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딱한 사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매년 졸업식 때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12만원의 장학금을 보냈다.

지금의 돈 가치로는 별게 아니었지만 당시는 4~5명의 입학금이 되는 매우 큰돈이었다.

용돈 좀 아끼고 덜 쓰면 시골의 어린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생각일 뿐 낯을 낼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졸업식에 참가치 않고 무명으로 계속 남고 싶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졸업식 때 참가할 것을 권유받아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만큼 순수함을 강조한 것이다.

퇴직이후에는 학교가 알아서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매년 20만원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무통장 입금시키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 학교를 다녀봐서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형편상 할 수 없는 모교의 후배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을 주고 싶어 일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장이 되고 학교차량 승차 도우미로 어린이들과의 연을 잇고 있다.

농촌 어린이들은 다문화와 결손 가정이 많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크기 때문에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잔소리를 못한다. 제 멋대로 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자율학습으로 인해 가정의 대화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에서 줄 곳 생활했던 양씨는 나름대로 인성 교육이 필요함을 느끼고 차량을 타고 내릴 때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등을 일일이 가르쳤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쑥스러워 모기소리만 하던 목소리를 냈으나 양씨의 지도를 받은 뒤 씩씩해 졌다.

지나가다가 어른들을 보면 멀리서 뛰어와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넨 뒤 갈 만큼 명랑해지고 어른들과 친숙하게 됐다.

이처럼 아이들이 인사를 잘하게 된 배경에는 운전기사 곽은기씨도 한 몫 했다. 으레 통학차량에 오르면 인사를 해야 버스가 출발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승차 도우미와 운전기사, 어린이가 3위 일체가 돼 인사하기 운동이 정착 된 것이다.

이어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을 잘 듣고 ‘물 떠다 드리기’나 ‘심부름 잘하기’등 잔소리 같은 교육에도 효과가 이어졌다. 단순한 차량탑승 도우미가 아니라 가정교육 도우미 역할로 후반기 인생을 재미있고 보람 있게 보내고 있다.

큰집에서 자라던 윤호·윤미 자매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어도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이장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가끔 전화를 할 만큼 정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마을 이장으로도 분주하다. 겨울철 눈이 오면 차량 소통에 지장이 없도록 꼭두새벽부터 눈을 치우고 노인대학 학생 수송 차량을 운행하는 등 봉사정신으로 지역사회 혁신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특히 배상록 면장이 추진했던 ‘남의 흉보지 말고 이웃을 보살피면서 합심하자’는 의식개혁 운동에 앞장서 변화의 물꼬를 트는데도 한 몫을 한 지역사회의 리더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내북면 발전협의회장 권한대행, 내북면 장학회 이사, 내북면 애향동지회 회장 등을 맡아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글/임재업·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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