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지난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러운 자진 사임 발표는 천주교 신자를 비롯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600년 만에 처음 벌어진 일.

전 세계는 그러나 곧 고령의 내 기력으로는 더는 교황직을 제대로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확신에 이르렀다는 베네딕토 16세의 용기 있는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교황직을 거부한 이는 여기 또 있다.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원제 ‘Habemus Papam’)는 교황 선종 후 선출된 새 교황이 도저히 못하겠다고 도망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광장에 모인 추모객이 전임 교황을 애도하는 가운데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단이 대성당 내부를 엄숙하게 행진하며 추모 미사를 드린다.

이어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 선거인 콘클라베가 시작된다.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수차례 검은 연기가 나온 뒤 마침내 멜빌 추기경(미셸 피콜리 분)이 새 교황에 선출된다.

수석 부제 추기경이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하베무스 파팜“(새 교황이 탄생했다는 뜻)을 외치며 새 교황의 선출 사실을 발표하는 순간, 교황은 고통스럽게 절규하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친다.

새 교황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보여야 할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는 커튼만 펄럭이고, 교황의 강복을 기다리던 대광장의 신자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소명소망사이에서 괴로워하며 때로는 물건을 집어던질 정도로 신경질적인 증세까지 보이는 새 교황. 그는 결국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며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극도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한 인간의 진솔한 고민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직업을 묻는 여성 심리치료사(마거리타 부이)에게 내놓은 배우라는 교황의 답에 그의 고민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기파 배우 미셸 피콜리의 진솔한 연기가 이런 교황의 용기 있는 결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엄숙한 콘클라베에서 다른 추기경이 적는 것을 커닝하거나 누군가의 이름을 썼다가 지우는 추기경들. “주여 저는 아니라고 해주소서” “주여 제발 제가 뽑히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며 남몰래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감독의 위트가 느껴진다.

바티칸 시국 추기경들이 길거리의 도넛과 카푸치노의 유혹에 흔들리는 장면과 교황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무료하게 보내던 추기경단이 배구 경기를 하는 장면도 소소한 웃음을 준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 난니 모레티는 교황의 증세를 파악하는 정신과 의사 역으로 직접 출연해 극을 유쾌하게 풀어간다.

지난 20116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이탈리아 개봉 당시 24주간 장기 상영되기도 했다.

52일 개봉, 상영시간 102,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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