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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꿈꾸던 청년의 열정 그대로…항일운동의 큰 별 태어난 ‘충남 홍성’
독립을 꿈꾸던 청년의 열정 그대로…항일운동의 큰 별 태어난 ‘충남 홍성’
  • 이도근
  • 승인 2013.06.06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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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 달 독림운동가의 산실 '홍성'

--걸음마다 ‘독립’의 숨결 어우러진 곳
-해안 따라 볼거리도 풍부…‘오감만족’

홍주아문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현충일과 6.25, 6.29 2연평해전 등을 맞아 추모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요즘, 이 땅 곳곳을 돌아보는 역사여행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몸을 불사른 선열의 기백이 서려있는 곳을 돌아보며 역사의 부름을 받은 인물의 자취를 더듬어보는 것은 어떨까.
만해 한용운 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의 고향인 충남 홍성은 ‘독립운동가의 산실’로 불릴 만 해 가족과 함께 역사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독립운동이나 전쟁을 겪지 못한 요즘 아이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호국정신을 심어 줄 수 있는 특별한 장소 홍성으로 주말여행을 떠나보자.

●저항으로 훼손 막아낸 ‘홍주성’
홍성군에는 역사 속 위인들이 많이 배출됐다. 고려 말기의 큰스님 보우국사, 명장이자 재상 최영, 사육신 성삼문,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 조선 말기의 순국지사 이설, 독립운동가 김복한 선생 등이 홍성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친 홍성 출신의 대표적 인물로 만해 한용운 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이 손꼽힌다. 최근의 인물로는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있다.
홍성군은 1914년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홍성 읍내에 자리한 홍주성역사관에서 선현들의 발자취와 홍주읍성의 예전 모습, 홍성의 역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홍성군청 바로 옆의 홍주읍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됐으며, 최대 길이가 1772m에 이르렀으나 810m만 보존됐다. 성내 관아 건물도 35동이었는데, 현재는 조양문과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일제가 학교나 관청을 만든다는 이유로 성내의 건물을 철거했기 때문. 홍주성의 파괴는 일제가 조선을 침략해 한일병합을 하려 할 무렵, 홍주사람들이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쫓아낸 때부터 시작됐다. 중화기로 무장하고 돌아와 다시 홍주성을 점령한 일제가 홍주성이 의병의 기지로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성문과 성안을 훼손시킨 것. 당시 홍주사람들이 일제에 맞서 조양문의 철거를 결사반대해 지금껏 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홍주관아의 정문인 홍주아문은 한때 홍성군청의 정문으로 사용됐다. ‘아(亞)’자형 문의 가운데 문루에 ‘홍주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은 대원군이 썼다고 전해진다. 홍주아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아문 중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녔으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다.

●독립을 꿈꾸다 ‘김좌진 장군 생가지’
김좌진 장군 흉상우리나라 독립을 이야기 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백야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선생. 이 두 분의 공통점은 출생지가 홍성이라는 점이다.
김좌진 장군 생가지는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로 나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갈산면 행산리 생가지 입구의 커다란 돌엔 장군의 마지막 말이 남겨져 있다. 할 일이 많은 때에 죽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그 말에서 자신의 죽음보다 먼저 민족을 생각하는 장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비석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기념관이, 왼쪽으로 생가가 자리하고, 300m 안쪽으로 들어간 야산 자락에 사당이 있다.
먼저 돌아볼 곳은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김좌진 장군의 흉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장군의 생애가 펼쳐진다. 왼쪽으로 가면 어린 시절 김좌진 장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열다섯 살에 집안에서 거느리고 있던 노비들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과 밭을 나눠주던 모습과 호명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만든 수학교재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오른쪽 전시실에는 1917년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김좌진 장군의 모습을 만난다. 1920년 10월 독립전투사상 최대의 승리인 청산리전투 모형도 볼 수 있다. 독립군의 활동상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기사를 통해 장군의 활약상도 찾아볼 수 있다.
김좌진장군 생가지전시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장군의 생가가 있다. 문밖의 마구간은 당시 상황을 미뤄 짐작해 만들어놓은 공간. 대문 안쪽이 복원된 장군의 생가이다. 생가 터에는 안채와 사랑채, 곡식을 넣어두던 광이 있다. 장군의 서책이 놓인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다. 장군이 독립자금을 모으다 일본군에게 쫓겨 숨어 있던 시절에 썼다는 주련도 눈여겨볼 만하다

●민족시인의 마음 숲길 따라 이어져
만해 한용운 선생김좌진 장군의 생가지 앞길을 따라 결성으로 내려가면 결성면 성곡리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한용운 선사의 흉상이 반기는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민족시비공원이 나온다. 만해 한용운을 비롯한 민족시인 20인의 시와 어록을 자연석에 새겨 소나무 숲길을 따라 배치해놓은 공간이다.
천천히 시를 읽으며 산길을 걷다 보면 아담한 초가집 앞으로 길이 이어진다. 그곳이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다.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이 달린 일자형의 초가집 방 안에는 만해 선생의 영정과 낡은 뒤주 한 개, 호롱불 하나가 방문자를 반긴다.
한쪽 귀퉁이가 깨진 막사발이 소반에 얹혀 있는 부엌에는 가마솥이 걸려 있고, 부엌 옆에는 장작을 쌓아둔 헛간이, 사랑방 옆에는 나무 둥치를 파내어 만든 나무 절구통과 맷돌 등이 보관되어 있다. 뒤쪽으로 우물과 조릿대 무성한 언덕이 있다.
이곳에서 만해는 여섯 살부터 한학을 배우기 시작해 아홉 살 무렵부터는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만해는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했고,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이후 불교 대중화, 독한용운 성샌 생가와 사당립사상고취 등을 위한 문학 활동을 펼치다 1944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심우장을 지을 당시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도근>

■여행정보

●여행 팁=‘호국보훈의 달’ 떠나는 여행, 엄숙한 분위기만 연출할 필요는 없다. 홍성은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을거리 등 ‘오감만족’의 여행지. 천수만 동부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떠나보자. 도로 초입의 홍성조류탐사과학관을 관람하고, 바닷가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궁리포구, 속동전망대, 어사포구, 남당항, 홍성방조제로 이어진다. 속동전망대는 천수만 낙조 감상의 최적지고, 남당항에는 횟집을 비롯해 바닷가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모여 있다. 홍성방조제를 건너가면 보령 천북면 굴구이 마을이다.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 언덕의 홍성민속박물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으로 1640여점의 민속품이 전시돼 있다. 광천읍 매현리의 ‘그림이 있는 정원’은 소나무와 야생화 등이 가득한 수목원과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함께 있어 가족이 함께 하기 좋다. 다른 수목원과 달리 휠체어가 직접 다닐 수 있도록 모든 길이 포장된 것이 특징.

●추천여행코스
▷당일코스=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홍주성역사관→김좌진장군생가지→한용운선생생가지→결성농요농사박물관→남당항
▷1박2일=<첫째 날> 김좌진 장군 생가지→한용운 선생 생가지→결성농요농사박물관→광천시장→홍주성역사관 <둘째 날> 남당항→속동전망대→궁리포구→홍성조류탐사과학관→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갈산로터리→김좌진장군생가지 / 당진대전고속도로 수덕사 IC→21번 국도→홍성군청

●문의(지역번보 041)=홍성 문화관광(tour.hongseong.go.kr·☏630-1808), 홍주성역사관(☏630-9236), 김좌진장군생가지 관리사무소(☏634-6952), 한용운선생생가지 관리사무소(☏642-6716),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blog.naver.com/rosemi_7·☏630-9232), 홍성조류탐사과학관(blog.naver.com/birdcenter·☏630-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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