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천 (건국대 세계와지역연구원 전임연구위원)


                                   
부동산 거래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부동산등기제도에서는 등기부상의 권리관계와 실체의 권리관계가 일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나(공시의 원칙), 예로부터 종중 또는 문중에서 그 소유재산의 소유권등기를 종손이나 종원 기타 재산관리인 등의 명의로 해두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이 자신의 부동산을 타인의 이름으로 등기함으로써 공시의 원칙에 반하는 등기가 실정법상의 근거 없이도 대부분 판례를 통해 인정돼 왔는데 이러한 경우를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명의신탁의 이론구성에 관해 판례는 대내적 관계에선 신탁자가 소유권을 보유해 목적물을 관리·수익하지만, 대외적 관계에서는 공부상의 명의인인 수탁자에게 소유권이 이전돼 있으므로 수탁자로부터 부동산을 취득한 제3취득자는 명의신탁의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소유권을 취득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해 왔으며, 학계에서도 일부 학자들이 이러한 명의신탁이론과 그 유효성을 인정함으로써 판례의 태도를 지지해온 것이다.
그러나 판례와 학설에 의해 명의신탁이 인정됨으로써 신탁자는 자신의 명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수탁자명의로 등기할 수 있게 돼 이를 기화로 탈세나 재산의 은닉, 강제집행의 면탈 등 부동산과 관련된 각종의 탈법행위가 성행하게 됐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명의신탁과 여기에 가등기나 중간생략등기 등이 결합해 이를 이용한 부동산투기가 날로 심각해졌으며 급기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실체적 권리관계와 공부(등기)상의 권리관계를 일치시킴으로써 뒤틀린 공시의 원칙을 관철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불법목적의 부동산투기 등을 해소할 목적으로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1990.8.1.)’이 제정됐으나, 판례가 동법의 벌칙조항을 강행규정이 아닌 단순한 단속규정으로 봄으로써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음성적으로 행해져 온 명의신탁으로 인해 부동산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됐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부동산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1995.3.30. 이하 부동산실명법)’이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비상대책으로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련의 입법조치들은 의도한대로의 기대효과를 거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특히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대체한 ‘부동산실명법’은 출범당시부터 학자들과 실무전문가들로부터 동법을 제정하기보다는 기존의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보완하는 방법이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는 지적과 비판이 끊이지 않아 왔다.
물론 ‘부동산실명법’이 지난 15년 동안 부동산거래질서와 가격의 안정에 어느 정도 이바지해 온 긍정적 측면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입법의 형식이나 내용면에 있어서 위헌성을 간과할 수 없으며, 법리적으로 모순되고 합리적이지 못한 점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등기의 금지에 관해서만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부동산투기의 해소 등 입법목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의신탁의 금지와 아울러 가등기와 중간생략등기에 대해서도 적절한 규제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또한 동법의 시행에 발맞춰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고 등기공무원의 실질적 심사 제도를 도입하며 등기원인서면에 대한 공증제도를 도입하는 등 부동산등기제도를 보완하는 일련의 조치가 병행됐으면 보다 효율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행 ‘부동산실명법’의 개정과 관련해서는 동법에 내재하고 있는 개별조항의 위헌적 요소를 제거함은 물론, 비합리적이고 부당하며 모순적인 여러 규정들은 조속한 시일 내에 법 개정을 통해 이를 폐지 또는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필자가 제시한 부동산실명법의 개선방안에 대한 검토를 포함해, 향후 실질적이고 조속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부동산정책의 재정립만이 혼란하고 왜곡돼 있는 작금의 부동산거래질서를 바로 세우는 최선의 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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