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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곳이 천혜의 비경 …‘힐링’·‘행복’동시에
발길 닿는 곳곳이 천혜의 비경 …‘힐링’·‘행복’동시에
  • 손동균
  • 승인 2013.07.18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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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양산8경… 아는 사람만 아는 금강 상류의 보물
휘도는 물 따라 멋과 풍류 넘쳐… 수묵화 같은 풍경
‘그윽한 숲’·시원한 ‘강·계곡’ 청정함은 덤으로 만나
강선대.                                                                             
                                                                                          ▶영국사-5층석탑.
 
지난해 힐링이 대세였다면 올 여름 대세는 행복이라 한다. 지친 일상에서의 치유를 갈구해 위로 받던 이들이 이제는 행복을 찾아 나섰다는 이야기다. 올 여름 휴가는 일상의 치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가보는 것이 어떨까. 소백산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곳, 금강 상류를 끼고 펼쳐진 양산8은 소나무 숲과 기암괴석, 계곡 등이 한데 어우러져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선인들은 아름다운 산으로 이뤄진 이곳 여덟 장소를 꼽아 양산8이라 부르며 즐겼고, 후손들에게 그 아름다움도 고스란히 남겼다. 천혜의 자연 속에 그윽한 멋과 풍류가 살아있는 이곳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치유와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영국사,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당, 용암 등의 양산8경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보자.
 
1경 영국사(寧國寺)
영국사는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이다. 이 절은 원각국사가 신라 문무왕 8(668)에 창건한 사찰로 원래 이름은 국청사였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피난을 왔다가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수복하자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라는 뜻의 영국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영국사와 함께 국난을 꿋꿋이 이겨낸 나무로 나라에 난이 있을 때 마다 큰 소리로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경내에는 영국사 원각국사부도(보물 532) 및 원각국사비(보물 534),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533), 영국사 대웅전(충북도 유형문화재 61), 영국사 석종형부도(충북도 유형문화재 184), 영국사 원구형부도(충북도 유형문화재 185) 등의 문화재가 있다.
특히 영국사 입구에 위치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는 수령이 1000여년 정도의 나무이다. 높이 31m, 가슴 높이의 둘레 12m로 국난이 있을 때 마다 큰 소리로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살아온 큰 나무로 문화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또 절 뒤편에 있는 해발 714m의 천태산은 암반과 어우러진 송림이 일품이며 주변의 경경관이 수려하여 사계절 등산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옛 문인들은 호국불교의 산실인 이 영국사에서 저녁에 울리는 종소리를 국사모종(國寺慕鍾)이라 일컬었다.
2경 강선대(降仙臺)
강선대는 양산면 봉곡리 마을앞을 흐르는 금강천변의 작은 바위섬에 있는 정각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득한 그 옛날 하늘에서 선녀 모녀가 지상을 내려 보다가 강물에 비친 낙락장송과 석대(石臺)가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하 강을 하여 목욕을 하였던 곳이기에 강선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옛날에 있었던 정각은 없어지고 1954년 함양여씨 종중에서 6각 정자를 건립해 지금은 영동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돼 있다.
정자 앞으로는 유유히 굽이치는 금강 한 가운데는 그 옛 날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암, 송호리 국민관광지의 울창한 낙락장송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여의정과, 봉황이 드나들었다던 비봉산과 봉황대, 능수버들과 어우러져 한결 돋보이는 함벽정은 물론 하늘에 닿은 듯한 천태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이다.
옛 문인들은 봉곡리 마을앞에 선녀가 하강해 목욕하던 이곳에 가을철 달밤의 황홀한 풍경을 선대추월(仙臺秋月)라 하여 양산팔경 2경으로 꼽았다.
 
3경 비봉산(飛鳳山)
비봉산은 양산면 가곡리와 수두리 마을을 감싸고 있는 해발 481m 높이의 산을 말한다.
마을 뒤에는 산이, 앞에는 강이 유유히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마을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의 이름은 예전에는 고층산(古層山), 또는 남산(南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그 옛날 비봉산에서 날아오른 봉황이 강건 너 맞은편 봉황대에서 대나무 열매를 쪼아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 비봉산으로 불렸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산에 올라 좌우를 바라보면 발아래 굽이치는 금강 넘어 북쪽으로는 마니산이, 동쪽으로는 대왕산이, 서쪽에는 갈기산이, 북서쪽에는 천태산이 웅장한 자태로 첩첩이 펼쳐진다.
이 곳 비봉산위로 넘어가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옛 문인들은 봉산낙조(鳳山落照)라 노래했다.
 
4경 봉황대(鳳凰臺)
봉황대는 양산면 수두리 대곡 마을 입구 강 포구앞 절벽위에 있던 누각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자는 없어지고 그 자리로 도로가 개설돼 봉황대 앞에 있던 포구는 강줄기가 바뀌면서 농경지로 변해 있다.
1934년에 봉황대가 있던 옆 산록에 인천이씨 문중에서 조선시대의 문인이었던 백우(白愚) 이시연(李時然)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한천정(寒泉亭)을 세워 지금은 영동군 향토유적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어 봉황대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하고 있다.
봉황대 앞산은 봉화산(烽火山)이라하며 그 옛날 통신 수단의 하나로 쓰이던 봉수대가 있었으나 훼손 방치되던 것을 최근 양산면에서 주민들과 함께 복원해 옛날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그 옛날 봉대귀범(鳳臺歸帆)이라 하던 봉황대 앞으로 돌아오는 돛단배의 모습이 세월이 흐르고 물이 흐르던 강줄기가 바뀌며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5경 함벽정(涵碧亭)
함벽정은 양산면 봉곡리 산 54번지에 있는 방1, 대청1칸의 팔작집 정각으로 그 옛날 있던 정각은 없어지고 1911년 새로 건립돼 지금은 영동군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각 내에는 건립 취지문과 몇 편의 시문이 목판에 음각되어 게시되어 있으며 오래전부터 함벽정계(涵碧亭契)를 조직해 시설물을 관리해 왔다.
정각 정면에는 비봉산이, 오른쪽 상류에는 봉황대, 왼쪽 하류에는 송호리 솔밭을 위시해 용암, 강선대, 여의정 등이 자리해 사계절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함벽정으로 정각 이름을 지은 연유는 알 길이 없으나 그 뜻으로 보아 언제나 푸르름이 가득한 강물이 정각 앞에 흐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측된다.
지금도 정각 주변에는 오래된 버드나무 고목이 많이 서 있으며, 옛날부터 문인들이 함벽정 주변에 피어나는 버드나무 꽃과 잎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벽정춘류(碧亭春柳)라 하며 절경으로 손꼽았다.
6경 여의정(如意亭)
여의정은 양산면 송호리 산37번지 송호리 솔밭에 있는 암석위에 조선시대연안부사(延安府使)를 역임 했던 박응종이 정자를 짓고 후손들에게 학업을 시키던 곳이다.
1935년 밀양박씨 후손들이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각 정자를 새로 건립해 지금은 영동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자 주변에는 송림이 울창하며 솔밭 일원이 지금은 송호국민관광지로 지정돼 각종 위락·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이곳 송림은 수령 300년이 넘는 수백그루의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소나무 특유의 냄새가 맑은 공기와 어우러져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내 이곳 주민들과 오가는 나그네들에게 평온과 안식을 주고 있다.
관광지 내에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조천성(助川城)을 공략하기 위해 출병하다가 양산에서 야간에 백제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한 신라의 김흠운 장군의 순국을 추모하는 양산가(陽山歌)비를 세워놓았다.
정자앞 강 가운데에는 용암(龍岩)이 있고 그 너머에 강선대(降仙臺)가 바라보이며 강 하류 먼 곳에는 자풍당이 있는 새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 상류 먼곳에는 봉화산과 마니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운치 있는 정자이다. 정자주변에 신선을 불러들이는 아름다운 풀이 많으므로 환선방초(喚仙芳草)라 불린다.
 
7경 자풍당(資風堂)
자풍당은 양강면 두평리 561 새재 위 아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옛날 새재에 펼쳐있는 이른 아침의 구름의 모습을 조령조운(鳥嶺朝雲)이라 하여 양산팔경 제7경으로 꼽았다.
고려시대 초기에 이곳에는 풍곡사(豊谷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이조태종 임금시절 숭유억불 정책에 의거 절이 없어지고, 유생들이 서당을 세우고 풍곡당(豊谷堂)이라 하여 강학을 하다가 광해 6(1614)에 정술(鄭述)이 머물면서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강학을 했다. 이후 자풍서당(資風書堂) 또는 자풍당(資風堂)으로 불리게 됐다.
그때부터 많은 유림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학문을 가르치고 유생을 배출하게 되었으며 여러 차례 보수 중수하여 오다가, 근세에 와서 이곳을 거쳐 간 유생들의 후손 18문중에서 건물 유지를 위한 계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으며 지금은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73호로 지정되어있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은 유생들이 자풍당에서 양산 들녘을 바라보며 양산팔경, 양산십경을 문헌으로 남겼다. 건물 앞에 있는 5층석탑은 이곳이 풍곡사의 절터임을 입증하고 있으며 두평리 5층석탑은 영동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8경 용암(龍岩)
용암은 양산면 송호리 솔밭 앞 금강한가운데 홀로서 있는 바위를 말하는데 아련한 옛날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한다.
바위 건너편에는 그 옛날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강선대가, 뒤편으로는 울창한 송림숲속에 우뚝 솟은 바위위에 서있는 여의정(如意亭)을 비롯해 송호국민관광지가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으로 신라의 무장 김흠운 장군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용암 하류에는 자풍당이 한눈에 들어오며 자풍당 아래 산과 강물이 마주치는 강 언저리 오포(鰲浦)에서는 봉곡리와 죽산리 주민들이 그 옛날 도로사정이 나쁘고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못하였던 시절에는 나룻배로 강을 건너 영동을 걸어서 왕래하던 곳이기도 하다.
용암 주변에는 강물이 깊어 접근하기 매우 위험하며 멀리 상류 쪽에는 함벽정과 봉황대가 아련히 바라보인다. 옛 문인들은 봉곡리 용암에서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 모습을 봉곡취우(鳳谷驟雨)라 칭하며 양산8경의 마지막 8경으로 꼽았다.
<영동/손동균>
 
여행 정보
여행 팁=양산8경 여행은 캠핑과 함께하면 그 멋을 배로 즐길 수 있다. 송호리 송호국민관광지 캠핑장은 오토캠핑이 아닌 아날로그 캠핑을 할 수 있는 전국의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야영객의 편의를 위한 화장실과 급수대, 샤워·취사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구비돼 있으니 꼭 한번 가보자.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 금산 나들목68번 국가지원지방도(영동 방면)15㎞→송호국민관광지.(금산 나들목에서 30)
경부고속도로 옥천 나들목4번 국도이원501번 지방도율치영국사송호국민관광지.(옥천 나들목에서 40)
 
문의=영동군 관광안내(tour.yd21.go.kr·043-740-3211~5), 송호국민관광지(043-740-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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