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수<취재부 부장>

한국화의 거장이 필생의 사업으로 남기고 간 운보의집 정상화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한 것인가.
전국 명소로 꼽히던 운보의집이 파행 운영되며 논란을 일으킨 지 벌써 12년째다. 지난 2001년 1월 23일 운보가 떠난 뒤 그의 집도 명성도 허물어져 내렸다.
운보의집은 김기창 화백이 71세 되던 해인 1984년 어머니의 고향인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8만3000㎡의 터에 집과 미술관, 공원, 공방 등을 지어 88세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노년을 보낸 곳이다.
올해는 운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해다. 거장을 추념하거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축제는커녕 그의 예술혼마저 파행 속에 묻히고 잊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해당 지자체가 정상화 대책을 외면하는 사이 건축물은 훼손되고 과거 속 운보의 집이 돼 가고 있다.
해마다 찾는 사람이 줄고, 살아 생동하던 예술공간은 무의미하게 나락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생전에 빨간 양말을 즐겨 신고, ‘바보산수’와 ‘성화시리즈’ 등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운보가 저 세상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문화산업을 기치로 내세우면서도 있는 문화자원마저 보존하지 못한 채 방치해 버린 책임이 크다.
운보의 집은 한 때 전국에서 예술 거장 운보 선생의 예술혼을 접하기 위해 발길이 이어졌던 곳이다.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와 함께 청주권 명소로 각광 받던 곳이 10년 새 인적 없는 폐 사지처럼 돼버렸다.
운보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돼 작품 활동을 못하게 되자 사후를 대비한 준비를 하게 됐다.
자식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사회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재단설립을 준비해 그가 숨을 거둔 직후 운보문화재단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운보의 생애 마지막 결심은 삶의 정리이자 자신의 과거에 대한 겸허한 결산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재단은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못해 핵심 시설인 ‘운보의집’은 목재가 부식되는 등 관리부실이 역력하다.
주차장 부지는 경매로 넘어가 관광버스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운보문화재단 이사진의 완전개편과 충북도의 시설이관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청주·청원 민간사회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운보의집 정상화추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충북도를 상대로 운보문화재단 이사진의 완전개편과 충북도의 시설이관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나아가 운보의집 정상화를 위한 실행 절차에 들어갔다.
문체부가 관리 소홀로 인한 직무유기를 인지하지 못하고 또다시 파행 운영의 당사자들(운보문화재단 현 이사진)에게 지난달 21일자로 임기 4년의 조건부 임원 승인을 해줬기 때문이다.
운보의집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우리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외지인들의 무책임과 사리사욕에 발목 잡힌 운보의집을 더 이상 외면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운보의집은 공익적 재산인 만큼 우리 지역과 주민들의 품으로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간직했던 ‘운보’의 집이 지역과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도민의 관심이 절실하다.
주무관청인 문체부와 도민의 자산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충북도는 이해관계를 떠나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이 더 이상 제 모습을 잃어가지 않도록 적극 해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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