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훈 양업고 초대 교장

 ‘공부도 과속하면 사고 나지 않을까요?’ 한 초등학교 정문에 걸린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선행학습 형 사교육으로부터 어린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교육 캠페인이다. 극성스런 선행학습으로 초등학교도 교실이 붕괴 된 지 오래라고 현직의 교사들이 고백한다. 이미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어린이들은 학교 수업을 시큰둥해 하며 수업 시간에 또래끼리 장난치고 떠들기만 한다고 했다. 어린이들의 이런 모습은 과도한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서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극성 학부모의 욕심 때문이다.
 ‘공부도 과속하면’ 교육 현장에도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어린이들이 커가며 교육과정이 단계별로 지켜질 때, 공부할 내용에 대한 설렘을 갖고 학습을 하며 행복해 한다. 그런데 어린이 때부터 각기 다른 각종 선행학습으로 인해 교육과정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학교 현장은 어린이들마저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도덕을 배워야 하는 인성교육이 중요한데, 그것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경쟁하고, 가치의 기준을 벌써부터 소유의 개념에 두고, 그 정도에 따라 자기들을 구분한다. 이는 요즘 흥행하는 영화 ‘설국열차’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설국열차’에 탑승한 사람들 모두는 생명을 위하여 달리고 있지만, 그 열차의 꼬리 칸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라는 비참한 상황에 놓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대한민국 ‘교육열차’는 후미 칸의 학생들에게 생명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나 냉정하게 살펴보면 속은 생각 보다 더 열악하다. 부모의 욕심이  달리는 열차의 일등칸을 바라고, 이에 편승하여 무조건 자기 자녀만은 소수의 우성인자를 만들겠다고 허황된 욕심을 부리는 꼴이다. 이 어찌 어린이들에게 화가 미치지 않겠는가.
 출산율을 통계로 보면 90년도 출산율은 63만 명인데 2010년에는 47만 명으로, 20년 사이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했다. 한 가정 당 자녀 한 명 꼴의 출산율은 교육열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맹목적 선행학습으로 사교육비가 증가하여 가정은 휘청거린다. 많은 이들이 교육에 투자를 하지만, 이들 중 5-10%의 학생만이 투자의 효과를 맛본다. 실속 없는 투자에 허무를 실감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누구를 위한 탑승인가’를 늦게 서야 알아채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하지만 방법이 없어 당혹스러워 한다. 가끔은 꼬리 칸의 대기만성형의 사람들이 철이 들어 앞 칸까지 가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성공한 소수 사람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전공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며, 취업전선에서 허덕이며 목적 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을 후회할 뿐이다.
 ‘설국열차’의 탑승자들이 서로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려면 앞 칸에서 행복을 누리는 인간이 꼬리 칸의 사람들도 기억했어야 했다. 탑승자 모두가 열차의 맨 앞 칸으로 선뜻 가지는 못하더라도 뒤의 사람들이 희망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도 사랑하고 존중했어야 했다.
  학교에서 학업능력이 부족해서 혹 길이 막힐 때라도 함께 그 길을 열면서 함께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 일이 교육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선행학습이다. 선행학습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김남주의 詩)을 실천하는 길이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교육이다. 교육과정에서 어린이들에게는 아직 지식 면에서 집중되는 선행학습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이 선행학습 때문에 일찍부터 마음의 병이 들고 그들을 망치고 있는지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극성스런 학부모의 교육열이 어린이들까지 영화 ‘설국열차’의 최고자리에 탑승시키려 안달이지만, 미구에 후미에 놓이게 된 자녀들이 지쳐 지내다가 살아남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 때는 공존이 아니라 모두 파멸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채야 한다. 뒤 칸의 사람들을 마치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오늘의 교육 분위기로는 학교가 행복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학부모들이 변해서 교육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어야 한다. 우리가 타고 가는 ‘교육열차’는 앞 칸, 뒤 칸 할 것 없이 소중하다. 학교가 개개인이 존중받고,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주며, 적어도 인성교육으로 도덕률을 지니고 살 줄 알게 하고, 미래의 행복한 인재를 길러 내는 장면이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만이라도 진정으로 행복해 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차’를 탐승하고 즐거워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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