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범상(凡常)에서 비범(非凡)을 유추해 내는 사유적인 글
 
8회 충북여성문학상은, 2012. 7.1~ 2013. 6.30 사이에 발간 된 충북지역문학단체의 기관지와 동인지외에, 문예지 등(총 27권)에 발표한 도내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대상이다.
심사위원 전원이 분야별로 분담, 윤독한 후에 각자가 1~3편씩 우수작품을 선정, 추천하고 이를 전원회의에서 압축, 시 3편과 수필 3편을 최종심 대상에 올렸다. 그 가운데 수필 2편이 동일 작가의 작품 ‘춤추는 처마’<충북문학>, ‘무’<창작산맥> 이어서, 사실상 5명의 작품이 최종심에 오른 셈이다.
작품별 장단점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수필 ‘무’(이은희)를 8회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의 수상작품이 시 부문에서 나왔기 때문에 순차에 따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최종심에 오른 시 분야의 작품들이 예년의 수상작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데 비해, 수필 쪽은 3작품 모두가 일정수준을 넘고 있다는 의견에 따라 수상기회가 수필 쪽에 주어진 것이다. 이는 본 상이 동일 작가의 중복수상은 배제하되, 분야별 연속수상 여부에 관계없이, 해당기간에 발표된 작품 중 최우수작을 선정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3편의 수필 중, 수상작으로 결정 된 ‘무’는 발상이 특이하고 소재를 분석적으로 다루는 솜씨가 뛰어날 뿐 아니라, 문장도 과장 없이 평이하면서도 의미전달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작가는 기왕에 발표한 여러 작품을 통해 ‘무’보다 월등한 수준의 필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수상작결정에 이의가 없었다.
토론 와중에 심사위원 중 일부는, 동일 작가의 수필 ‘춤추는 처마’가 이 작가의 특징인 사유적(思惟的) 경향을 더 잘 드러낸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범상한 사실로부터 인간의 보편적 이기심을 도출해 내고, 효의 개념을 묵시적으로 제시하는 한편, 효 부재의 현 시대에 인간(자식)들의 절실한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자연스럽게 지적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가 이루어졌다.
전에도 최종심까지 올라 수상작과 다툼을 벌인 바 있는 ‘무’의 작가는 여성이면서도, 대부분의 여성작가들이 천착하는 서정적 수필 쪽 보다, 사유적인 수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듯하다.
수상작 ‘무’는 서민의 밥상에 오르는 평범한 음식, 반찬속에 든 무가 주된 소재다. 농부의 정성과 기름진 토양 덕분에 자란 무가 그 성장배경을 모르고, 다른 식품으로부터 흡수한 자양분이나 맛까지 온전히 제 것인 양 과시하는 것은, 마치 부모덕에 태어나고 자란 인간이 그 은혜를 잊고 효(孝)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다.
이 작가는, 자신의 ‘혀가 기억하고 있는’ 생선조림, 김치, 동치미 속에 든 무의 ‘남다른 맛’을 어머니의 손맛과 연결,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모정에 대한 그리움을 촉발함으로써,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 흐름을 거부하고 있다. 무와 인간(신세대 자식?)의 내부에 잠재 된 공통성, 즉 이기심을 노출시켜 효 문화가 사라진 사회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주문한다.
이 작품이 ‘무-유년의 추억-어머니의 손맛-모정에 대한 그리움-불효의 한(恨)’으로 전개 됐다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눈물틱(tic)’한 서정성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사적감성(私的感性)에 호소하기보다 이성을 자극, 사유를 통한 자기반성과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일반적인 여성작가들과 그 접근방법을 달리 함으로써 문제를 공유화(共有化)한 것이다.
‘춤추는 처마’역시 경직되고 냉혹한 느낌을 주는 직선에 비해,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의 포용력을 통해 ‘참여의 용기’를 북돋우는 사유적인 글이다. 토론 중 ‘춤추는 처마’가 이 작가의 특성을 더 잘 나타내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이 작가의 글이 지니고 있는 대체적인 특성이 ‘사유적’이라는 데 이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 작가의 특성이 사유적이라는 것 외에, 범상한 소재로부터 남다른 주제를 이끌어 낸다는 것도 장점 중의 하나다. 작가들의 시각이 사물의 내면관찰에 예리해야 한다는 건 상식적인 얘기지만, 이 작가의 시각은 좀 더 기발한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두 작품에 채택 된 소재들, <무-인간-효>, <줄넘기-처마-용기>는, 일견하여 상호연결이 어려운 소재들의 조합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질적인 소재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전자에서는 ‘이기심’이라는 공통점을 발굴하여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고, 후자에서는 ‘곡선의 포용력’을 캐내어 참여의 용기을 북돋운다. 무관한 듯한 소재를 연결, 독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설득력을 발휘, 주제에 공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만큼 소재의 소화(분석)나 구성에 무리가 없고 문장에도 합리적 논리성이 확보됐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질적소재조합-공통점발견-(문제제기)-주제도출’, 두 작품이 보여 준 구성방법이다. 단일소재, 단선구조를 벗어나, 이질적 소재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면서도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 하고 있는 것은, 이 작가의 독특한 기법이요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모든 작품에 공식처럼 적용한다면, 자칫 천편일률적인 글이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음을 참고로 적는다. 심사과정에서 논의 된 사항들을 여과 없이 적어두는 것은, 이 작가가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감성토로의 한계를 넘어, 사유적 특성이 강하다는 장점을 높이 사되, 어떤 형식이나 고정적 틀에 묶이지 않는 다양한 작품을 써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수상의 영광을 안은 작가에게 심사위원 전원의 이름으로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 이 상의 무게를 더할 좋은 작품을 써 줄 것을 기대한다.
 
심사위원(가나다 순)
김길자(수필가) 김다린(수필가) 김선애(평론가) 김송순(동화작가) 김철순(시인) 나기황(시인) 박희팔(소설가) 반숙자(수필가) 반영호(시인) 서은경(시인) 신영순(시인) 안수길(소설가) 유영선(동화작가) 윤상희(시조시인) 윤현자(시조시인) 이덕자(소설가) 이송자(시인) 조성호(수필가) 조정주(시인) 조철호(시인) 지용옥(소설가) 한상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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