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시인·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권명희(한국화가·청원 오송고 교사) 작, ‘멜랑꼴리(감성적) 절친’

다함께 나눌 수 있는…
이종수(시인·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뜨거운 여름은 포구의 배처럼 밀물을 만나 떠나간다. 싱숭생숭하던 뱃전이 물을 받으니 거짓말처럼 떠나간다. 무거운 마음조차 그랬으면 하고 뱃전에 실어보지만 ‘이 가을에는’으로 시작하는 뒷문장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골목과 풍년이라는 들녘, 시시때때로 뉴스를 장식하는 우리네 정치며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암울하다 못해 힘이 빠진다.

세상은 왜 모두가 원하는 대로 나아지지 않는가? 한 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라는 듯 고삐를 바짝 당기는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늘어 가는가? 과연 정의란 있기는 한 것인가?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침이슬을 달고 있는 풀잎이나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처연하기만 하여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렵다.

뜨겁게 호령했던 여름 햇살과는 달리 젖어오는 듯 시나브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마음의 열기를 식혀본다. 저것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누구도 마음대로 구부릴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길임을 알기에 더욱 더 간절해진다. 이렇게 먼저 위풍당당한 자연의 영화 앞에 우리가 보여줄 것은 무엇일까? 과연 보여주기나 할 수 있을까?

이 가을에는 이런 생각이 그저 기우였기를, 생각만 들끓는 찻잔의 태풍이 아니기를 진정으로 바라며 손을 잡아 본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위로하고 더 나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도록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풍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는 망하고 누구는 흥하는 그런 풍년이 아니고 다함께 주고받으며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가을의 풍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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