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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주제발제
2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주제발제
  • 동양일보
  • 승인 2013.10.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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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의 여로는 작가들에의해 재창조돼 계속 뻗어갈 것

 궁핍한 시대 상활 속에서 조국의 자주권과 민족해방을 주장한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 근대 희곡 사상 최초의 창작희곡집을 출간하고 최초의 미발표 창작시집을 낸 문학인. 일제 강점 하에서 망명 문학 활동을 전개해 러시아 땅에 한국문학의 꽃을 피운 포석 조명희(1894∼1938) 선생.

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기 위한 2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 11일 오후 2시 진천종박물관 주철장전수교육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동양일보 문화기획단이 주관한 이날 심포지엄은 학술대회 결과물을 한국 문학사의 기록문화 자산으로 남기고자 마련됐다. 동양일보는 이날 심포지엄의 내용을 지면에 싣는다.

 
●정호웅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조명희, 낙동강, 한국문학사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바로 포석 선생의 ‘낙동강’입니다. 제가 재직하는 홍익대 국어교육과의 수업 중에는 ‘소설강독’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소설사에 빛나는 작품을 선정해 학생과 함께 읽고 있습니다. 저는 그 작품 중에 언제나 포석 선생의 ‘낙동강’을 포함시킵니다. 단어 하나, 구절 하나의 의미를 새기면서 학생들에게 강론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 작품을 쓰신 포석 선생을 조명하는 장이 마련된다고 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명희 선생과 ‘낙동강’에 관련해 공부하며 겪었던 일들, 한국문학사와 관련한 선생과 ‘낙동강’의 의미를 두서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랫동안 조명희 선생은 유폐되어 있었지만 그가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우들의 기억 속에 그는 ‘목소리와 표정이 한가지로 침착한 정열을 가진 시인’으로 살아 있었고, ‘낙동강’은 1920년대 소설 문학의 걸작으로 끊임없이 반추되며 우리 문학사와 함께 출렁이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는 우리 앞에 귀환합니다. 검열에 다쳐 온통 상처투성이였던 ‘낙동강’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조명희와 ‘낙동강’은 새로운 의미를 담고 다시 태어나기에 이릅니다. 작가 최인훈이 어둠 속에서 ‘낙동강’을 불러내 장편 ‘화두’의 주선율로 삼았던 것입니다.

포석 선생의 삶과 문학 전체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시 ‘별 밑으로’입니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타자를 원망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과 그 선택이 낳은 지난 삶을 후회하지 않겠다는 굳은 뜻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 일반의 내면에 깃든 욕망으로 멀리 벗어난 것이기에 순수하고, 애당초 돌아옴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나아가 홀로 쓰러지는 것이기에 슬프며, ‘저문 사막의 길’을 헤치고 걸어온 의지와 열정의 행로이기에 장한, 순수하고 비장한 아름다움에 빛나는 정신의 완성입니다.
 
이 시 이후 발표된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 고은의 ‘화살’ 등이 이런 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상을 좇아 나아가는 정신의 행로를, 그 사라짐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에 이르러 ‘별 밑으로’는 문학사를 엮는 벼리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별을 좇아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월경한 조명희 선생은 당대 문인들에게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1936년 종합 월간지 {중앙}에 실린 한설야의 수필 [포석과 민촌과 나]를 통해 그 그리움의 안쪽을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월경한 조명희를 그리워하는 진보적 문인들의 글이 다시 나오게 되는데 그 처음은 임화의 것입니다. 1928년 4월 백악출판에서 간행된 소설집 ‘낙동강’을 그로부터 18년 뒤인 1946년 5월 건설출판사에 중간하면서 책 끝에 붙인 중간사(重刊辭)가 그것입니다. 이 글에서 임화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조명희의 문학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를 살핀 뒤,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한국문학에 중앙아시아가 등장하는 것은 이태준의 ‘소련기행(蘇聯紀行)’에서부터입니다. 이태준 연구자들에 의하면 그가 월북한 것은 1946년 7월에서 8월 사이입니다. 월북 직후 이태준은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 방문길에 올랐는데 그곳에서 조명희의 소식을 알고자 크게 애썼다는 것을 그가 돌아와 펴낸 ‘소련기행’(백양당, 1947)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고려인을 만날 때마다 묻는데 무려 세 번이나 됩니다. 이미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맞서다 처형당한 포석의 최후를 아는 우리로서는 포석의 행방을 찾으려 애쓰는 이태준을 보는 일은 안타깝습니다.

1928년 이후 그의 작가로서의 행적을 우리가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현대문학 전공생 사이에 몰래 돌았던 복사본 ‘포석 조명희 선집’(소련 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 1959)이었습니다. 길쭉하니 가늘고 모가 진 낯선 글자체가 먼 곳에서 온 것임을 한눈에 알게 해주는, 그때로서는 불온한 물건이었습니다. 복사본을 다시 복사하고, 그 복사본을 다시 복사하는 일이 거듭되는 동안 글자가 깎이기도 하고 뭉개지기도 하여 내 손에 들어온 조명희의 책은 읽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 책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 볼 때마다 가슴 아팠던 ‘낙동강’이 복원되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귀환한 ‘낙동강’은 10년 뒤, 최인훈의 장편 ‘화두’(1994)의 주선율이 되어 새롭게 태어납니다. 해방 뒤 북한의 국어 교과서에 실렸었다는 역사적 사실, 고등중학교 학생으로 그 소설을 배웠던 작가의 개인적 체험, 큰 작가로 성장한 최인훈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석 등이 함께 작용하여 그 태어남은, 좋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창조적 생산성이 세월을 이기고 어떻게 싹트고 꽃 피우는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화두’는 “낙동강 칠백 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 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는 ‘낙동강’의 첫 문장이 처음과 마지막에 자리 잡아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룹니다.

주인공은 ‘낙동강’의 박성운과 그 본체인 조명희의 실제 삶과 생각을 알기 위해, 그리고 확인할 수 없기에 추측과 상상을 통해 그릴 수밖에 없는 실제 삶 밖의 삶과 생각 등을 구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노력 끝에 알아낸 조명희(박성운)의 실제 삶과 생각 그리고 구성해낸 그것들 밖 조명희(박성운)의 삶과 생각이 이 소설을 꿰며 구성의 중심축이 됩니다.

큰 작가 최인훈은 너무 일찍 끝나고 만 조명희(박성운)의 여로를 딛고 또는 기대어 자신의 삶과 문학은 물론이고 세계사 차원의 역사 전개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게 성찰하고 해석하며 나아가는 주인공의 여로를 창조했습니다. 작가가 창조한 그 여로의 시작과 끝이 최인훈 문학의 중심 화두 가운데 하나인 ‘스스로 주인 되기’의 명제인 것은 인상적입니다.

조명희(박성운)의 여로는 이처럼, 최인훈의 문학에 이르러 또 다른 여로를 낳으며 대단히 생산적인 원재료임을 증명했습니다. 미래의 작가들은 그들 나름의 새로운 여로들을 조명희(박성운)의 여로를 딛고 또 기대어 만들어낼 것입니다. 조명희(박성운)의 여로는 끝났지만 여전히 살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새로운 작가들에 의해 창조됨으로써 계속되는 그 여로가 한국문학사의 한 계보를 이루며 뻗어왔고 뻗어갈 것입니다.


●김진석 서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궁핍한 현실과 식민지 사회의 조망


조명희 선생은 한국 지식인 가운데 특이하고도 비극적인 삶의 궤적을 지니고 있는 작가입니다. 선생의 약 45년에 걸친 생애는 크게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삶과 소련에서의 이주민으로서 삶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식민지 한국에서의 삶은 망국민으로서의 가난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자서전인 ‘생활 기록의 단편’에 의하면, 그의 성장기는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성장기의 가난과 반일 의식은 조명희 문학의 가장 큰 모티브입니다.

그는 소련으로 망명했지만 소련어는 해독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작가로서의 분명한 한계였습니다. 따라서 소련에서의 대부분의 삶은 하바로프스크의 한인 자치구를 중심으로 하여 조선인의 교육과 작품 창작에 전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의 그는 생활인으로서 사회주의 종주국에 왔다는 안도감과 일제의 폭압 아래서 신음하는 조국 동포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는 양면성을 나타냅니다. 이런 측면은 문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조선과 소련의 ‘땅 냄새’를 동시에 풍기는 이원적 구조를 취하게 됩니다.

조명희의 문학적 편력은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등 모든 장르에 걸쳐 있습니다. 1920년대 전반기의 문학적 관심사가 시와 희곡에 있었다면, 그 후반기는 주로 소설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이들 작품은 신문학 형성기의 특징을 반영하듯 작가의식의 미숙성을 드러낸 것도 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희곡 ‘김영일의 사’, 시집 ‘봄 잔디밭 위에’, 소설 ‘낙동강’ 등은 각 장르별로 새로운 문학의 길 찾기에 해당됩니다. 그런 만큼 한국근대문학의 형성 과정에서 선구적 업적을 남긴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90년 전후부터입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명희가 사회의식에 관심사를 두게 된 것은 배고픔의 고통을 체험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이 시기의 조명희의 문학적인 관심사는 지식인의 좌절과 궁핍상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밥’은 핵심 문제가 됩니다.

조명희 소설은 궁핍의 사회학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1920년대의 대표적인 빈궁문학 작가인 최서해의 경우와도 상당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최서해의 문학은 가족 내적인 혈연의 인간관계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민족 유리의 서사시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조명희는 가난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문학이 계층 이론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가는 중요한 전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조명희는 사회주의 내지 계급의식에 깊이 침윤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반일 감정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하게 드러납니다. 그 중에서도 궁핍의 문제와 연관하여 고리대금업을 대표적인 경제적 수탈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자본의 축적 이동으로 소액의 민족 자본이 일본인의 대자본에 의해 수탈되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고리대금업에 대한 울분을 통해 식민지 치하의 법률 자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침탈상의 제시는 동시대의 어떤 작가보다도 탁월한 현실 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명희 문학은 ‘배고픔’에서 기인하는 병리적인 현상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중에서도 지식인 계층의 삶의 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땅속으로’, ‘R군에게’, ‘저기압’ 등에 공통적으로 그려져 있는 주인공들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동경 유학생, 전직 교사, 신문기자 등으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직업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문화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삶의 목표를 상실한 채 끊임없이 의식의 절멸 상태만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뿌리 뽑힌 자’(uprooted)의 좌절의식과 소외의식만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명희는 1920년대를 생활의 기본 조건이 되는 경제가 파멸되었기 때문에 다른 생활도 파멸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인식했습니다. 이 경우 지식인의 삶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하층민에 비해 더 많은 적응력의 한계성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주인공들은 자아가 세계로 말미암아 파괴당하는 시대의 희생양에 해당됩니다.

‘낙동강’은 KAPF 내에서의 논쟁을 야기할 정도로 뚜렷한 전환의 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중인물의 성격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전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현실적인 대응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인물이었다면 ‘낙동강’의 주인공 박성운은 구체적인 목적성을 지닌 이념형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이전의 프로문학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로사라는 여인과 애정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고향 사람들과도 깊은 정신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농업 조수인 박성운의 의식전환은 독립운동의 폭발과 그것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은 사회주의 혁명을 전제로 한 정치투쟁의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프로문학의 본령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낙동강’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밀도 있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경제적 착취와 관련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계급해방 운동을 상위에 놓았던 대다수의 프로문학과는 달리 민족주의를 우위에 놓고 있는 것입니다.

‘낙동강’은 식민지 치하의 한국인의 삶의 실상을 포괄적으로 조망한 궁핍의 서사시입니다. 이념형 인물인 박성운은 단순한 개인이라기보다는 민족의식을 상징하는 ‘대표자적인 개인’에 해당됩니다. 그의 죽음은 일제에 의한 지독한 고문의 결과로써 ‘각 단체 연합장’으로 치러질 만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민족적인 문제로 부각돼 있습니다. 루카치의 변증법의 논리를 빌어 설명하면, 이것은 “외적인 현실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이를 인간 실천의 일부로 전환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의 표현”을 의미합니다.

이런 변증법적 역사의 전개 과정을 통해 사회적 환경과 인간의 실천적 능력은 끊임없는 교호작용을 일으켜 하나의 통일된 역사적 총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적지 않은 구조적인 모순점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정치적인 응전력을 제시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오늘날의 작가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학사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며 충북 진천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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