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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종합토론
2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 종합토론
  • 동양일보
  • 승인 2013.10.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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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탄생 119주년, 포석문학의 새로운 가치 탐구

 ● 진행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 주제발표

△정호웅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진석 서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토론 (가나다순)

△김주희 대전침례신학대 교수·문학평론가
△나순옥 포석기념사업회장·시조시인
△오만환 천안 한마음고 교장·시인
△한성숙 대전가양도서관 인문학강사·문학평론가

● 때·10월 11일(금) 오후 2시
● 곳·충북 진천종박물관 주철장전수교육관 세미나실
● 정리·조아라 동양일보 취재부 기자
● 사진·임동빈 〃 사진부 기자

 


사회 유영선▷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올해는 포석 조명희 선생이 태어나신지 119년 되는 해입니다. 동양일보는 선생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던 1994년, 선생의 고향인 진천 벽암리에 표지비를 세우고, 조명희 문학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전인 1992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정부 주관으로 조명희 거리를 만들었고, 명명식이 열려 유족들이 그곳을 다녀온 적 있습니다.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될 때 그곳에서 문학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선생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나라에서도 그의 문학 혼을 기리는 문학제가 열린다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반성으로 그 이후 동양일보는 선생을 기리는 문학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동양일보는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더욱 깊이 있게 조명하기 위해 학술 심포지엄을 새롭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2회를 맞는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의 결과물은 별도의 책자로 제작돼 진천에 건립될 조명희 문학관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깊이 있는 발제와 심도 있는 토론으로 포석 문학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먼저 정호웅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의 발표에 대해 김주희 대전침례신학대 교수가 토론해 주시겠습니다.”

 
▷김주희 대전침례신학대 교수
“저는 정호웅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정 교수님의 아름다운 탐색에 기쁘게 동행하면서 오늘 우리가 소중한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는 점에서 참 좋은 발표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작가 주변과 좋은 문학 작품의 창조적 생산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신 발표를 아주 감사하게 잘 들었습니다. 특히 포석 선생과 소설 ‘낙동강’에 대한 기억, 귀환, 수용에 대한 탐구에서 작가와 그의 작품이 어떻게 수용되고 확산해 나가는가를 보는 것 뿐 아니라 시대와 작가, 작가와 작품, 작품와 독자의 관계를 짚어보는 빛나는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걸출한 작가 최인훈에 의해 조명희 선생의 작품이 어떻게 읽히고 수용되는가를 탐색해서 단지 당대 지식인들만이 아니라 현재도 여전히 (조명희 선생의 작품이) 수용됨을 입증해 보이셨는데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최인훈이 ‘낙동강’에 대한 오마주로 ‘화두’를 썼다고 한다면 정호웅 교수님은 아마도 이 둘에 대한 오마주, 즉 오마주에 대한 오마주로 이 연구를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보다 더 쉽고 이보다 더 빛나게 조명희 선생의 영향력을 짚어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두’를 낙동강에 대한 오마주로 읽어도 좋을까요? 또 최인훈이 교과서에 실린 ‘낙동강’을 읽었다며 ‘화두’를 통해 선생의 제자임을 자임하게 되는데 이 시대의 ‘낙동강’이 포석 선생의 현실이나 최인훈이 읽었던 시절과 다른, 이 시대 교과서에 실린다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또한 이 시대 독자들은 어떤 부분에 공감할까요?”

 ▷정호웅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최인훈 선생은 조명희 선생과 ‘낙동강’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화두’를 썼습니다. 작가는 그 이전 작가의 작품보다 어떻든 앞으로 더 나아가려고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인훈 선생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조명희 선생과 ‘낙동강’을 깊이 존경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제도 교육 속에 ‘낙동강’이 수용될 수 있을까요?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작품, 또 그런 작품을 쓴 작가들에 대한 해금이 풀린 것은 1988년입니다. 지금은 얼마든지 제도권 교육 과정에 수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이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런 것을 바탕으로 문학 활동을 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수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추구하는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 자신을 투신하는 인물의 행로를 이 소설은 담고 있습니다. 그 점에 주목해서 보면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행로를 가르치는데 대단히 효과적인 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교과서 만드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정부에서 이념적으로 문제 삼아 심사에서 교과서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려해 교과서에 실제로 실리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 이사
“김주희 교수님은 조명희 선생의 작품이 시대가 달라진 후에 교과서에 수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정 교수님은 사회적 이념을 담고 있는 작품이지만 1988년 공식적으로 해금이 됐고, 해금이 됐다고 하는 것은 이념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제도 교육에 수용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 교과서를 만드는 분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중 교과서 만드는 일에 관여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그런 부분에 대해 노력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 교수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교과서에 수록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중?고등학교 참고서에는 ‘낙동강’이 대부분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는 제도교육권 내에 낙동강이 이미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 이사
“그렇군요. 또 이 ‘낙동강’은 북한의 교과서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실렸고,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오래전부터 실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두 번째 토론자로 오만환 교장 선생님께서 질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만환 대전한마음고 교장, 시인▷오만환 천안 한마음고 교장
“고등학교 현장 교육에 있는 사람으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고등학생 권장도서로 소설 ‘낙동강’이 들어 있습니다. 또 많은 대학에서 ‘낙동강’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고 있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낙동강’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 때문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포석의 ‘낙동강’은 더 확산될 것이고 교과서에 실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저희 포석기념사업회에서도 여러 측면에서 노력할 계획이라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먼저 정 교수님께서 카자흐스탄을 직접 다녀오시고, 세밀한 분석을 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서정적인 가운데 의지가 드러나는 ‘별 밑에서’라는 시를 분석하고, 이 작품이 고은에 미친 영향까지 말씀해주신데 대해 깊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포석의 전집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보면 포석의 작품은 매우 다양합니다.
 
초창기에는 동심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이 있고, 작품 속에서 우주적 감탄, 자연에의 감탄도 많이 엿볼 수 있습니다. ‘짓밟힌 고려’ 등의 작품은 정치적 투사로서의 면모도 많이 보입니다. 특히 고향을 떠나 원하지 않는 일제하의 압박으로 두만강에 건너가서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 하에 투사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더 예술적인 의지와 목적성을 지닌 작품이 창조된 것 같다는 저의 의견을 말씀 드립니다.”

 ▷정 교수
“포석 선생은 기개가 대단한 선비이셨던 것 같습니다. 스탈린의 무지막지한 정치 권력과 폭력 앞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다 스러졌는데 그것은 굉장한 기개이죠. 그런 기개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집안의 전통과 관계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집안의 전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런 기개는 잘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진천의 산수에서 기개가 채워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유 이사
“오만환 교장선생님은 질문이라기보다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시 ‘별 밑으로’가 고은의 시와 연관된다는 의견에 공감하신다는 말과 함께 포석의 시가 그것 뿐 아니라 동심이나 우주를 노래하거나 ‘경이’같이 자연에 대한 감탄을 노래하는 시 등으로 여러 가지 경향을 보였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투사적인 목적성이 가미된 시도 발표하셨지만 서정성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지금 두 분의 토론자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김진석 교수님의 발제에 대해서 먼저 나순옥 포석기념사업회장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나순옥 포석기념사업회장 시조시인▷나순옥 포석기념사업회장
“저는 이 지역을 지키며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논문에 대한 분석보다는 이런 글을 쓰시는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작년부터 이 자리에 앉으려 별렀습니다. 제가 조명희 선생을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였고 그때부터 더욱 깊이 선생의 작품을 알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선생에 대한 글이 대동소이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발표된 글을 보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의 생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착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 분의 삶에 대해서 좀 더 애착을 가지고 접근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이 세상에서 44년 밖에 못 사셨습니다. 수명이 다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생을 마치셨기 때문에 문학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마무리할 시간이 없었겠지요. 그 분을 애착이라는 확대경을 갖고 들여다 볼 때 정말 진실된 많은 이야기가 보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김 교수님의 글 앞부분에서 잠깐 언급됐는데요 단지 ‘독립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행적, 그 일을 하게 된 동기 등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소련에서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사형 당하셨는데 옥중의 생활에 대한 기록, 법원 판결문, 재판 기록문도 분명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으로 선생의 제자들이 들어가 북한 문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데 북한 문학에 선생을 어떤 모습으로 심어 놓았는지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발췌해 알려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숨겨진 부분들이 발굴될 수 있고 묻혀 있는 것들을 찾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 분들이 그 분의 한계를 한계로 보지 말고, 미완을 미완으로 보지 말고 그 분에 대한 애착을 갖고 접근해 주셨으면 한다는 부탁을 간절히 드립니다.”

 ▷김진석 서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언젠가 한번은 혼날 줄 알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연구 자료에 대해 따끔하게 혼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 작가를 비평하려면 호적 초본부터 떼어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러시아에 계실 때 사형 기록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 보완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선생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 대동소이하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들도 공부하고 논문을 쓰면서 제일 어려운 문제인데 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논지의 여지가 적은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쓰고 나서도 이를 묻어야 하는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런 논의를 지속하는 것이 미완을 완성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관심을 갖고 좀 더 자료를 확대하는 작업들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리들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핑계 삼아 말씀드립니다.”

 ▷유 이사
“포석 심포지엄이 지난해 시작돼 이제 올해로 2회를 맞았습니다. 앞으로 횟수를 거듭해 지속되면서 많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포석 선생을 조명하면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순옥 회장께서는 문학과 일생을 스스로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떠난 조명희 선생에 대해 연구자들이 애착을 갖고 찾아내지 못한 부분까지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이 지역 후배 문인으로서 간절한 부탁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토론자인 한성숙 인문학 강사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대전가양도서관 인문학 강사▷한성숙 대전가양도서관 인문학강사
“우선 저는 그동안 ‘낙동강’과 몇몇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에 머물렀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조명희 선생의 작품을 좀 더 꼼꼼히 읽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김진석 교수님께서는 조명희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조명희 소설의 실체를 규명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성장기의 가난과 유림 가문의 후손으로서 체득한 반일 의식이 조명희 문학의 중요한 모티브를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조명희 소설이 ‘낙동강’을 전후해 작품세계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크게 2기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1기 작품인 ‘땅속으로’, ‘R군에게’, ‘저기압’ 등의 공통점은 현실적 대응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지식인 주인공의 이념 파탄과 허위의식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라 하셨습니다. 이에 반해 2기 작품인 ‘낙동강’에서는 지식인 주인공인 박성운을 구체적인 목적성을 지닌 이념형 인물로 형상화하여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정치적 응전력을 제시한 대표적 작품이라 평가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견지에서 보면 ‘낙동강’ 이후의 작품인 ‘춘선이’, ‘이쁜이와 용이’, ‘아들의 마음’ 또한 2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낙동강’ 분석을 통해 조명희는 “사회주의 계급투쟁보다는 민족의 생사와 직결되는 반일민족 투쟁을 상위의 개념으로 놓”고 있다고 하신 교수님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낙동강’ 외의 위 세 작품을 보면 그러한 교수님의 견해에 약간의 의문이 생깁니다.
 
이들 작품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그 인과성의 측면에서 다소 미흡한 점은 있지만 저는 이들 인물에게 반일의식보다는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노동자인 주인공, 노동조합 투사인 일본인,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쳐 입원한 고학하는 조선인 유학생 등 동경의 노동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들의 마음’에서 이러한 점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연대의식과 “세계무산 계급 해방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류 비행사가 된 금순이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 교수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생을 추적하다 보면 수평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단층처럼 껑충 뛰어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요. 아마 ‘낙동강’이 조명희 선생에게 그런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낙동강’과 ‘이쁜이와 용이’는 같은 선상에서 보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단원을 보면 용이가 이쁜이를 좋아하지만 이쁜이는 부르주아의 첩이 되어 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것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으로 보기보다는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인데 투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상당히 자연주의적이라는 겁니다. 좀 변용이 되는거에요. 제가 이것을 낙동강과 같은 연계선상에서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의 변용과정. 이것이 바로 자연주의, 인간의 본질이고 추악성인데, 이 작품을 이 글에서 함께 얘기한다면 논지에 어긋날 것입니다. 다른 차원에서 다르게 이야기돼야 하는 것이지요.”

 ▷유 이사
“한성숙 선생님께서는 조명희 작품이 ‘낙동강’을 계기로 크게 나뉘는데 김진석 교수님은 ‘낙동강’을 사회주의 보다는 민족주의 관점으로 보았다고 짚었습니다. 그런데 ‘이쁜이와 용이’ 등에서 사회주의 계급의식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 작품을 제외하고 ‘낙동강’만을 다룬 이유는 무엇이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김 교수님께서는 투사에 초점을 맞추기 보기보다는 이쁜이가 부잣집 처로 시집을 가니 자연주의적 경향일 것으로 보이고 그러므로 ‘낙동강’과 같이 언급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김소운 시인은 “내가 포석에게 배운 것은 문학의 지식이나 시의 기술이 아니요, 빈곤과 오뇌 속에서도 언제나 돋아나는 떡잎같이 신선한 정열-추호의 타협이 없는 꼿꼿한 신념-그것이었다”고 포석을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보다는 가난한 민중을 먼저 생각했고, 사회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직접 뛰어들어 투쟁하길 원했으며, 최하층의 민중들이 혁명적 의식을 갖고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한국 민족민중문학의 선구자. 희곡, 시, 소설 어느 한 분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민족주의적 극작가요, 사실적인 시인이요, 획기적인 작품을 남긴, 선구적 프로 소설가라는 다양한 마스크를 지닌 조명희 선생은 결코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망을 지닌 작가입니다.
 
동양일보는 내년에도 이어 이같은 심포지엄을 개최해 좋은 연구와 자료를 발굴해, 한국문학사를 잇는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오늘 좋은 발표로 조명희 선생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관심을 일깨워주신 정호웅, 김진석 두 분 교수님과 진솔한 의견으로 심포지엄을 격상시켜준 네 분의 토론자, 그리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진지하게 경청해주신 방청석의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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