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민에게 ‘춤 보는 재미’ 길들인 것 보람
태평무.승무 등 전통춤 계승에 혼신
‘박파 박재희 춤 50년-강산연파(江山延波)’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아르코 극장

 

중국의 성인 공자는 나이 쉰에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고 해서 그 나이를 가리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벽파 박재희(64.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36.청주대 예술대학 무용학과.043-229-8691) 청주대 교수의 춤사위에는 젊은 무용수들에게서는 느끼기 어려운 절제된 기품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전통춤을 추는 춤꾼 박재희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란다는 박재희 교수가 올해 춤 인생 50주년을 맞았다. 오롯이 춤과 그 춤을 통해 제자들을 길러내는 것만 생각하고 살았던 세월, 그의 춤은 농익었고 제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수로 우뚝 섰다.
그래서 춤 인생 50주년을 기념해 21일 오후 730분 서울 아르코극장 대극장에서 여는 벽파 박재희 춤 50-강산연파(江山延波)’가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춘천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처음 접한 무용이 무작정 좋아 시작한지 50년이 됐습니다. 오로지 이라는 한 길만 걸었던 그 시간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고 한영숙 스승님과 큰 무용수로 성장한 제자들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훌륭한 스승께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춤추는 제자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의 춤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강산연파는 한 모금의 생명수가 산속 옹달샘에서 태어나 계곡의 시내, 고을의 개천, 도읍의 강을 거쳐 망망한 바다에 다다르는 여정을 풀어낸 무용 대서사시다. 박 교수가 안무한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황토누리종이무덤’, ‘그 바람의 신화등을 축약한 작품으로 그의 50년 춤 인생을 모두 반추한다.
그가 예술감독을 맡은 강산연파는 박시종?노현식?김진미?홍지영?손혜영?전건호씨를 비롯해 안무와 출연까지 모두 그의 제자들이 맡아 더욱 특별한 무대다.
처음 청주대에 부임해 만난 제자 박시종 안무가부터 20대 어린 학생들까지 모두 제가 길러낸 제자로 공연을 올린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한손에 꼽을 만큼 어려운 이 무대를 위해 수개월 동안 주말마다 연습실에서 함께해준 제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태평무의 대가 박 교수가 1982년 청주대에 부임해 청주를 그의 예술적 토양으로 삼은 것은 청주시민들에게도 큰 영광이었다.
그 당시 청주는 무용전공자들 조차 제대로 된 무용공연을 관람한 경험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예술적으로 척박한 땅이었다. 박 교수는 제자들로 하여금 더 좋은 무용수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부랴부랴 박재희 새암무용단을 꾸렸다.
지금 청주 관객들은 관람매너 좋기로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소문나 있지만 새암무용단첫 공연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납니다. 여기저기서 나는 음료수 캔 따고 과자봉지 부스럭 대는 소리 잠재우러 공연 내내 얼마나 객석을 돌아다녔는지 나중엔 옷이 다 젖었더라고요.”
새암무용단을 창단해 청주시민들에게 춤 보는 재미를 길들인 박 교수는 이후 충북무용협회와 충청지역 무용교수연합회 회장, 청주시립무용단 안무자로 활동하며 충북무용제와 충청무용제전, 전국대학무용경연대회 등을 개최해 중부권 무용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제는 춤이 곧 박재희고, 박재희가 곧 춤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박 교수는 앞으로 태평무승무등 전통춤을 전승시키는 일에 더욱 힘쓸 계획이다. 그가 한성준 옹으로부터 시작된 한영숙류 태평무를 올곧게 이어오고 있는 것처럼.
1950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한 그는 이화여대 무용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로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박재희새암무용단 대표, () 벽파춤연구회 이사장, 한영숙춤보존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옥?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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