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먼지를 쌓아 가던 책들은 제 갈 곳을 찾았고, 아이들은 책이 TV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거친 겨울바람이 날카롭게 옷 속을 파고들 때 도서관은 놀이터가 됐고,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마음을 달달한 커피 한 잔으로 달래는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마을 사람들과 도서관은 어린왕자와 여우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길들여졌다.

청주 성화동 주공아파트(휴먼시아)에는 유독 모범 작은도서관이 많다. 1단지의 청개구리, 4단지의 성화꿈터, 5단지의 파레트 작은도서관 등 모두 세 곳. 공교롭게도 이곳들은 모두 시민사회단체인 함께사는우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12월 말에는 2단지에 숨바꼭질 도서관도 문을 열 예정이다.)
청개구리 작은도서관(043-237-9037)지난 20104, 주공1단지 102동 피트(PIT)층에 청개구리 지역아동센터가 세워지며 함께 생겼다. 탄생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많은 입주자들이 아동센터와 도서관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했고, 함께사는우리 실무자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이 수렴되자 관리사무소와 협약해 공간을 무상 임대받기로 했다. 관리비에 민감한 아파트 주민들에게 도서관 사업비와 운영비를 부과할 수는 없었다. 공모를 통해 청주시지속가능발전위원회(현 녹색청주협의회)로부터 사업비를 확보했고, 그 돈으로 책을 구입하고 책장을 짰다. 페인트칠은 실무자들이 직접 했고, 한국교원대 미술교육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귀여운 어린왕자와 여우의 벽화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완성된 도서관은 조금씩 주민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먼저 도서관에 들러 차를 마시던 주부들로 자연스럽게 모임이 형성됐다. 모임의 요구를 반영해 미술퍼포먼스, 비누공예, 리본아트, 북아트 등의 수업을 진행했다. 강사진도 아파트 주민들로 꾸렸다. 수업은 후원금이 들어올 때마다 1인당 1~2만원의 저렴한 금액만을 받고 간헐적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9, 1단지 광장에서 도서관 주최로 책잔치를 열었을 때는 모임의 주부들이 참가해 체험부스를 열기도 했다. 개당 1000원의 비누공예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은 도서관의 전기세와 커피값 등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청개구리의 장서는 4500여권에 달한다. 이중 기증 도서가 20~30%.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장서를 확보하게 된 것은 주민들의 관심 덕분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적극적으로 책 기증을 홍보했고, 기증하겠다는 이가 나타나면 직접 집으로 찾아가 받아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낡고 오래된 책이 쌓일 것을 우려했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 책들이 많이 모아졌다. 간혹 책에 얽힌 사연을 메모지에 적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성화동의 작은도서관 세 곳이 주축이 돼 장전공원에서 장전골 책잔치도 열었다. 출판사 5곳에서 20여종의 새 책 1000여권을 지원 받아, 주민들이 헌책 3권을 가져오면 새 책 한권을 줬다.


책만 읽기 심심한 초등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시민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진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책 읽어주는 선생님’) 매주 토요일에는 화가 안순재씨가 미술 지도를 한다.(‘꼬마 피카소’) 여름방학 때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독서지도와 영어 동화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 4주간 열리기도 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센터와 도서관 아이들 14명의 멘토가 되어주기도 한다. 충북고와 청주 중앙여고?청주외고?청주 산남고의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 이곳을 찾아 형, 누나가 되어 함께 놀고 공부를 가르쳐 준다.
오후 두시가 넘어가면 도서관은 아이들의 차지가 된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오시는 금요일, 아이들이 와글와글 몰려들었다. 재잘대던 아이들은 금세 입을 닫았고,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 안에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대하는 이의 모습이 깃들여 있었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질 것이라는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게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오후 1시부터 기다려지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용 시간 : 평일 오전 10~오후 630, 토요일 낮 1230~오후 430.
이용 대상 : 누구나
<조아라>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