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준 기 충북학생교육문화원장

그 해 3월, 검정 교복에 흰 테 두른 모자를 쓰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한 지 채 두 달도 안 된 영어회화시간에 난생 처음 외국인 선생님을 만났다.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이름이 ‘미스터 브라운’인 코큰 선생님은, 우리가 영어에 낯선 만큼 한국어가 서툴렀다.
그래도 자신의 귀를 만지면서 연발하던 “ㅌㅠㄷ다만!”이 ‘듣기만!’이란 말인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Today is Monday, April twenty two Nineteen sixty-eight.”라는 짧은 문장을 한 시간 내내 복창하다보니 지금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어린이 영어 인증시험장에 어린이 200여명이 엄마들과 함께 붐비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남보다 먼저, 남보다 빨리 하지 않으면 경쟁에 뒤처진다”는 ‘열정 엄마’들의 불안감도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 아이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본 영어교육의 한 단면도 보였다. 한 일본인 학자는 “일본에서는 일본어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영어교육에 지나치게 열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국의 영어교육에 대한 2006년의 한 보도.
“중국의 영어교육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그것은 2001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정한 정책 때문이다”라고 전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5년이 지난 2011년의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영어 광풍으로 많은 국민이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지만 막상 영어실력은 기대에 못 미친다. 중국 영어교육의 허점은 시험 위주의 기계적 학습방법 때문이다. 시험과 문법 중심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은 말하기, 듣기에 크게 뒤떨어진다. ”
더불어 “일부에서는 중국어 수준의 약화를 우려하여 영어 열풍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중국이 영어교육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전하고 있다.
또 하나, 2013년 11월 최근의 보도.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영어가 필요 없게 된 경우가 허다하다. 지나친 영어교육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영어를 배워도 어차피 영어를 쓰게 될 가능성이 낮고, 영어 때문에 중국어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학교에서 문법이나 스펠링만을 가르쳐 회화가 불가능하다.”
영어는 20세기의 성공요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때 아랍어가 고주가를 보인 적도 있고 중국어와 일본어가 세를 넓혀 영어의 위세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영어를 완전히 배제한 21세기 교육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의 이름에도 영어가 지나칠 만큼 쓰인다. 연예인이 예명으로 우리말 이름을 쓰면 촌스럽고, 개인회사는 물론 공기업 이름에까지 외국이름이 붙은 게 허다하다. 휴대폰도 가전제품도, 영어를 모르면 사용하기 어렵다.
우리의 국력이 세계를 지배할 만큼 세지 못한 글로벌시대에서 어차피 영어교육을 멀리할 순 없다. 중국어,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우리 영어교육의 문제는 ‘벙어리교육’에 있다.   10년 이상 영어를 배우고도 막상 외국인과 맞닥뜨리면 ‘침묵은 금’이었던 게 우리 세대들이다.
영어 조기 교육도 좋고 엄마들의 열정도, 투자(?)도 좋다. 그러나 외국어 이전에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과유불급이고, 아무리 좋은 보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독이 될지 모를 편식 보다는 ‘올바른’ 우리말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 등에도 관심을 갖는 ‘골고루 학습’을 글로벌시대의 엄마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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