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4주기 추모법회

 “눈이 많이 내리면 꼼짝달싹 못하고 차 안에 갇혀 버리게 되죠. 도시문명의 부작용입니다.”

길상사 설법전에서 열린 법정 스님(1932∼2010) 4주기 추모법회에서 스님의 카랑카랑한 육성이 울려 퍼졌다. 700여 명의 참석자들은 스님이 생전에 했던 법문 영상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법정 스님은 ‘문명의 소도구로 전락하지 말자’는 주제의 법문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다움과 여유를 잃지 말 것을 강조했다.

“전자우편은 편합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금방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일에는 뜸들일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래요. 진정한 관계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고 세월을 통해 다져집니다.”

법정 스님은 “순간 순간에 감사하고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순간을 수단시하고 살면 평생을 살아도 남는 게 없다. 목표를 좇아 급하게 달리지 말고 여유를 갖고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육성에서는 법정 스님이 외국 방문 때문에 운전면허 갱신 기간을 놓쳐 출입국기록 확인서를 떼러 갔던 경험도 소개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입력하니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외국을 드나든 기록이 하나도 빠짐없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편리함에 놀란 게 아니라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섬뜩했습니다.”

법정 스님과 반세기를 같이 지낸 송광사 법흥 스님은 추모법문에서 “스님은 성격이 치밀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겼으며 자신의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하고 “속가에서 읽은 책만 해도 한 트럭이 넘었다”고 말했다.

또 1970년대 초 조계종이 봉은사 땅 10만평을 매각하려 하자 “봉은사가 팔린다. 침묵은 죄악이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 유신헌법이 통과된 뒤 야권 인사들에 대한 도청과 우편물 검열 등 탄압이 강화되자 송광사로 내려가 뒷산에 불일암을 지었다고 법흥 스님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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