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지역담당 부국장

온 나라를 통곡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어른들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럽다.
꽃다운 어린 영혼들 앞에서 숨 쉬는 것조차 죄스럽다.
구조 현장을 똑 바로 볼 수조차 없다.
‘악마’라는 표현을 접해도 할 말이 없다.
견미지저(見微知著)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소한 것을 보고 장차 드러날 것을 안다’라는 의미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성인들의 지혜를 곱씹어볼 만한 말이다.
큰일이 나기 전에는 대개 이런저런 작은 조짐들이 나타난다.
중국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자 폭군의 대명사인 주(紂)가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자 현인 기자(箕子)는 앞으로 임금의 사치는 진정시킬 수 없을 것이라 예언했다.
상아 젓가락을 사용한 이상 그에 걸맞은 옥잔을 비롯한 각종 기이한 물건들을 사용하려 들 것이라고 본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 장차 드러날 것을 안다’라는 견미지저라는 고사성어의 출처다.
사고가 발생하고서 수습하는 것보다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병이든 조직이든 일이 터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 터지고 나서 호들갑을 떨며 수습하는 것은 가장 하책이다.
수목을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호모부가(毫毛斧柯)라는 성어도 있다.
곡돌사신(曲突徙薪)은 굴뚝을 구부리고 굴뚝 가까이에 있는 땔나무는 옮긴다는 뜻으로 재난을 미리 방지함을 비유한다.
이런 성인들의 지혜가 담긴 고사성어는 우리나라 재난 대응체계에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현재 재난 예방계획은 국무총리 중심의 중앙안전관리위원회가 담당한다.
재난발생 시 실제 대응은 안전행정부 장관을 주축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이 맡고 있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듯이 위기관리와 대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사회재난은 안행부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실제 상황 시 대응역량이 부족했다.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이 중추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일원화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과 같은 대형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여객선 사고는 중대본 대응보다 해양수산부가 대응해야된다고 본다.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도 그 이유에서다.
박근혜 정부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칭하면서 안전정책을 강조해 왔다.
재난 대응 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현재의 재난대응 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름을 바꿔서 안행부가 사회의 모든 재난대응에 중심축이 되도록 했지만, 위기관리에 대한 실효성을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참사에서 나타났듯이 여객선 등 다중이용 선박에 대한 안전관리 매뉴얼 제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론적인 안전관리 계획은 대형 사고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왕좌왕하며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컨트롤 타워 부재’로 인해서다.
중대본은 총괄 지휘 역할을 못한 채 허둥지둥하면서 골든 타임(사고발생 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효시간)을 놓쳤다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정부는 탑승자 인원부터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구조자 정보도 발표 내용을 번복하면서 신뢰를 잃어버렸다.
초반에 해수부가 됐든 해경이 됐든 위기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대응했어야 했다.
3곳의 지휘부가 가동되면서 지휘체계에 혼선을 빚은 것은 집고 넘어갈 문제다.
사기(史記)에 치병막여적시(治病莫如適時)라는 말이 있다.
병을 고치는 데 있어서 적당한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재난대응 체계가 실제사고 발생 시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
꿈 많던 희생 학생들을 위로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죄스럽기만 하다.
살아있는 우리들은 회한조차 떨쳐 버릴 수도 없다.
비통한 참사 앞에 분노와 두려움, 사랑과 연민의 감정만이 뒤섞여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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