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빛낸 음악으로 고향을 비추다

 

(동양일보 김재옥 기자)

 

박영희 작곡가

“내 고향 청주는 예술적 기반의 자양분”

“통합청주시 기념곡 선물 들고

50년만에 밟은 그리운 고향땅

깊고 감동있는 음악 들려주고파

썼다 지웠다 4번이나 다시 작곡

지역최초 명예시민 매우 기뻐

더 좋은 곡으로 보답위해 노력”

 

충청지역에서 성장해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박영희 작곡가와 최나경 플루티스트. 세계 최고의 음악가로 평가 받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을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면서 하는 것과 자신의 예술적 토양인 고향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

충청지역의 비옥한 예술적 토양을 일구기 위해 23년간 달려온 동양일보는 창간기념호를 통해 세계를 무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박영희 작곡가와 최나경 플루티스트를 만난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를 서양음악에 반영한 작곡가 박영희(70·독일 거주)씨가 지난 7월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음악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난 지 50여년 만이다.

한국적 정서를 서양악기와 현대음악기법으로 표현, 작곡분야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박 작곡가는 고향 방문길에 큰 선물을 들고 왔다. 통합청주시 출범을 기념하고 시민들이 희망을 노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청주시민의 노래’를 작곡해 온 것.

박 작곡가가 ‘청주시민의 노래’와 같은 상징곡을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전문 연주를 위한 곡만 작곡했던 그였지만 시민의 노래를 작곡해달라는 청주시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예술적 토양을 만들어 줬던 고향과 고향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뻤다. 4월말 청주의 여러 문인들이 함께 쓴 글을 받고, 두 달 후 그 글에 곡을 붙여 다시 청주시에 보낼 때까지 그는 한시도 ‘청주시민의 노래’를 머릿속에서 지운 적이 없다.

연주곡을 만들 때보다 더 신중했다. 가볍고 편하게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으면서도 깊이와 감동 있는 곡을 고향에 선물하고 싶었던 그는 4번이나 작곡을 다시 할 정도로 열정을 다했다.

박 작곡가의 ‘청주시민의 노래’ 선물에 청주시는 통합청주시 1호 명예시민증으로 보답했다.

이로써 여성과 동양인 최초 스위스 보스윌 세계 작곡제 1위, 여성작곡가 최초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축전 위촉, 동양인 최초 하이델베르크시 여성예술가상 수상 등 ‘최초’로 일관된 그의 이력에 통합청주시 최초 명예시민도 보태졌다.

“음악공부를 위해 청주를 떠난 지 올해로 50년이 됐는데 아직도 고향집 번지까지 기억할 정도로 그동안 고향을 잊어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다시 저를 길러주고, 예술적 토양을 형성해 준 청주시민이 다시 됐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청주를 다녀간 후 그는 더 자주 고향 청주를 그리워 했다고 했다.

8남매 중 일곱째인 그는 유난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퉁소를 연주하시고 시를 쓰셨던 아버지는 자신이 지은 글에 음을 붙여 노래를 부르셨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던 열 살 어린 아이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받아드릴 수 없는 슬픔이었다. 당시 사범학교에 다니던 언니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피아노를 가르쳤고, 몰두할 곳이 필요했던 박 작곡가도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그는 까무잡잡하고 촌스런 청주소녀가 서울대에서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도 기죽지 않고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덕분이었다고 전했다.

“제가 작곡하고 현대음악은 쉽게 말하면 ‘현재의 소리’입니다. 음악을 듣고 있는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쁘게 반겨주신 고향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더 좋은 곡으로 자주 만나는 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1945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1가 181에서 출생한 그는 청주여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하고, 브뢰멘 국립대 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독일 베를린 예술원 회원으로 국민훈장 석류장·KBS해외동포상·백남상 등을 수상했고, 세계현대음악명예의전당 ‘파울 자허 재단’에 친필악보가 영구보관 돼 있다. 그는 자신의 음악 스승이었던 클라우스 후버 작곡가와 결혼해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다.

 

 

 

최나경 플루티스트

쉽게 풀어낸 클래식 일상에 지친 지역민

3대 음악가 집안에 태어나

어릴때부터 자연스레 악기 접해

웃고 즐기며 연주하는 스타일

한국 최초 빈 심포니 단원 선발

“지역 공연 열렬한 환호에 감사

누군가에 힘이되는 연주하고파”

 

대전 출신 플루티스트 최나경씨는 ‘재스민 최’로 더욱 널리 알려진 연주자다. 지난 2012년 한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연주단원으로 선발돼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던 그는 이번 연말 청주와 충주, 음성에서 혼신의 다한 연주로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는 대전이 고향이긴 하지만 음악적 기반은 청주에서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플루티스트는 3대가 걸친 음악가 집안으로 청주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초대 상임지휘자를 지낸 고 이상덕 청주교대 음대 교수가 외할아버지다. 또 어머니 이대희 바리올리니스트를 비롯해 외삼촌인 이강희 한국교통대 음악과 교수와 이문희 충청대 실용음악가 교수 덕분에 집안에는 늘 음악이 있었고, 어느 순간 음악이 삶이 돼 버렸다.

최 플루티스트를 ‘스폰지 같다’고 표현한 이홍규 충청대 교수는 그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인 고1때까지 최고의 연주자로 성장할 그의 기초를 튼튼히 세웠다.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던 것이 정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곡목도 모른 채 흥얼거리면 따라 불렀던 멜로디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또는 유명 교향곡이더라고요. 외할아버지께서 지휘하시는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고, 어머니께서 집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하실 때 연주했던 곡들도 혼자 다 따라 부르곤 했어요.”

단선율이고 여성스러우면서도 때로는 강하고 매서움을 발산하는 반전이 있는 소리가 플루트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최 플루티스트. 그와 플루트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워낙 음악가 집안이라 악기를 배우는 것이 당연시 됐던 집안 분위기로 어려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때 학교 숙제로 리코더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재미에 푹 빠져 밤낮으로 리코더만 불기 시작했다. 숙제를 위한 연습이 아니라 하나의 재미난 놀이를 배우게 된 것처럼 신나게 연주했고, 이후 부모님을 설득해 플루트를 시작하게 됐다.

그 후로 그는 늘 즐기는 연주를 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악기의 발전이 늦은 편이지만, 앞으로 무한 가능성을 갖고 있고, 발전의 선두에 재스민 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주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행복한 음악을 꿈꾸는 재스민 최가 지난 27일 음성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한 ‘Why Not?!’ SeasonⅡ는 팝, 재즈,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융합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클래식 음악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고자 기획한 공연이다. 3년 전에 처음 시도해 대중들에게 성공적으로 클래식 음악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다는 평가를 얻은 이 공연은 올해 더욱 다양한 장르와 탄탄한 기획으로 더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플루티스트로서의 그의 꿈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연주 실력을 갖췄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 작은 영향도 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금껏 연주자로 살아오면서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들어 일궈내고 있는 음악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연주를, 예술을 더 욱 가치 있게 완성하는 길이니까요.”

재스민 최는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미국 커티스 음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플루트의 거장 줄리어스 베이커와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에서 제프리 케이너를 사사했다. 졸업 후 22세의 나이로 미국 신시내티심포니의 18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플루트 부수석(2006~2012)으로 활동하며 당시 음악감독 파보 예르비의 지휘 아래 신시내티 심포니와 솔리스트로 협연했다. 2012년 2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인 최초 비엔나 심포니 수석(2012~2013)으로 입단했으며, 미국 줄리어드·커티스·맨하탄·인디애나 음악대학 초빙교수로 공식 마스터 클래스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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