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소설가>

 

마침내 해가 바뀌었다. 바야흐로 양의 해가 된 것이다.
 태평양반은, 마누라를 비롯한 온 식구들이 마음을 졸이며 애를 태우고 있는데 그래도 태평이다. 근심이 없고 걱정이 없다. ‘다 산모는 저러하게 진통을 하는 것이고 그 끝에 아기 울음소리가 식구마다의 귀에 울릴 것이다. 이게 다 새 생명 탄생의 절차고 순서가 아닌가?’  이렇게 느긋한 사람, 그래서 태평양반이다. 주위사람들이 벌써부터 어련히 알아서 붙여준 별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양띠아기 탄생의 울음소리가 울릴 것이고 그러면 꼬투리인지 민짜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마누라의 극성으로 일단 이번 애기를 양띠로 만드는 데는 성공을 했다. 이 계획은 열 달 전 시어머니가 며느리 입덧하는 걸 눈치 채고부터 세워졌다.
 “애비 에미, 내 말 잘 들어야 혀, 이번 둘째는 우쨋든 간에 양띠 애를 만들어 보자.”
 “어무이두 참, 그게 맘대루 돼유?”
 “왜 안 돼 시방 들어슨 거 같으니께 될껴. 둘이 날짜 짚어 보구 잘 조절해봐!”
 이에 아들내외가 머리를 맞대고 둘이 스무 손가락을 합쳐 폈다 오므렸다 하며 아무리 날짜를 따져 봐도 정해진 날짜에 며칠 차질이 나는가 하면, 맞아떨어진다고 해도 꼭 그날 애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어 며느리가 짜증을 부린다.
 “어머님은 도대체 왜 양띠 애를 고집하시는지 모르겄어 신경 쓰이게!”
 “양이 아마 순하고 착해서 그러실껴. 극성스럽고 사고덩어리고 말썽쟁이 지금 손자 놈한텐 아유 뜨거워라 덴 모양이셔. 그렇게 생각 안 들어?”
 “사내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러구 보니까 그럼 어머님은 순하고 착하고 여러 모로 쓸모 많은 양 같은 손녀를 마음에 두고 계신 거 아녀. 나두 이번엔 딸이면 하지만 아닌 말루 아니면 워쨔. 것두 또 신경 쓰이네.”
 그랬는데 산달이 되고 을미년 양해가 내일 모랜데 며느리 배에서 아무런 기별이 없어 고부가 바라던 대로 새 해에 출산을 하게 되는구나 하고 은근히 기뻐했다. 그런데 웬걸 그날 저녁에 슬슬 며느리 배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얘, 얘, 기미가 있는 게야.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이틀이 남았는데….”
 시어머니가 안달복달이다. 그러더니 통증과 가라앉기가 반복하더니 급기야 새 해를 하루 앞두게 됐고 날이 어둑해지면서는 본격적으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남편 꼴 보기 싫다고 나가라고 소리치고 시어머닌 옆에 붙어서, “얘, 얘 에미야 이렇게 빈다. 조금만 참아라. 인제 자정이 얼마 안 남았다. 참아라 참아라!” 하면서 연방 며느리 아랫도리를 틀어막으며 애걸복걸이다. 그러곤 그런 채로 마침내 오늘 이렇게 양의 해를 맞은 것이다.
 태평양반을 비롯한 온 식구가 이제 양거지의 결과를 앞두게 됐다. ‘양거지’ 라는 게 예부터 전해오는 장난놀이의 한가지다. 아이를 밴 아내를 가진 남정네가 있을 때, 여러 사람이 우선 한 턱을 먹고 난 뒤에, 그 남정네의 아내가 사내를 낳으면 애 아버지가 그 한 턱의 값을 치르고, 계집아이면 그 여러 사람이 분담해서 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남아선호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내애를 낳으면 당연히 애 아버지가 자랑으로 보란 듯이 남들에게 턱을 쏘는 것이고, 계집아이면 여럿이 그 값을 나누어 냄으로써 애 아버지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다.
 태평양반이 첫손자를 볼 때 이 장난놀이를 했었다. 그때 같은 동네 또래 사람들이, 저 태평이는 보나마나 손주를 바랄 것이라 믿고 또 본인도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은 우정 손녀 쪽을 짚어 내기를 걸었다. 이것 역시 태평양반을 위한 배려에서였다. 확률은 반반이라 이왕이면 태평양반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해서였다. 결과는 태평양반이 이겼다 그래서 보란 듯이 한턱 진하게 쏘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며느리의 만삭 때 집안 식구들이 태평양반에게 양거지할 것을 걸어왔다. 마누라를 비롯해 애비와 시집가서 할머니가 돼 있는 두 누이들과 그 생질녀들 셋, 역시 출가해서 시어머니가 돼 있는 두 딸들과 그 외손녀들 둘해서 열하나가 한통속이 돼서 마누라를 앞세워 양거지하자는 것이다.
 “우리 내기합시다. 당신은 이번에도 보나마나 손자를 바라지요 다 알아요. 하지만 난 손녀딸을 바래요. 아니 우리들은 다 그래요. 며늘애 만삭된 배 보니께 틀림없이 계집애고 또 요새는 다들 여식을 원해요. 남자든 여자든 다들 그래요. 당신만 아직도 고리탑탑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사내애가 나오면 당신 그 태평스런 생활을 계속해도 우리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겠지만 계집애가 나오면 우리들 간섭을 절대적으로 받아야 해요. 어때요 그렇게 하는 거지요?”
 “허허, 식구들이 떼 지어 미리 그렇게들 결정했구먼. 그러면 그런 거지 뭐 별 도리 있나.”
 “아니 무슨 대답이 그래요. 안 되겠어요. 자 애비야 종이 좀 사람 숫자대로 가져오너라. 그리고 다들 이리 모여!”
 그러더니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곤 사내면 ‘사내’ 계집애면 ‘계집애’를 또박또박 적고 접어서 겉에는 쓴 사람의 이름자를 정확히 쓰라는 거였다. 이래야 나중에 오리발을 못 내민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들 종이를 손으로 가리고 둘 중에 하나를 적어 접어냈다. 물론 태평양반도였다. 어디까지나 타깃은 태평양반이니 마누라는 직접 받아 챙겼다.
 그래서 인제 애 울음소리가 오늘 양띠해의 아침을 가르면 그 대망의 꼬투리인지 민짜인지가 판가름이 날 터인 것이다.
 드디어 애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태평양반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이고 입가엔 가벼운 미소가 흘렀다. 안도하는 표정이다. 조금 있더니 마누라가 며느리 방에서 나와 뒤뚱뒤뚱 영감에게로 뛰어오며 쾌재의 소리를 지른다.
 “여보, 여보, 내가 이겼어요. 아니 우리가 이겼어요. 당신이 졌어요!”
 “그려어, 글쎄, 설마 그럴라구?”
 태평양반이 태평하게 받아넘긴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증거쪽지를 받아놓길 잘했지. 애비야 에미 장롱 속에서 먼저 번에 적어 논 아버지 꺼 찾아와라!”
 그리곤 접혀진 종이채로 영감에게 쑥 내민다. 그걸 다시 태평영감이 또 태평스럽게 마누라에게 도로 내민다.
 “임자가 읽어 보오!”
 그러자 입을 한번 실쭉대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마누라가 부리나케 펴본다. 그런데 앗! 
 ‘아가, 수고했다. 아무 것이면 어떠냐. 순산했으니 됐다.’
 또박또박 이렇게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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