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11-17 17:08 (토)
14. 공존의 법칙
14. 공존의 법칙
  • 동양일보
  • 승인 2015.01.05 2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농장에 한 소년이 일꾼으로 들어왔다. 소년은 가난해서 매일 점심을 싸가지고 오지 못하였다. 얼마 후 농장 주인은 푸짐한 음식을 펼쳐놓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놈의 여편네가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싸준담.” 그리고는 소년을 불러 점심을 함께 하였다. 농장 주인은 실제로는 부인이 없이 혼자 살았다. 소년은 하루가 다르게 농장 일에 익숙해져 갔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실제로는 부인이 없었지만, 부인이 음식을 많이 싸준다고 중얼거리는 대목이 우리를 감동케 한다. 소년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심이 잘 나타난다. 생색내지 않고 도와주고 보살핀다는 마음이었기에 소년도 마음에 부담 없이 음식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런 음식을 먹고 소년은 키가 자라고 생각이 자랐을 것이다. 키와 생각이 자라듯이 농장도 함께 커갔을 것이다.

배려는 이처럼 진심으로 상대방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마음이다. 마음을 써 주되 배려를 받는 사람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음을 써 주는 것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세심한 배려는 깊은 사랑인 셈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풀 듯 도와주고 보살피는 배려이다.

징용에 끌려가 오른쪽 팔을 잃은 아버지 박만도가 한국전쟁(6·25동족상쟁)에 나간 아들이 돌아온다는 날 정거장으로 나간다. 여느 때 같으면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을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넘어 정거장 대합실에 도착했다. 아들을 싣고 오는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다. 그는 안심이 되는 듯, 휴우 숨을 내쉬며 궐련을 한 개 빼 물고 불을 당겼다. 성냥불 폭발의 이미지가 징용에 끌려가 굴속에서 일하다가 다이나마이트가 폭발하는 이미지로 오버랩 된다.

섬에다가 비행장을 닦는 일이었다. 굴속에서 만도가 불을 댕기는 차례였다. 모두 바깥으로 나가버린 다음, 그는 성냥을 그었다. 쾅! 굴 안이 미어지는 듯하면서 다이나마이트가 터졌다. 만도가 어렴풋이 눈을 떠 보니, 눈앞에 팔뚝이 하나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자신의 팔뚝이 잘려나간 것이다.

꽤애액? 기차소리였다. 기차에서 내릴 사람은 모두 내렸다. 아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만도는 자꾸 가슴이 떨린다. 이상한 일이다,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아부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옛날과 같은 진수가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개천 둑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그 시냇물이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진수야, 자아 업자.’ 진수는 지팡이와 아버지가 들었던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힌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간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난이대’는 두 세대에 걸친 수난의 가족사를 다룬 소설이다. 일제에 의해 아버지는 팔이 잘리고, 아들은 한국전쟁 중에 다리를 잃었다. 이들 부자의 앞에 놓인 외나무다리는 두 부자의 앞에 놓인 위태로운 미래를 상징한다. 팔은 잃었으나 다리는 온전한 아버지가 다리를 잃었으나 팔은 온전한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결핍된 점을 채워가면서 살아갈 때 위태로운 미래도 극복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의 인물은 소설을 감싸고 있는 사회의 한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박만도는 일제강점기에 불구가 된 아버지 세대를, 박진수는 한국전쟁으로 불구가 된 아들 세대를 뜻한다. 즉 식민지와 동족상쟁으로 두 세대가 불구가 되었으며 민족 전체가 불구가 되었음을 뜻한다. 민족 전체가 불구가 되었으니 민족의 앞에 놓인 미래의 역사 또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들 부자 앞에 놓인 외나무다리는 우리 민족 앞에 펼쳐진 위태로운 미래이다.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가면서 살아가야 민족 전체가 위태로운 역사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 배려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이다. 이데올로기로 분단모순을 극복하고자 할 때 백퍼센트 실패한다. 배려가 갖는 소통과 공감으로 다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과 함께 살펴본 배려에 대한 의미를 정리하면 이렇다.

배려는 저축처럼 쌓일수록 좋고, 작은 행동이지만 감동은 크고, 먼저 내미는 손이니 사랑이 실려 있고, 따뜻하게 도와주고 보살피는 것이며, 베푸는 이나 받는 이나 모두에게 이로운 공존의 법칙이며, 서로가 베풀 때 공존은 큰 감동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