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이 이르면 13일 새해 첫 '천만 영화'로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국제시장'은 전날 전국 842개 상영관에서 관객 15만7천464명을 추가하며 누적관객수 984만6천98명을 기록했다. 1천만명까지 15만4천명 가량이 남은 셈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날 밤, 늦어도 14일 오전 '천만 클럽'에 가입할 전망이다.

역대 한국 영화 중 11번째, 외화까지 포함하면 14번째 '천만 영화'다.

'해운대'(2009·1천145만)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윤 감독은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그것도 연달아 '천만 영화' 2편을 내놓은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아버지의 '눈물'
윤 감독은 그동안 '국제시장'에 대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만든 영화"라고 설명해 왔다.

"아버지에 대한 헌사"를 내건 영화답게 극중 가족을 위해 평생 자신을 희생하는 '덕수'(황정민 분)의 일대기는 아버지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선장이 꿈이었던 덕수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헤어진 아버지가 "이제부터 니가 가장이니까니 가족들 잘 지키기요"라며 남긴 말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서독에 광부로 가고,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고 고모의 가게를 지키려고 전쟁 중인 베트남에 기술 근로자로 떠나는 것도 아버지의 당부 때문이다.

이제는 늙은 덕수가 방에서 혼자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며 흐느끼는 장면은 거실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자녀와 손주들의 모습과 대비되며 눈시울을 적신다.

윤인호 CJ E&M 홍보팀장은 "중장년층에게 '그때 나도 저렇게 힘들게 살았지'라는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영화는 20대에서 먼저 흥행을 한 뒤 40대 이상으로 관객층이 확대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국제시장'의 경우 초반부터 중장년층 관객이 많았다.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서도 40대 이상의 예매율이 47%에 달한다. 자녀 관객이 부모를 위해 예매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40대 이상의 비중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CGV리서치센터에서 작년 한 해 CGV를 찾은 관객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45세 이상은 전년대비 30% 증가했고, 60대 이상은 40.2%가 늘었을 정도로 최근 중장년층의 영화 관람 횟수는 눈에 띄게 증가하며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 미화"…이념 논쟁이 오히려 흥행 부채질
'국제시장'은 영화 내에서 묘사된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 때문에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윤 감독 스스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긍정적인 시각으로 고생한 얘기를 하려다 보니 정치적인 것이나 사회비판적인 시선이 빠졌다"고 말했듯 영화는 덕수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펼쳐놓는다.

하지만 후대의 평가가 분분한 사건이 가볍게 묘사되면서 오히려 이념 논쟁에 불을 댕겼다. 일각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미화라는 지적도 나왔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극 중 덕수는 파독 광부 면접 과정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애국가를 열창하기도 하고 베트남에 기술 근로자로 가기에 앞서 부인 영자(김윤진)와 말다툼을 하다가도 시간에 맞춰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윤 감독은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에 있는 신"으로 '무겁지 않게' 연출한 장면이라고 했지만 보수층은 이 장면을 예로 들며 애국심을 강조하고 나섰다.

'보수 계층을 겨냥한 정치 영화'라는 주장까지 나온 가운데 정치권은 "현대사에 대한 예술적 긍정" 등의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으며 논쟁에 불을 붙였다. '국제시장'에 대해 혹평한 칼럼니스트 허지웅 씨의 발언을 두고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다.

정치권을 비롯한 단체 관람이 줄을 이은 가운데 대구시교육청은 중학생의 '국제시장' 단체 관람을 지원해 논란을 빚은 데 이어 고등학생의 관람료도 추가 지원하기로 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윤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든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논란이 일어나 많이 당황했다"며 "영화를 만들 때는 소통과 화합을 염두에 뒀는데 소통과 화합은커녕 논란과 갈등이 생기고 좌우, 진보와 보수 등 나라가 양편으로 나뉘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대형 배급사의 '힘'…경쟁작도 없어
총 제작비 140억원(마케팅비 등 포함하면 180억원)이 투입된 '국제시장'은 국내 투자배급사 1위인 CJ E&M이 투자·배급을 맡은 작품이다.

CJ E&M은 작년 여름 '명량'(1천761만명)으로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쓴데 이어 하반기에는 '국제시장'으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국제시장'은 손익 분기점(600만명)을 진작 넘은데다 현재까지 누적 매출액만 767억원이 넘는다.

'국제시장'의 흥행에는 극장 체인을 가진 대형 투자배급사의 힘도 한 몫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국제시장'은 CJ가 작년 후반기에 가장 공을 들인 영화이다보니 스크린을 충분히 잡고 시작했다"며 "CJ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영화 흥행에 주요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봉 첫날 931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국제시장'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스크린 개수가 700여개로 다소 줄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8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다.

극장가의 성수기인 연말연시에 이렇다 할만한 대형 경쟁작이 없었던 것도 '국제시장'의 흥행을 도왔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국영화 '기술자들'과 '상의원'이 나란히 개봉했지만 '기술자들'은 김우빈의 '티켓 파워'에만 의존한 탓에 범죄 영화 특유의 치밀한 구조가 미흡했고, 조선 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상의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테이큰 3'도 상영 중이지만 시리즈물이라는 한계가 있는데다 전작도 200만∼300만명 수준이어서 '국제시장'의 발목을 잡지는 못했다.

물론 영화의 흥행에는 주인공 덕수를 연기한 황정민을 비롯해 김윤진, 오달수 등의 열연도 한몫했다. '명품 조연' 오달수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한국영화사상 첫 '1억 배우'가 됐다.

'해운대'에 이어 두 번째 천만 영화를 내놓게 된 윤 감독은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덩달아 주 무대인 부산의 '국제시장'에 방문객이 급증한 데 이어 경남 남해의 파독전시관과 독일마을도 이전보다 2배가 넘는 관람객이 찾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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