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정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동 주무관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다보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5로 시작하는 따끈따끈한 주민번호를 부여받은 아기부터 주민등록번호 첫자리가 3으로 시작하는 멋진 중절모의 노신사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민원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전산에 입력하면서 그와 동년배인 내 주변 사람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중 유독 떠올리기 어려운 연령대가 있다.

바로 1930~1940년대에 태어나신 어르신들이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나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주민등록 첫 자리 3과 4. 이 숫자가 특별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얼마 전 동 직원 단합대회를 겸해 전 직원이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였다. 직원들과 함께 한다는 그 자체의 즐거움과 요즘 인기 있는 영화라기에 ‘뭐, 재미있겠지’ 라는 가벼운 기대감으로 상영관에 들어섰다. 코믹한 장면에선 직원들과 깔깔 웃었고, 이산가족을 찾는 장면에서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며 점점 영화 속 인물들과 하나 가 됐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덕수’의 삶이 단순히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니라 지난 날 우리나라가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직접 겪었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삶이구나!

대학에 입학하면 행복해지겠지하며 중고교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등록금과 취업이라는 또 다른 고민거리에 앞만 보며 보냈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마음 졸이며 외로움과 싸우면서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사회생활을 시작해보니 이제 결혼이라는 큰 과제가 또다시 나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주어진 짐만 생각하며 내가 속한 세대가 가장 안타까운 세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해왔는데, 이 영화는 그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가를 알려줬다.

학생시절, 국사책 속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 월남 파병은 단순한 머릿속 지식이었다. 막연하게 여겼던 사실이 입체적으로 다가오게 된 계기는 ‘덕수’의 한마디. “내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기 참 다행이라꼬.”

‘덕수’의 희생으로 동생들이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한 것처럼 그 시대를 자식만 생각하고 버텨낸 어르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내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동안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으로 뵈었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심히 스쳤던 그분들의 얼굴 위에 삶의 흔적들이 오늘 날의 한국을 만든 값지고 감사한 흔적들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뭉클한 가슴을 안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런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우선 내가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주민센터에 방문하시는 어르신들께 더 밝게 인사드리고 더 친절하게 안내해드리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잠시 적응하지 못해 불편함을 느끼시는 어르신들께 최대한 친절히 안내해드리고 도와드리는 것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오늘도 주민등록 앞자리가 ‘3’,‘4’로 시작하는 어르신들께서 주민센터를 방문하셨다.

그분들을 향한 밝은 인사와 미소 속에 담겨 있는 그분들을 향한 나의 감사함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라며 오늘도 “안녕하세요? 어떤 업무로 오셨나요?”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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