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화학제품 사업으로 거부가 된 듀폰가(家)의 상속인 존.E.듀폰(57) 씨가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를 사살한 후 필라델피아 교외에 있는 자신의 대저택에서 만 48시간 경찰과 대치하다가 28일 오후 결국 경찰특공대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지난 1996년 1월 29일 워싱턴 특파원을 통해 국내에 전해진 충격적인 뉴스의 첫 문장이다.

베넷 밀러 감독의 영화 '폭스캐처'는 바로 이 '존 듀폰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살인마를 취재해 사상 최고의 논픽션 소설을 쓴 저널리스트 트루먼 카포티를 소재로 한 '카포티'(2005), 경기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머니볼 이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신화를 쓴 빌리 빈의 얘기를 그린 '머니볼'(2011) 등 실존 인물의 얘기를 다뤄 온 베넷 밀러 감독은 이번에 존 듀폰과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형제의 비극적 관계를 스크린에 담았다.

레슬링 선수인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1984년 LA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지만 역시나 금메달리스트인 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의 후광에 가려 별볼일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또 한 번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크에게 어느 날 미국 굴지의 재벌인 "듀폰 가문의 존.E.듀폰"(스티브 카렐)이 "함께 서울로 가서 세계를 놀라게" 하자고 제안한다.

마크는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형을 떠나 존 듀폰이 후원하는 레슬링팀 '폭스캐처'에 합류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 앞에 레슬링 코치를 비롯해 "조류학자, 우취인(우표 수집가), 자선가"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존 듀폰은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을 한다.

마크에게 직접 레슬링을 배우는 것도 모자라 "레슬링은 천박한 스포츠"라는 어머니 앞에서 인정받고자 자신의 이름을 딴 자유형 레슬링 대회를 열고 참가자에게 돈 봉투를 쥐여 주고 우승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탁월한 지도력으로 레슬링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하는 것.

존이 권한 코카인에 마크는 점차 망가져 가고 올림픽 금메달을 전제로 한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질 무렵 존이 데이브를 폭스캐처의 코치로 영입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영화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비극적 결말을 향해 군더더기 하나 없이 차곡차곡 달려간다. 이미 알려진 결말이지만 여기서 극에 긴장감을 주는 것은 종잡을 수 없는 존 듀폰의 돌발 행동이다.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던 스티브 카렐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가짜 코 분장에 차가운 눈빛이 더해져 이전에 봐 왔던 스티브 카렐의 모습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자 점차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정신 이상자 역할을 섬세하게 표현한 스티브 카렐은 이번 영화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학창 시절 레슬링 선수였다는 마크 러팔로는 채닝 테이텀과 함께 실제 레슬링 선수의 걸음걸이까지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냈다. 특히 영화 초반 말없이 진행되는 두 형제의 레슬링 훈련 장면은 그 어떤 장면이나 대사보다 두 사람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며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2월 5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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