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님은 결혼 후 시집살이도 청양고추보다 매웠다. 남편이 군 입대를 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양식을 축낸다며 친정으로 보내기 일쑤였다. 친정에서도 처음에는 그냥저냥 받아주었지만, 두 번 세 번 횟수가 잦을수록 눈칫밥이 심하였다. 부끄럽기도 하고 면목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시댁에 가서 죄인처럼 살았다. 믿을 사람은 신랑뿐인데 군대에 가고 없으니 그야말로 사고무친(四顧無親)이었다. 시어머니의 곱지 않은 눈초리, 시누이들의 싸늘한 표정, 시아버지마저 처음에는 잘 해주시더니 마음이 변하여 며느리를 미워하였다. 시집살이의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갔다. 한 번은 참다못해서 말대꾸를 했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시댁 식구들의 미움은 더욱 심했다. 남편이 휴가라도 나오면 시어머니는 아들 며느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이간질이 일이었다. 심지어 아들한테 며느리를 때려 주라고 부추겼다. 그때마다 남편은 마당가에 나가 망연히 하늘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남편이 군 생활을 마치고 직장을 잡아서 도회지로 나오게 되었다. 맨몸이지만 시댁의 소굴을 빠져 나오니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밉다고 쌀 한 톨도 보탬이 없었다. 친정집의 도움으로 단칸방을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시댁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잔치 음식을 힘들게 마련해서 이고지고 시댁에 가면 수고했다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음식타박만 하였다. 시어머니는 운명할 때에도 며느리와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다.

시누이 남편은 성실하게 일하여 영전을 거듭했고 대도시에서 터를 잡았다. 거기에서 시누이부부는 5남매를 낳아 훌륭하게 키워냈다. 자식들 모두가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누구나 부러워 할 직장을 다니고 손자손녀들도 남부럽지 않게 영민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시누님이 앉은 자리 선 자리마다 아들 자랑 딸 자랑 손자 손녀 자랑을 한다는 것이다. 한숨 섞인 옛이야기에다가 자식 자랑에 손주 자랑까지 레퍼터리가 눈사람처럼 불어난 것이다. 아픈 상처와 자식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으니까 집안 형제들은 시누님과 아예 만남 자체를 피하게 되었다.

오늘도 시누님한테 온 전화를 내가 받았더라면 시누님은 어릴 적 상처와 매운 시집살이와 아들 자랑 손주 자랑을 한참 동안 했으리라. 그러다가 문득 중학생 손자 밥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을 것이다. (권희일 ‘풀지 못한 한(恨)’ 전문)

 

‘풀지 못한 한’은 네 개의 목소리로 짜여 있다.

첫 번째 목소리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나’의 목소리이다. 이는 인물들 간의 갈등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하나의 통합체인 이야기로 만들어 놓는다. 두 번째 목소리는 남편의 목소리이다. 시누이의 남동생인 그는 매우 도덕이며 이성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 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시누이의 목소리이다. 그는 과거의 상처를 끓어 안고 상처를 녹이지 못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네 번째 목소리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목소리인데 그들은 주인공에게 상처를 준 인물들이나 이미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인물들이다.

(계속)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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